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개인 배정 확대, '가격 발견 기능' 저하 불 보듯 뻔...출렁임 더 심해진다
입력 2020.11.20 07:00|수정 2020.11.23 10:05
    기관 배정 크게 줄어 수요예측 프라이싱 효율성 저하
    상장일 고평가-이후 저평가 공모주, 상황 악화할 듯
    "균등분배는 자금 증시 유입 막는다...기존과 상반된 정책"
    • "공청회에서 그렇게 반대가 많았는데 그냥 밀어부쳤어요. 공모주 청약 자금 비례 배분 '원칙'을 제 멋대로 '관행'이라고 폄훼했더군요. 공모주는 '개미 무덤'이 될 겁니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

      "증권사 실무자들은 한결같이 반대 의견을 냈는데 결국 시행하네요. 이미 누더기가 된 배정 기준 때문에 공모주 가격 발견(Pricing;프라이싱) 기능은 더욱 악화될 겁니다." (한 대형증권사 IPO 담당 실무자)

      정부가 기업공개(IPO) 공모주 시장마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훼손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 IPO 시장의 개선점으로 지난 십여년 간 지목받아온 '가격 발견 기능'이 더욱 악화될 거란 분석이다.

      이는 신규 상장 직후 공모주 가격의 변동성이 더욱 심해질 거라는 뜻이다. 개인 자금이 역사적인 규모로 유입되고 공모주 균등 배정까지 강제한 상황에서, 추후 약세장이 펼쳐지기라도 하면 국내 IPO 시장의 신뢰도 자체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위원회 등이 지난 18일 발표한 'IPO 공모주 일반청약자 참여기회 확대방안'의 핵심은 기관 배정 물량 축소, 개인 배정 물량 확대로 요약된다. 지난 12일 열린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의 반대 의견이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배정 확대를 강행한 것이다. 불과 2년 전 축소를 검토했던 것과도 정 반대의 결론을 냈다. (관련기사 : 공모주 일반 배정분 늘린다? '거꾸로 간다' 평가받는 금융위원회)

    • IPO 업계에서는 당장 프라이싱 기능의 악화를 우려한다. 특히 코스닥 시장의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 변경 후 기관투자가 배정분은 기본 60%에서 55%로 줄어든다. 이 중 하이일드펀드가 5%, 코스닥벤처펀드가 30%를 우선 배정받는다. 일반 기관 배정분은 20%다. 개인투자자 기본 배정분(25%)보다도 적다.

      업계 실무자들은 금융위가 현장을 전혀 모르고 입안한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하이일드펀드와 코스닥벤처펀드는 프라이싱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정한 가격'에 공모주를 인수하는 것보다는 '최대 물량 확보'가 목적이다.

      실제로 발행사의 가치를 평가하고 적절한 가치를 제안하는 건 연기금ㆍ운용사ㆍ투신사 등 일반 기관들이다. 우리사주조합 미달분 중 5%를 개인에 우선 배정하도록 하면서 가뜩이나 배정분이 적은 이들 기관에 돌아가는 물량이 실질적으로도 더욱 줄어들었다.

      공모주 프라이싱 기능 저하는 이미 2015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운용사 라이선스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뀐데다, 투자자문사의 공모주 수요예측 참여가 허용되면서부터다. 이들이 공모주 시장에 달려들어 '덮어놓고 물량 확보' 전략을 펼치며 공모주 변동성이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이는 금융위가 인정한 부분이기도 하다. 2016~2019년까지 신규 상장 기업 중 공모가 대비 상장 당일 종가가 하락한 경우는 32%, 셋 중 하나였다. 상장 1개월 후 종가가 하락한 경우가 49%, 둘 중 하나였다. 공모주가 '단기투자(단타) 놀이터' 취급을 받고, 5대 자산운용사가 대형 공모주 제외 IPO 시장에서 발을 끊은 것도 이 무렵이다. (관련기사 : 5대 자산운용사 '공모주' 투자 접었다...수요예측 신뢰도 '추락')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이미 능력있는 대형 운용사가 공모주 시장에 발길을 끊은 상황에서 그나마 남아있던 기관 배정분까지 줄이니 수요예측 자체가 프라이싱보단 물량확보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유통시장(증시)의 부침에 따라 공모가 밴드 최상단 초과- 최하단 미만의 극단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이싱 능력의 악화는 결국 공모주 변동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미 국내 공모주 시장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9년 3분기까지 신규 상장한 기업의 공모가 대비 상장일 종가 수익률은 같은 날 시장 수익률보다 평균 23% 높게 형성됐다. 반면 2019년 기준 상장 후 1개월 누적수익률은 시장수익률 대비 평균 19.2%, 3개월 누적수익률은 시장수익률 대비 23.1% 낮았다.

      이는 IPO 프라이싱 과정에서, 그리고 상장 후 유통 과정에서 기업의 가치 평가에 필요한 정보가 효율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게 금융연구원의 결론이었다. 이번 개인 배정분 확대 방안은 이런 구조적 헛점을 더욱 키우기만 할 거라는 게 증권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자정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던 IPO 시장에 금융위가 '개인을 위한다'며 치명타를 먹인 셈이다.

      균등배정 역시 고액자산가들의 증시 및 공모주 시장 진입을 오히려 틀어막을 악수(惡手)로 꼽힌다. 유동성의 부동산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대주주 기준 10억원 유지ㆍ공매도 금지 연장 등의 정책과도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발행사 입장에서도 반길 수만은 없다. 균등배정이 실질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 청약 금액을 최대한 낮출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100만원(증거금 기준, 배정 기준 200만원) 안팎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같은 초대형 인기 공모라면 모를까, 관심을 받지 못한 소규모 코스닥 상장 공모의 경우 청약 규모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더 많은 금액을 청약할 수도 있었던 투자자가 100만원만 청약하고 균등 배정에 만족한다면 증거금이 쌓일 수가 없다"며 "청약 첫날 증거금 규모를 보고 둘째날 청약 규모를 결정하는 투자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공모주 청약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