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 대신 리파이낸싱에 의지한 인수금융 시장…미래대우 1위 수성
입력 2020.12.15 07:00|수정 2020.12.16 11:36
    [2020년 집계][M&A 인수금융 순위]
    조단위 빅딜은 사라지고, 조단위 리파거래만
    쌍용양회 거래 힘입은 미래대우 1위
    5위권 내 각축전, KB·삼성證 약진
    저금리 속 경쟁 심화하는 인수금융 시장
    • 국내 M&A 시장이 코로나의 여파를 피하지 못하면서 인수금융 시장도 딜(Deal) 가뭄에 시달렸다. 조(兆) 단위 빅딜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그나마 깜짝 발표된 대형 M&A는 대기업들의 자체자금으로 해결한 거래가 대부분이었다. 인수금융 참여 기관들은 신규 거래 대신 사모펀드(PEF) 발 기존 대출에 대한 리파이낸싱(자본재조정) 거래에 의존하며 올해를 마감했다. 저금리 기조의 지속하고 인수금융 참여 기관들은 늘었다. 점차 차주가 우위에 서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내년에도 인수금융 참여 기관들의 영업환경은 녹록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인수금융 주선사 상위 10개 기관의 올 한해 주선 실적은 약 20조6600억원이다. 지난해(약 20조9900억원)와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만해도 2018년(상위 10개사 약 12조8000억원)과 비교해 규모가 두 배 가까이 성장했을 정도로 인수금융 시장의 성장세는 상당히 가팔랐다. 초대형 투자은행(IB)들과 인수금융 시장에서 공고한 자리를 위협받던 시중은행들이 경쟁하며 공격적인 영업을 이어간 점도 원인이 됐다. 올해는 M&A 거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렇다 할 빅딜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인수금융 시장의 성장세도 멈췄다.

      그나마 금융기관들이 실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리파이낸싱 또는 리캡 거래가 상당히 많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PEF가 보유한 포트폴리오를 대상으로 한 거래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2018~2019년 일으킨 인수금융을 낮은 금리 상황을 이용해 리파이낸싱을 추진하며 이자비용 감소, 투자금 회수 등을 노리려는 전략이다.

      실제로 올해 대형 M&A 상위 5개(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푸르덴셜 생명보험, 아시아나항공, LG화학 편광판 사업부, SK네트웍스 직영주유소) 가운데 인수금융을 사용한 거래는 없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선 산업은행의 금융지원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아직은 확정하지 않은 상태다. 인수금융을 일으킨 PEF 거래는 맥쿼리PE의 대성산업가스 경영권 및 LG CNS 지분 인수, 넷마블의 코웨이 경영권 인수, KKR의 의료 폐기물 업체 ESG 인수, 베어링과 어피니티의 신한금융지주 지분, 한앤컴퍼니의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부 인수 정도가 눈에 띄었다.

      대신 조단위 리파이낸싱 거래가 상당히 많았다. MBK파트너스가 두산공작기계(약 1조4000억원), 한앤컴퍼니의 쌍용양회(약 1조6000억원), SKT-맥쿼리의 ADT캡스(약 2조500억원), IMM PE의 에어퍼스트 리파이낸싱 등의 거래가 진행됐다. 특히 한앤컴퍼니는 쌍용양회를 비롯해, K카, 에이치라인해운, 코아비스 등의 자본재조정을 진행하며 인수금융 시장의 가장 큰 고객이 됐다.

      올해 인수금융 리그테이블의 순위도 대형 리파이낸싱 거래에 참여 여부에 따라 순위가 엇갈렸다. 1위를 차지한 미래에셋대우는 올해 쌍용양회의 리파이낸싱 거래에서 1조원 이상의 주선 실적을 쌓으며 다른 금융기관들을 압도했다. 또한 미래에셋대우가 직접 지분을 투자한 SK브로드밴드 거래에 자금을 투입한 것도 주요한 실적이었다.

      2~5위권까지는 각축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였다. KB증권은 대성산업가스와 LG CNS 거래에, 삼성증권은 EMC홀딩스와 LG유플러스 PG사업부 인수 거래에 각각 참여하며 전년 대비 순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과거와 비교해 국내 금융기관들이 해외 거래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점도 눈에 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래에셋대우가 해외 거래에 가장 활발하게 참여했다면 올해는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뿐만 아니라 산업은행까지 해외 거래에 인수금융을 제공하는 실적을 올렸다.

      대기업이 투자여력이 예년과 같지 않으면서 내년도 M&A 시장도 PEF가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드라이파우더(투자하지 못한 자금)는 쌓여가는데 올해는 투자 활동이 주춤하면서 내년도 대규모 거래에 참여해야하는 필요성이 늘어났다. 금융기관들은 PEF 발 M&A 활성화에 인수금융 시장이 활기를 찾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저금리 속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 어려운 영업환경을 예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