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분할-상장' 전략, LG는 '트라우마 극복' 해야
입력 2020.11.20 07:00|수정 2020.11.19 16:45
    분할→외부 투자 유치→상장...신사업 육성 '교과서'
    SK는 꾸준히 실행...노하우 쌓여 주가에도 영향 적어
    LG는 사실상 LG화학이 첫 사례...주주 반발 남겼다
    핵심은 타이밍..."LG그룹 경영진 교훈과 결단이 중요"
    • '신성장 산업 라이벌'로 부상한 SK그룹과 LG그룹의 사업 육성 전략에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 SK그룹은 노련하게 인큐베이팅(초기육성)이 끝난 사업을 분할→외부 투자 유치→상장이라는 코스로 이끌어가고 있다. 반면 LG그룹은 이제 이 작업을 본격화하려는 찰나임에도 불구, LG화학 분사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터라 이를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대규모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가 필요한 신성장 산업의 특성상 '분할-상장' 전략은 LG그룹도 결국 가야만 하는 길로 꼽힌다. LG화학 사태에서 최고경영진이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가 향후 관전포인트라는 평가다.

      SK텔레콤은 지난달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부문을 물적분할하기로 결정했다. 2011년 플랫폼사업부(현 SK플래닛) 분할 이후 두 번째 대규모 신사업 분할이다. 글로벌 공유차량 업체 우버가 신설법인에 지분을 투자하고, 합작법인(조인트벤처)도 세우기로 했다. 이 거래 하나로 SK그룹은 순식간에 국내 모빌리티 시장의 '3강'으로 떠오르게 됐다.

      사실 국내 대기업 중 가장 활발하게 기업분할을 활용하는 그룹이 SK였다. 지주체제 구축 및 일부 계열 분리 과정에서 기업 분할과 합병, 지분구조 개편에 대한 노하우가 적지 않았고 자본시장을 잘 활용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최대 흥행 기업공개(IPO) 거래였던 SK바이오팜도 SK㈜에서 내부 사업부로 육성하다 2011년 물적분할로 독립시킨 회사다.

      SK그룹이 내년 기대되는 가장 뜨거운 'IPO 화수분'으로 꼽히는 것도 이런 전략에 기반한다. 내년 중 상장이 기대되거나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계열사 대부분이 3~5년전 주력 계열사에서 분할한 자회사들이다. SK IET, 원스토어,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 대표적이다. IPO 과정에서 계열사는 외부 자본을 유치해 성장기반으로 삼을 수 있고, 모회사는 지분이 시가로 재평가되며 재무가 개선되는 효과를 얻을 전망이다.

    • 장래는 유망하지만 당장 돈벌이는 안 되는 신사업을 ▲캐시카우(주력산업) 회사가 내부에서 키우다가 ▲100% 지분으로 물적분할한 후 ▲외부 투자를 유치해 덩치를 키우고 ▲상장을 통해 추가로 자본을 유치하고 투자자에게 회수 기회를 주는 확장 방식은 신사업 육성의 '교과서'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핵심 노하우는 '분할 시점'이다. 특히 모회사가 상장사일 경우 주주들에게 파급이 있을 수 있는 까닭이다. 모회사 주가에 자회사 사업가치가 크게 반영되진 않았지만, 신사업이 독립해서 생존을 해나갈 수 있는 절묘한 시점을 노려야 한다.

      SK텔레콤이 플랫폼사업부 분할을 결정한 2011년 7월, SK텔레콤 주가는 장중 출렁이긴 했지만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일주일 후인 7월말에는 발표 시점보다 주가가 5%가량 올라있었다. SK플래닛은 2011년 분사 첫 해부터 11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SK케미칼이 SK바이오사이언스 분할을 발표한 2018년 5월에도 공시 다음날 주가는 오히려 반등했다.

      LG그룹은 반대로 신사업 분할 육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경영 전략을 취해왔다. 지난해 LG유플러스가 전자결제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전례가 있긴 하지만, 이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부를 핀테크 기업인 토스에 매각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이전에 단행한 서브원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업(MRO) 물적분할 역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신사업을 캐시카우 계열사가 인큐베이팅한 후, 분사를 통해 추가 성장을 시도한 사례는 2010년 이후 사실상 LG화학이 첫 사례였던 셈이다.

      하지만 LG화학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급작스럽게 커졌다. 여기에 첫 경험으로서 분할에 대한 노하우도 쌓여있지 않은 상태여서 시기를 잡아내는 데도 운이 없었다. LG화학에 이미 배터리 사업부 가치가 반영될대로 반영된 상황에서 분할을 시도하다보니, 지분 희석을 우려한 주주들의 집단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당초 시장에서 인지하던대로 2019년 분할에 나섰다면 잡음이 훨씬 덜했을 거라는 지적이 많다.

      관건은 향후 임직임이다. LG그룹은 배터리 외에도 전장 부품,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을 그룹 차원에서 집중 육성하고 있다. 모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자본을 집중해 신사업을 키워내려면 결국 SK그룹 같은 육성→분사→상장 모델을 따라가는 게 불가피하다. 결국 LG화학에서 겪은 트라우마를 극복, 향후 분할이나 분사 과정에서 얼마만큼 트러블을 줄이고 추진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역은 "티맵모빌리티 분사 결정 직후 SK텔레콤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 건 LG화학 사태로 개인투자자들이 물적분할 그 자체에 거부감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갈 수밖에 없는 길인만큼, LG화학 사태에서 LG그룹 경영진이 무엇을 배웠으냐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