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두인코·대조양...반독점 고무줄 심사 우려되는 산업은행 거래들
입력 2020.11.23 07:00|수정 2020.11.24 10:13
    산은, 기업 위기 부각 후 경쟁사 데려오는 전략 반복
    경쟁제한성 불보듯 뻔하지만 아랑곳 않아…자신감 방증
    이동걸 회장, 문제 감수해도 구조조정 절연 의지 강해
    공정위, 배민 M&A 사실상 불허…산은 결실 거둘지 의문
    • 산업은행이 굵직한 구조조정을 이끌 때마다 논란이 일고 있다. 아시아나항공과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해양 거래 모두 명분을 만든 후 경쟁사에 넘기는 구조라 절대적 시장지배 사업자의 탄생을 막기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독점 심사 문턱이 높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하지만 산업은행은 거래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동걸 회장의 존재감이 워낙 강하다보니 공정위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산업은행은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아시아나항공 매각 협상이 무산된 후 한진그룹에 인수 의향을 물었다. 산업은행이 한진칼에 돈을 대고,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거래 완료 시 세계 10위 대형항공사(FSC)이자 에어아시아(Air Asia)에 이은 아시아 2위 저가항공사(LCC) 사업자가 탄생한다. 국내에선 FSC, LCC 모두 절대자가 된다. 당장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승인이 문제다.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는 관련 시장을 획정한 후 집중도를 따지는 순으로 이뤄진다. 집중도가 일정 수준 이하(안전지대)면 시장점유율(한 사업자 50% 이상, 3 이하 사업자 합계가 75% 이상 등) 확인 등만 거쳐 승인한다. 안전지대 해당 여부는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를 활용해 판단한다. HHI는 해당 시장 모든 참여자들의 점유율을 제곱해 합한 것으로, 참여자의 수가 줄어들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아시아나항공 M&A는 두 회사의 영역이 겹치는 전형적인 수평결합(경쟁사간 기업결합)이다. 공정위의 심사가 더 깐깐할 수밖에 없다. 동종업계 M&A의 제 1 판단 기준으로 여겨지는 HHI 지수만 따지면 승인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산업은행은 글로벌 항공 시장 경쟁이 치열해 아시아나항공 M&A 후 독과점에 따른 운임료 상승이나 서비스 질 하락은 없을 것이라 주장한다. 우리나라 산업 규모나 국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두 회사의 비행기 수가 많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경쟁 제한성은 국내가 아닌 세계 시장으로 넓혀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셈이다.

      공정위는 예외적으로 홀로 회생이 어려운 회사는 기업결합을 승인하기도 한다. 과거 주인을 찾지 못하던 기아자동차를 현대자동차가 인수하도록 승인해줬다. 이에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위기를 부각시키고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공정위 승인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 키워야 할 산업이지만,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엔 돈을 넣을 생각이 없어 위기가 예상되니, 전문가인 대한항공에 맡겨야 한다는 모순적 논리 구조가 엿보인다.

      산업은행은 경쟁사를 인수자로 끌어들였다. 기업결합 문제가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수밖에 없지만 산업은행 입장에선 큰 걸림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다소간의 문제를 감수하고라도 부실 기업 정리를 최우선시하고 있다. 달리 보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나항공에 앞서서도 같은 사례들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M&A는 각국 기업결합 승인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세계 1~2위 선사의 결합이 경쟁을 제한할 것이란 예상은 충분히 가능했다. 이동걸 회장은 50% 이상 승산이 있다며 현대중공업으로의 매각을 밀어붙였다. 당시 매각이 아니라 투자라는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내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장기간 불확실성에 노출되면서 수주에 애를 먹고 있다.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기술과 인력을 차곡차곡 빼오고 있고, 지배구조도 다져둔 상황이라 승인이 무산돼도 잃을 것이 없다. 대우조선해양이 수주와 관련해 현대중공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는 등 살길을 찾고 있지만 모회사 산업은행의 지원마저 얻기 어렵다.

      두산인프라코어 M&A도 대우조선해양과 판박이다.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 주도 구조조정 거래에 산업은행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와 손을 잡고 뛰어들었다. 국내 굴삭기 시장에서 두산인프라코어의 점유율은 40% 전후, 현대건설기계는 25% 내외다.

      공정위의 벽이 높지만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인수가 무산되더라도 대우조선해양 거래처럼 경쟁사의 영업력을 약화하거나 기술 및 네트워크를 취하는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 산업은행은 두산중공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꾸준히 강조해 왔다.

      산업은행의 과감한 시도들은 이동걸 회장이 있어 가능하다는 평가다. 이 회장은 임기 1기 때도 현 정부와 금융권 실세 중에서도 힘이 센 인사로 평가 받았다. 2기 임기를 ‘어쩔 수 없이 맡아준’ 모양새를 갖추면서 목소리에 힘이 더 실리게 됐다. 아시아나항공 매각만 해도 상위 부처인 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에 밀려 체면을 구겼다는 관전평이 있다.

      산업은행의 행보들이 정부 최고위층과 조율이 됐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아울러 깐깐한 심사를 하는 공정위에도 강한 영향력이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기업결합 심사에 시장 논리나 공정성이 아닌 다른 요소가 개입하면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승인이 나지 않으면 대상 기업의 영업은 망가진다.

      다만 공정위가 실제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코로나 이후 세계 공급망 사슬(서플라이체인)을 유지하기 위해 산업군 내 초대형 M&A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승인이 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산업은행 논리대로 아직 경쟁이 많고 대체재가 많아 잘 굴러가는 산업이라면 합쳐야할 명분이 크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 논리대로라면 어려움을 겪는 한국GM과 쌍용자동차도 업을 잘 아는 현대자동차그룹을 설득해 인수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논평했다.

      아시아나항공 M&A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기업결합 심사에 상당한 고심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19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원칙과 법에 의거해 경쟁 제한성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겠다"라며 "공정위 경제분석과를 통해 이 부분과 (대한항공의 인수합병(M&A)이) 소비자 후생에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본 뒤 기업 결합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