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방식도 제외…자금 지원 시급성·통합 항공사 재무부담 강조
産銀, 조 회장 우군 맡을 듯…”이번엔 조 회장 편들자 판단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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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은 한진칼에 자금을 투입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한다. 앞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별도로 지원할 때는 전환사채(CB)를 인수했지만 한진칼에선 보통주 증자 방식을 고집했다. 단순 대출도 고려하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자금 지원의 시급성, 통합 항공사의 재무 부담 등 당위성을 설명한다. 실질은 지분 경쟁에서 밀리는 현 계열주를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3자연합은 책임을 물을 당사자가 아님을 분명히 하며 선을 그었다. 산업은행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공생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 빅딜은 산업은행이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입하고,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2조50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후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에 1조5000억원을 증자해주고 지분 64%가량을 확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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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이 왜 인수 주체가 아닌 한진칼에 자금을 넣느냐도 의문이지만, 자금을 넣는 방식도 문제다. 기존의 사례들과 배치되는 면이 있다. 산업은행 등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총 4조8000억원을 지원했는데 1조1000억원(대한항공 3000억원, 아시아나항공 8000억원)은 영구 CB 인수 방식이고, 나머지는 대출 등이었다.
산업은행은 기업의 자금줄을 쥐고 의사결정에도 깊이 관여할 수 있다. 굳이 보통주를 받아와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 앞선 거래들에서 CB를 활용한 것도 당장 지분을 가질 필요가 없거니와 유사 시 전환권을 행사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주가 상승 시 차익 실현은 덤이다. 수출입은행도 2016~2017년 대우조선해양에 2조3000억원을 지원했고, 그 대가로 CB를 인수했다.
한진칼 정관상 CB 발행이 불가한 것도 아니다. 정관에 따르면 회사는 긴급한 자금조달을 위해 이사회 결의로 국내외 금융기관 또는 기관투자자에 3000억원 미만의 CB를 발행할 수 있다. 산업은행은 항공산업 재도약의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며 빅딜의 시급성을 강조한다. 기존 항공사 지원 사례를 감안하면 8000억원 중 3000억원은 CB로 조달하는 안을 고려할 수도 있었다.
3자연합은 법원에 한진칼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최근 한진칼과 산업은행이 참고할만한 법원 결정은 있었다. 코스닥 상장사 KMH는 키스톤PE가 2대주주로 부상하자 급히 사모 CB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키스톤PE는 KMH가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CB를 발행하려 한다며 발행금지가처분 신청을 했는데, 지난달 법원은 원고의 주장이 소명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이 결정대로면 CB를 발행하는 편이 경영권 방어 논란을 회피하는데 유리한 것 아니냔 지적이 나왔다.
산업은행은 한진칼에 대출하는 안도 배제했다. 항공산업 통합 주체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3분기말 기준 한진칼의 부채비율은 43.7%고 8000억원을 추가로 차입해도 100%를 넘지 않는다. 지주사 부채비율 상한(200%)까지는 여유롭다. 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은 산업은행이 한진칼과 합의각서를 맺고 대출을 해주면 되지만 변칙적인 수를 동원했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이 CB와 대출 등 방안을 물리고 보통주 증자 참여를 선택한 것은 결국 기존 계열주의 지배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경영권 향방을 직접 컨트롤하기 위해 주식 인수를 택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진칼 지분은 조원태 회장 측보다 3자연합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조 회장은 연내 우호 지분을 확보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한진칼의 CB 발행이나 차입금 조달 방식으론 내년에 경영권 수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CB를 한도까지 찍고 나머지만 보통주로 발행하는 경우엔 조 회장과 산업은행의 합산 지분이 근소하게 앞선다. 최근 3자연합 쪽의 자금 조달 움직임을 감안하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이동걸 회장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남의 돈으로 하는 KCGI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즉 협상 대상은 계열주인 조원태 회장뿐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형태가 어떻든 조원태 회장을 밀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다른 언론 인터뷰를 통해 3자연합이 경영권 분쟁이 본질인 것처럼 가처분 신청을 냈다며 유감을 표했는데, 정작 분쟁에 가장 깊숙이 관여해 캐스팅보트를 쥔 쪽은 산업은행이다. 당장 발등의 불이 급한 조 회장 입장에선 산업은행이 잘 짜온 각본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는 평가다.
한 아시아나항공 거래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CB가 아니라 주식 인수를 택한 것은 이 사안을 직접 컨트롤하기 위한 것”이라며 “산업은행은 경영권 분쟁에 관여할 목적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엔 KCGI보다 조 회장을 도와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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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1월 24일 16:4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