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리 '이중잣대'...은행엔 '올려라', 증권사엔 '내려라'
입력 2020.12.10 07:00|수정 2020.12.14 09:14
    주식 '빚투'는 권장하고 은행 '영끌'은 틀어막고
    부동산 시장ㆍ 주식 시장 바라보는 상반된 관점 드러나
    표 계산 위해 또 다시 금융시장 왜곡...책임은 누가 질까
    • 증권사 신용융자 잔고가 18조원을 돌파했다. 사상 최고치다. 지난달 30일엔 개인이 코스피에서 하루에만 2조2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역시 사상 최대였다. 7일에도 순매수액이 1조원이 넘었다. 개인이 하루에 1조원 이상 순매수에 나서는 건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빚 내서 주식한다'는 이른바 '빚투'가 유행인 가운데, 이 중 얼마나 빚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증권가에서는 배경 중 하나로 정부 정책을 지목한다. 정부는 지난 8월 27일 주요 증권사 사장들을 모아놓고 "기준금리가 0.75%포인트 인하되는 동안 신용융자 금리를 전혀 변동시키지 않은 증권사들이 있다"고 압박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총대를 멨다.

      일부 증권사 외에는 움직이지 않자, 정부는 금융투자협회와 손 잡고 신용융자 금리를 산정 공식을 명시한 모범규준에 직접 손을 대겠다고 엄포를 놨다. 조달금리+가산금리로 이뤄진 현행 체제를 기준금리+가산금리로 바꾸고, 이를 매달 발표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었다. 이 새 규준은 지난달 24일부터 시행됐다.

      정부 압박에 증권사들은 잇따라 최고금리를 0.5~1.5%포인트 낮췄다. 6월말 이후 16조원선에서 주춤하던 신용융자 잔고는 10월말을 기점으로 다시 폭증하며 결국 18조원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은행권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지난 10월 정부는 신용대출의 부동산 등 자산시장 유입세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 '대출 증가세를 관리하라'며 '구두 개입'에 나섰다. 이후 은행들은 신용대출 상품에 대한 한도 축소, 대출 금리 인상, 우대금리 인하를 잇따라 진행했다.

      그 결과 지난 10월 일반신용대출 가중평균금리는 3.15%로 1개월 전 대비 26bp(0.26%포인트) 급등했다. 2012년 9월 이후 최대 증가 폭이었다. 이어 11월13일 정부는 새로운 신용대출 규제를 발표했다. 고소득자의 1억원 초과 신용대출에 대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키로 한 것이다. 금리 인상과 한도 축소가 다시 이어졌다.

      대표적인 대출 창구로 따오른 카카오뱅크의 경우 지난 9월말 신용대출 금리를 15bp(0.1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이달 초 또다시 10bp(0.1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마이너스통장 상품의 경우 이 기간 최저 연 2.43%에서 2.83%로 무려 40bp(0.4%포인트)나 금리가 올랐다.

      가계부채가 걱정이었다면 이런 엇박자 정책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은행이건 금융투자업자(증권사)건 금리 인상과 한도 제한 정책을 일률적으로 적용했으면 될 일이다.

      이런 상반된 정책이 집행된 건 자산에 대한 정부의 편향성만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은행 신용대출은 부동산으로 유입될 우려가 있는 데다 부동산 가격 폭등이 지지율에 영향을 주니 이는 악(惡)이지만, 주식 신용융자는 주식 시장 부양 효과가 있는데다 주식 거래 증가에 따라 세수(稅收) 확보에도 도움을 주니 선(善)이라는 시각이 읽힌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현재의 실적 미래의 가치가 반영된 주가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코스피 2600선을 넘어 최고기록을 세웠다. 특히 의미 있는 것은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떠받치는 힘이 되었다는 점"이라고 발언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현 정부가 지지율을 위해 증시를 왜곡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건 이미 금융권에서 널리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참고기사 : 자본시장 뒤틀려가는데...'공매도 금지' 두고 정부는 표 계산만?) 은행 신용대출 제한과 신용융자 금리 인하로 신용융자 잔고 폭증이라는 풍선효과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전후 관계가 성립한다는 게 복수의 증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 역시 시장의 왜곡이다.

      지금이야 괜찮을 수도 있다. 미국의 정치환경 변화와 양적완화 정책이 맞물리며 달러 약세ㆍ원화 강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덕분에 지난달에만 국내 증시에 7조원의 외국인 자금이 들어왔다. 연말을 앞두고 자산 리밸런싱에 나선 국내 기관만 매도로 일관하는 가운데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빚투'가 극단까지 치달은 상황에서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며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에도 이 정부는 '소중한 지지율'을 지킬 수 있을까. 지난달 30일, 개인의 2조2000억원 순매수에도 외국인이 2조4000억원의 매물을 쏟아붓자 코스피 지수는 1.6% 폭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