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본드 발행하고 석탄투자?…한국전력 '그린워싱' 논란 지속
입력 2020.11.30 07:00|수정 2020.12.02 09:11
    신규 석탄사업 강행·그린본드 발행 '모순'
    비단 채권뿐 아닌 회사의 사업 방향 문제
    글로벌 투자자들 '눈총'…"노선 정립해야"
    •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불분명한 ‘친환경 노선’을 보이면서 ‘그린워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전이 2년 연속 그린본드를 발행하고 있지만 신규 석탄산업 또한 계속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아직 그린본드 검증 제도가 미흡한 가운데 공공기관인 한전의 향후 대응과 관리가 국내 그린본드 시장 정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6월 한전은 역대 최저금리로 5년 만기 5억달러(약 5500억원) 규모의 글로벌 그린본드를 발행했다. 그린본드로 조달한 자금은 기존 채권 차환과 국내외 신재생 사업, 신재생 연계 설비 확충, 에너지 효율화 사업 등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전은 지난해 6월에도 같은 만기, 같은 규모의 글로벌 그린본드를 발행한 바 있다.

      모집액의 10배가 넘는 돈이 몰리면서 “성공적 발행”이라는 홍보가 이어졌지만 한편으로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그린워싱은 ‘친환경’을 내세워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세제 혜택을 활용하지만 실제 자금 집행에서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다. 포괄적으로는 실질적인 친환경 사업이 아니지만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연구에 따르면 6월 한전의 그린본드 발행에서도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를 이끄는 주요 기관들의 참여는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ESG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투자자들은 한쪽에서는 ‘반(反)환경적인’ 석탄사업을 신규 추진하면서 다른 쪽에서 ‘녹색 프로젝트’를 내세우는 기업에 투자하는 일은 원칙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IEEFA는 보고서에서 “ESG를 중요하게 고려하는 투자자 입장에선 한전이 해외 석탄 투자를 지속하는 점을 고려할 때, 한전이 발행한 그린본드를 신뢰하기 어렵다”며 “한전의 그린본드 발행은 얼핏 긍정적으로 보이고 실제 채권 공모에 참여한 투자자도 많았지만, ESG 투자가 급성장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 뿐 주요 ESG 투자자들은 여전히 한전의 그린본드를 외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에 비해 수익금 사용처 등 가이드라인(프레임워크)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더해진다. 통상 그린본드는 수익금 사용, 프로젝트 선정 과정, 수익금 관리, 사후 보고에 대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한전이 발표한 그린본드 프레임워크는 독일 최대 에너지업체인 에온(EON), 싱가포르의 뷔나에너지(Vena energy) 등의 글로벌 에너지업체와 비교하면 명확성과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내년 중반 발간될 한전의 첫 그린본드 수익금 배분 및 영향보고서가 그린본드 투자자들의 신뢰를 가를 전망이다.

      한전 측은 “ESG 강화 등 친환경 체제로 가는 방향성이 맞고 일부 석탄 산업 관련해서는 속도에 관한 문제”라며 “그린본드 사용내역은 홈페이지 등에 투명하게 게시하고 있고, 해외 주주들도 석탄발전 중단 선언 등으로 친환경 노선에 대해 받아들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 한전의 그린본드에 대한 ‘그린워싱’ 우려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는 불분명한 사업 노선 결정이 바탕에 있다는 평이다. 회사는 “친환경 노선을 확립했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한전이 신재생 발전기업으로 본격 전환하고 목표를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 올해 한전은 베트남 붕앙에 신규 석탄화력 발전소 건설 사업을 추진하면서 해외 투자자 및 정치권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지난 5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영국성공회 재무위원회 등 한전의 주요 해외 주주들이 공개적으로 신규 석탄발전 사업 철회와 명확한 ESG전략 노선 수립을 요구했다.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삼성물산에 연기금 운용사인 영국 리걸앤드제너럴 그룹·노르웨이 KLP 등이 평판에 손상이 간다며 사업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여당의 일부 의원들은 정부의 '탈(脫)석탄' 정책과 그린뉴딜을 통한 친환경 경제로의 전환 가속 추세에서 한전이 해외에 석탄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그린뉴딜에 역행’이라고 지적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예비타탕성 조사 결과 붕앙2 발전소 사업을 수익성이 마이너스(-) 950억원인 적자 사업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한전은 경제적 이익 등을 이유로 사업 추진을 강행했다. 10월 5일 이사회에서 사업 계획 원안을 의결하고 사업법인의 지주회사 지분 40%를 인수했다. 비난이 계속되자 열흘 후인 15일, 김종갑 한전 사장은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앞으로 한전과 발전회사가 주도해서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을 개발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또 추진 중이던 해외 석탄발전 사업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전환하거나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린본드는 특정한 사업에만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별도 계정으로 평가받고, 제 3자 인증을 거쳐 내역도 공개를 해야한다. 수익성 개선에 따른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주식 투자자와 그린본드 투자자의 입장은 원칙적으로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ESG가 메가트렌드가 되면서 채권 투자자와 주식 투자자의 관심도 수렴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사 전체의 사업 방향, 전략을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그린워싱’ 우려가 단순 그린본드에만 그치는 문제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전이 기존 석탄 사업의 수익성을 한번에 포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탈석탄'을 향한 주주들의 압력, 정부 정책과 발맞추기 위한 전환 자금이 필요한 ‘이중고’에 놓여있다”며 “특히 해외 투자자들은 기후변화 등 예측이나 통제가 불가능한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히 큰 상태이기 때문에 모든 기관이 한전을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사채보다 금리가 낮은 그린본드는 ‘환경성’ 보장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선 신뢰성이 가장 중요한데 국내에선 글로벌 기준에 비해 제도적인 가이드라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린워싱’ 우려는 한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투명한 검증이 가능한 인프라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