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질 ESG 채권 시장…'그린워싱' 방지책 마련 시급
입력 2020.12.17 07:00|수정 2020.12.18 10:07
    코로나·그린뉴딜에 ESG 채권 발행 급증
    내년 기대 커졌는데 '그린워싱' 우려 여전
    "사후검증 위한 정부 차원 인프라 마련돼야"
    • 코로나를 계기로 2021년은 국내 ESG(환경·사회·거버넌스) 채권 시장 확대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각국 정부가 경기 부양 목적으로 ESG 채권 발행을 크게 늘리고 있고, ‘그린뉴딜’같은 한국 정부 정책의 상당 부분도 ESG 채권 투자와 연관되면서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다만 투자자들로부터 신뢰성 확보가 중요한 만큼 '그린워싱(Green washing)'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 지난해부터 국내 ESG 채권 발행은 크게 늘고 있다. 올해 국내 ESG 채권 발행금액은 총 46조 6000억원으로 2018년 1조3000억원, 2019년 25조7000억원에 비해 급증했다. 지방은행(부산은행), 캐피탈사(현대캐피탈), 일반기업과 금융 지주사(롯데지주,신한금융) 등이 각각 업계 최초로 ESG채권을 발행했다.

      국내 ESG 채권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2018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 의결권행사지침)를 도입해 ESG투자 논의가 시작됐지만 시장 이해도와 참여도 모두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ESG 채권 발행도 일부 금융기관 및 공사 정도였고, 이마저도 사실상 '홍보용' 성격이 강했다.

      현재 ESG채권이 국내 전체 채권발행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에 그친다. 발행도 특정 발행기관과 사회적채권(소셜본드)에 편중돼있다. 신규 투자보다 기존 사업 수행용으로 발행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실질적인 효과도 크지 않다. 연기금의 ESG 투자도 글로벌 수준에 비하면 미미하다. 지난해 글로벌 ESG 채권 시장 규모는 4660억달러(약 508조원)에 이른다. 그 중 녹색채권(그린본드)이 58%를 차지한다.

      금융업계에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ESG 채권 시장이 활성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2022년까지 ESG를 반영한 투자를 기금 전체 자산의 약 50%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점이 크다.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한 연기금은 내년부터 ESG 투자에 대한 벤치마크 지수를 개발해 위탁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큰 손'들이 움직이는 만큼 운용사는 물론 대형 상장사들도 관련 준비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정부 하에서 환경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바이든 정부부터 친환경 투자를 확대할 것이란 전망도 힘을 싣는다.

      주요 대기업과 금융사의 친환경 경영 강화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11월 삼성그룹은 전 금융계열사가 석탄 관련 투자를 금지하는 '탈(脫)석탄 정책'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물산도 ESG 투자 확대에 나선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직접 나서 수소사업 육성 등 ESG를 강조하고 있다. KB금융, 농협금융 등 금융그룹도 ‘녹색금융’을 필두로 탈석탄 정책을 공식화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각국 정부가 친환경 사업에 적극 나서면서 투자자도, 기업도 ESG 채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근본 비즈니스 전환’ 압박을 받으면서 자금 수요가 늘고 있고 있지만 친환경 테마로 실제 사업을 펼치고 수익을 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관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ESG 채권 발행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장은 커지는데 반해 '그린워싱' 방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린워싱은 ESG 채권 발행자가 금리 및 세제 혜택을 활용하지만, 계획된 투자 계획을 이행하지 않는 행위다.

      ESG 채권 중 시장 규모가 가장 큰 그린본드는 평가내역 공개, 제 3자 인증 등 발행 과정이 까다롭다. 사후 검증에서 투자 성과와 '녹색 효과'가 증명돼야 하지만 국내에서 관련 분류체계가 없다보니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현재 ESG 채권으로 조달한 자금을 해당 목적에 사용하거나 이행 내역을 공시하는 것 등은 의무 사항이 아닌 권고 사항이다. 해외 기관들은 국내 발행사의 가이드라인(프레임워크)이 글로벌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 글로벌 투자자들의 눈높이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유럽 시장에선 'ESG가 붙지 않으면 투자가 어려울 정도'의 분위기다. 특히 코로나로 기후변화 등 미리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 5월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포함한, 한국전력공사의 주요 해외 주주들이 회사에 해외 신규 석탄투자 사업 중단과 ESG 경영 강화를 요구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그린워싱 방지를 위해 정책 인프라 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럽연합(EU)은 올해 7월 그린본드 관련 분류체계(Taxonomy)를 제정해 법제화를 완료했다. 일본은 환경부에서 2017년에 이어 올해도 그린본드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8월 환경부와 금융당국,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녹색금융 추진 협의체'를 발족했다. 녹색금융 유인체계 구축과 분류체계, 그린본드 안내서를 공유할 예정이다.

      엄격한 해외 투자자들은 국내 ESG 채권 사용처의 모호한 기준에 의문을 던진다. 예로 국내 금융사들이 발행하는 소셜본드의 경우 '저소득층 지원’ 목적에서 '저소득층'의 기준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가 문제다. 이외에도 '소상공인·청년지원' 등 구체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ESG 채권은 일반채보다 금리가 낮아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경성' 혹은 '사회적 가치' 보장이 핵심"이라며 "해외 기관들은 국내에 사후검증 관련 분류 체계가 없는 것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노력과 더불어 정책 차원의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기업들이 ESG 채권을 발행할 때 공식 인증은 주로 회계법인에서만 진행했다. 회계법인의 인증은 ESG 채권 기준에 적합한 지 아닌지 '적부 판단'만 하는 한계가 있다. 가장 중요한 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사후 검증은 포함되지 않는다. 공신력 있는 해외 컨설팅 기관, 법무법인에서도 인증 및 자문을 받지만 사후 검증과는 연관이 적다.

      하반기부터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국신용평가가 처음으로 ESG 채권 인증평가를 실시했다. 회계법인 인증과 달리 사전 평가 후 해당 채권의 ESG등급을 5등급으로 나누고, 사후 검증을 통해 등급이 지속되거나 강등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11월 민간 기업으로는 롯데카드가 최초로 평가를 받았고 자동차·건설·유통사 등 다수 기업이 ESG 채권 인증을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