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銀 주도 거래, 위기 강조 후 경쟁사 인수자 초빙 데자뷰
자동차 산업도 위기에 고용 문제 많아…産銀 영향력도 커
논리대로면 현대차에 넘겨야 하지만 의지도 가능성도 희박
-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매각해 정책자금 투입을 최소화하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위기를 부각한 후 산업 재편 필요성을 역설하고, 가장 전문성 있는 기업을 초빙하는 방식은 대우조선해양이나 두산인프라코어 M&A와도 겹쳐 보인다. 산업은행은 기업의 경영과 거리를 두려하지만 절대적 영향력을 부인하기 어렵다.
의문은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다른 기업들에도 이런 방식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냐다. 한국GM, 쌍용자동차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자동차 산업의 위기 속에 고용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에서의 논리대로라면 자금력 든든한 기업과 협상해 살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러나 묶인 자금이 많지 않은 산업은행이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1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대 지각변동 중인 글로벌 항공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항공사들을 합쳐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공사 직원과 연관 업체 종사자, 그 가족까지 십수만명의 삶이 걸려 있기 때문에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아시아나항공 빅딜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에 넘김으로써 앞으로 들어갈 정책자금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도 했다.
국내 항공산업 통합은 실행 방법의 적합성을 떠나 어느 정도 시장의 공감을 얻고 있다. 전세계 항공 시장은 코로나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고, 각국 정부의 항공사 지원 및 구조조정도 숨가빴다. 많은 나라가 1곳의 대형 국적항공사만 두고 있다. 산업을 가장 잘 아는 기업이 인수하고, 구조조정도 하지 않겠다니 이보다 나은 방안은 없다. 산업은행이 나서 위기감과 재편 필요성을 강조한 후 가장 전문적인 인수자를 끌어온 것은 대우조선해양이나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양상과도 유사하다.
아직 남은 굵직한 구조조정은 한국GM과 쌍용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다. 전기차 시장으로의 대변환기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다. 매년 국내 시장 지위는 약화하는데 코로나까지 겹치며 판매에 더 어려움을 겪었다. 이대로면 직접 고용 인력 및 협력사 직원, 그 가족까지 포함해 수십만 명의 삶의 기반이 위태로워진다. 최근 미국 GM은 노조 파업을 문제 삼으며 ‘한국 철수설’에 다시 불을 댕겼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M&A에서 그랬듯 자동차 산업에서도 위기감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자동차는 산업은행이 육성 및 구조조정에서 강점을 가진다 자부해 온 전통산업 영역이기도 하다.
물론 아시아나항공과 한국GM이 처한 상황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이 최대 채권자이자 사실상의 의사결정권자다. 반면 한국GM은 산업은행이 2대주주고, 쌍용자동차는 주주가 아닌 채권자다. 두 업체 모두 외국계 대주주가 있어 항공사들에 비하면 산업은행의 운신의 폭이 좁다. 항공업은 해운업과 함께 기간산업안정기금에 명시된 지원 대상인 반면, 자동차 산업은 여러 요소를 따져야 한다. 자동차 기업들이 노사간 갈등으로 위기를 스스로 키운 면도 있다.
그렇다고 산업은행이 한국GM 등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은 것만은 아니다. 산업은행은 2018년 미국 GM과 협상을 통해 한국 철수를 막았다. 7억5000만달러를 새로 투자했다. 한국GM 2대주주로서 주요 의사결정 거부권(veto)과 이사 추천권도 있다. 19일엔 노사갈등 장기화로 인한 경영정상화 차질에 우려를 표했다. 산업은행은 쌍용자동차에 대해 기안기금 지원 대상은 아니라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6월엔 쌍용차에 ‘죽을 각오로 임하라’며 쓴소리를 했다. 산업은행은 한국GM 등의 방향타를 쥐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M&A 방식과 논리를 따른다면 자동차 산업재편에서도 새 인수자를 모셔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산업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으니 몸을 합쳐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하고, 완성차 업체나 재무 여력있는 대기업을 인수자로 초빙해와야 맞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다시 추진하며 5대그룹 및 항공사를 보유하고 있는 계열에 의향을 물었다고 밝혔다. 자동차 산업이라면 현대자동차그룹이 5대그룹이자 전문가이고, 자금력까지 있으니 딱 맞아 떨어지는 파트너다. 현대차가 맡으면 기업가치도 오를 테니 자금 회수에도 유리하다. 현대차는 위기의 기아차를 인수한 전례도 있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가 한국GM이나 쌍용자동차의 주인이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쓸데없는’ 몽상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현대자동차는 과거 부품사 원가율을 직접 관리하고, 재가 없이 M&A도 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당장 자기 협력사들 일감을 챙겨주기도 힘들다. 다른 완성차 업체의 고용과 협력사까지 책임질 여력은 없다. 아시아나항공 M&A처럼 완전한 고용 유지를 약속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GM 등이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시대 편입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현대자동차는 한진그룹이나 현대중공업그룹과는 체급이 다르다. 한진칼 경영진 입장에선 경영권 분쟁 득실을 떠나 자금줄을 쥔 산업은행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현대중공업은 산업은행으로부터 선박금융 지원을 받아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산업은행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곳이라 설혹 산업은행의 제안이 있더라도 받아들일 이유가 많지 않다.
아시아나항공 M&A에서 완전 고용 보장은 허구에 가까워 보인다. 항공기 임차료, 유류비, 인건비 중 회생절차에 들어가지 않고 줄일 수 있는 것은 인건비 정도다. 인건비가 그대로인데 합치면 나아질 것이란 기대는 하기 어렵다. 임금 삭감, 순환 휴직은 결국 구조조정이다.
항공산업 전체의 고용 유지 득실도 따져봐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빅딜로 저가항공사(LCC) 역시 한진그룹이 거의 독점하게 됐다. M&A 및 효율화로 재기를 꿈꾸던 다른 LCC와 임직원들은 벼랑끝에 몰리게 됐다. 국책은행이 다른 LCC 업체들의 부상 기회를 빼앗을 권리가 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M&A 논리대로라면 한국GM과 쌍용자동차도 망할 것 같으면 현대자동차가 다 가져가야한다는 것인데 말이 되지 않는다”며 “산업은행은 그동안 항공업에 들어간 돈이 많아 불안하니 빨리 처분하고 싶을 뿐이고, 이는 결국 다른 LCC들의 몰락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1월 2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