정부 찍어준 테마 투자 뉴딜펀드…모호한 투자처에 버블 가득 우려도
입력 2020.11.19 07:00|수정 2020.11.20 14:56
    뉴딜펀드 출자사업 속속 시작할 듯
    디지털·그린 분야 국한…123개 연계업종 발표
    특정 산업에 쏠림현상, 오버밸류 우려도
    중기부 41개 육성기업 발표, 정책자금 유도할 듯
    “추후 특혜시비 우려…투명한 관리체계 마련 필요”
    • 한국판 뉴딜사업 구상을 위해 정부가 꺼내든 전략적 카드는 정책자금과 민간자금을 매칭하는 뉴딜펀드의 결성이다. 이를 위해 정부 산하 주요 기관들은 내년도 출자사업에 ‘뉴딜’이란 단어를 포함하기 위한 사전 작업에 돌입했다. 펀드 결성과 실질적인 투자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벌써부터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일단 뉴딜사업과 관련한 정부의 예산안 확정부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출자규모가 큰 사모펀드(PEF) 분야의 투자자들은 몇 안되는 특정 섹터에서 투자처를 발굴해야하는 부담감을 토로하고, 이미 오버밸류(고평가)하기 시작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 또한 망설여진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가 지정해 준 투자처가 한정돼 있는 만큼 추후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28일 정부가 제안한 555조8000억원 규모의 예산안에서 최소 15조원 이상을 감액할 것을 밝힌 상태다. 정부의 예산안 중 한국판 뉴딜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약 21조3000억원, 국민의힘은 이 가운데 10조원 이상을 삭감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뉴딜펀드는 3가지 유형으로 설계돼 있다. ▲정책 자금이 자금이 후순위에 출자하는 정책형 뉴딜펀드 ▲인프라 프로젝트에 집중 투자를 유도하는 뉴딜 인프라펀드 ▲민간 자본 스스로 펀드를 조성하는 민간 뉴딜펀드 등이다. 정책형 펀드는 향후 5년간 정부(3조원), 정책금융(4조원)이 약 7조원을 출자해 모(母)펀드를 구성하고 금융기관과 연기금, 민간자금이 13조원을 매칭해 약 20조원의 펀드를 결성하는 것이 목표다. 일단 내년도 정책형 뉴딜펀드는 약 4조원(정부출자 1조4000억원, 민간매칭 2조6000억원) 규모로 추진하고 있다.

      정책 금융기관 한 관계자는 “정부와 정책 금융기관들은 현재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펀드 결성을 추진하고 있고, 정부의 예산안이 확정되면 세부 규모를 수정할 계획”이라며 “시장의 우려에 대한 투자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며 있다”고 밝혔다.

    • 정부와 정책 금융기관들이 ‘뉴딜’에 역점을 두는 만큼 내년도 결성하는 펀드의 상당수는 ‘뉴딜’이란 단어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산업은행 등 메인 앵커 출자자(LP)이 출자하면 국내 공제회 및 금융기관들이 매칭하는 식으로 사모펀드 결성이 진행되기 때문에 내년에 결성하는 펀드의 주요 투자처는 주목적 투자, 즉 정부가 지정한 뉴딜 분야에 국한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책 펀드의 투자처는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이란 큰 틀에서 세분화한다. 디지털 뉴딜은 첨단제조·자동화, 에너지, 건강검진, 정보통신, 전기·전자, 센서·측정, 지식서비스 등 7가지 분야로 구성됐고 그린뉴딜 분야는 첨단제조·자동화, 에너지, 환경·지속가능, 전기·전자 분야 등 4개로 나뉜다. 정부는 디지털·그린뉴딜 연계표를 발표하며 123개의 품목의 세분화 한 투자처를 지정했다.

      일단 산업은행은 내년도 출자 사업에 앞서 국내 주요 사모펀드(PEF), 벤처캐피탈(VC) 운용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며 뉴딜펀드 결성과 관련한 투자 제약 사안들을 취합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을 비쳐볼 때 정책 기관이 제시한 투자처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투자자들은 주목적 투자에 대한 투자 비율이 완화하거나 투자 분야가 크게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진 않는 분위기다.

      PEF업계 운용사 한 관계자는 “정책 자금의 특성상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출자사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뉴딜펀드와 같이 투자 분야를 한정하고, 사실상 해당 분야에만 자금을 집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이례적이다”며 “내년도 펀드레이징에 나설 기관들은 이미 지정된 분야에 대한 투자처 발굴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 자본을 정부 정책에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려는 의도는 일견 이해할 만하지만, 자칫 과도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코스피가 바닥을 찍고 예년의 수준을 회복한 상태에서, 정부가 뉴딜 정책을 발표하자 관련 기업들의 기업 가치는 크게 치솟았다.

      현재 뉴딜관련 민간 펀드는 ETF(5개)를 포함해 총 8개이다. 주로 바이오·배터리·게임·2차전지·인터넷 분야의 ‘K-뉴딜’의 단어가 포함된 펀드들이다. 해당 펀드의 수익률은 코스피의 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뉴딜 분야에 포함된 기업들의 주가가 고점인 상태에서 펀드가 결성됐고, 해당 기업들을 펀드에 편입시키다보니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사모펀드 시장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세대 유망 사업으로 손꼽히는 수소·2차전지·바이오·게임·플랫폼 등 분야 기업들의 가치는 천정부지 치솟았다. 실제로 실적이 뒷받침해 기업가치가 증명됐다기 보단 정부 정책의 수혜를 받아 성장 할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돼 있는 경우가 많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한 경영자는 “회사의 특성을 살려 2차전지, 수소전지와 관련한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인수 가능회사를 물색 중인데 불과 1~2년전과 비교도 할 수없을 만큼 해당 분야 기업들의 가치가 높아져 사실상 인수를 포기한 상태”라며 “자동차 업계뿐 아니라 자금력을 앞세운 FI들까지 해당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 꾸준히 태핑하면서 기업가치가 왜곡되고 있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PEF 업계 한 관계자는 “몇 안되는 투자분야에 향후 2~3년 동안 수조원의 자금이 몰리게 되면 당연히 오버밸류에 대한 이슈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며 “정책 자금을 받는 문제는 차치하고 해당 분야 투자만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거두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미지수다”고 말했다.

      특정 분야,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할 여지도 남아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일 성장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 247곳을 발표했다. 역시 정부가 발표한 뉴딜 분야에 포함된 기업들로 구성됐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그린뉴딜 유망기업 100곳을 육성한다는 목표로 이달 초 처음으로 41개사를 선정해 발표했다. 해당 기업에 대한 기술개발, 사업화 등을 목표로 그린펀드, 보증, 정책자금을 연계하도록 중기부와 환경부가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가 회사명까지 밝히며 확실히 보증하는 기업들의 숫자는 향후 수년간 늘어날 가능성이 남아있다.

      이에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유니콘 기업 육성을 목표로 정부가 특정 기업에 대한 민간투자를 유도하고 정책 자금의 투자까지 연계하는 것은 일부 기업들에 대한 특혜 시비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며 “정책형 뉴딜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들을 활용해 정부가 추진하는 특정 사업과 일부 기업에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는 만큼 보다 투명한 관리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