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반색하지만 담당 변호사들은 손사래
자문 1건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검토해야
“주식 거래 5배 업무 강도"…자문 후 퇴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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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업들은 사업양수도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법무법인 입장에선 예년만 못했던 M&A 자문 일감을 벌충할 기회였지만 일을 직접 맡아야 하는 변호사들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각종 계약부터 유무형 자산, 인력 이전까지 챙길일이 많다 보니 일반적인 주식양수도 거래보다 몇 곱절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업양수도 자문을 맡느니 일을 그만 두는게 낫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올해 M&A 시장의 열기는 예년 같지 않았다. 국내 M&A 사상 최대인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거래가 눈길을 모았으나 다른 대기업들은 대체로 잠잠했다. 사모펀드(PEF)들도 경영권거래(Buy out)에서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대신 사업부를 분할해 양도하는 거래는 잦았다. 비주력 사업 정리, 신성장 동력 육성을 위한 자금 마련, 유동성 확보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 목적도 다양했다. 올해 자문 실적에 고심하던 법무법인들에 좋은 일감이 됐다. 지금도 자문을 하고 있거나 검토 중인 건들이 적지 않은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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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양수도는 앞으로도 법무법인의 주요 먹거리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큰데, 정작 자문 변호사들은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투입 노력 대비 성과가 크지 않아서다.
보통의 경영권 지분 거래는 법률적 위험 요소를 검토한 후 명의개서(권리이전에 따라 명의를 바꾸는 것) 해주는 정도면 된다. 그러나 사업양수도는 말 그대로 사업을 떼서 주고 받으니 그와 관련된 자산, 권리 의무 등이 모두 옮겨져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살필 것이 많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부터가 본격적인 업무의 시작이다.
제조업의 경우 딸려 있는 공장과 기계설비, 부동산 자산 등을 모두 새로운 주인에게 넘겨줘야 한다. 이전 과정에서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야 하는 경우도 많다. 부동산과 일부 동산 자산의 등기를 새로 해야 하고, 물품을 공급하고 받는 거래처와의 계약상 권리 의무 관계도 모두 살펴 재설정 해야 한다.
공장과 관련된 인허가는 새로 받아야 한다. 기존에 하던 사업의 주체와 주인만 바뀌는 것이니 인허가 자체의 허들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사업의 주체가 바뀌는 데 따라서 인허가를 받아야 하니 자문하는 입장에선 잡무가 많은 셈이다. 공장은 환경, 안전 등 관리 감독 사항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플랫폼 기업이나 테크 기업의 경우엔 지적재산권 이전을 가장 신경을 써야 한다. 제조업도 그렇지만 신산업의 경우는 인적 자산이 특히 중요하다. 이전할 혹은 분할할 사업부 인력들로부터 일일이 전적(轉籍)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인수자의 위상이 기존 직장만 못할 경우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위로금을 주는 경우도 있다.
당장 영업이 중요한 소매업이나 B2C업의 경우엔 결제 문제도 신경 써야 한다. 예를 들어 거래가 완료된 후 첫 영업일에 카드 결제가 안돼 현금만 받아야 한다면 거래 무산에 준하는 수준의 귀책 사유가 될 수 있다.
즉 하나의 사업을 주고 받는다는 면에서는 통상의 경영권 Buy out 거래와 다르지 않은데 세부적으로 살펴야 할 것들이 많다. 거래 완료 일시에 맞추기 위해서는 만사 제쳐두고 사업양수도에만 집중해야 한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들인 시간만큼 비용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결국은 하나의 거래에 불과하기 때문에 크게 공이 되는 것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사업양수도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한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주식 매매 거래는 명의개설 후 돈과 주식을 주고 받으면 끝이지만 사업양수도는 챙겨야 할 사안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보니 주식 매매거래 4~5건을 하는 것만큼 힘이 든다”며 “사업양수도 거래 자문을 배정하면 퇴사하겠다는 변호사들이 있을 정돈데 실제로 자문을 마친 후 법인을 떠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업양수도 거래가 힘들기는 당사 기업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변호사들의 요청에 맞춰서 실제로 움직여야 하는 것들은 직원들이기 때문이다. 사업부서보다는 경영이나 인사부서의 부담이 크다. 과거 사업양수 거래를 지원했던 한 대기업 직원은 “데드라인 전에 모든 업무를 인계인수해야 하는 데다 별다른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쉴 틈 없이 바빴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사업양수도 때 신경써야 할 것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업양수도는 아니지만 LG화학의 경우 배터리 사업 분할 방식을 두고 모회사와 사업회사 주주들간 논란이 컸다. SK텔레콤의 모빌리티 사업(티맵모빌리티) 분할도 직원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갈수록 주주와 직원,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대형 법인 파트너 변호사는 “사업분할 자문을 맡고 있는데 LG화학 배터리 분사 때 여론이 냉랭했다 보니 기업이 선뜻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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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1월 2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