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판 벌린 항공산업 재편, LCC 옥석가리기는 시장의 손으로
입력 2020.12.18 07:00|수정 2020.12.17 17:08
    '증자 위한 정관변경'·'결합승인' 과제 산적
    딜 성사돼도 통합 이후가 진짜 위기 될 것
    정부가 시작한 구조조정, 공 이어받은 시장
    •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첫 관문인 법원 문턱을 넘으며 통합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통합 후 글로벌 항공사 순위권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지만 정관변경과 결합승인 등 거래 완주까지 남은 과제도 많다.

      국적항공사 통합을 정부가 직접 나서게 된 만큼 국내 항공업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특히 저비용항공사(LCC) 업계는 정부가 통합LCC 카드를 꺼내들면서 경쟁사들 간 경쟁 강도는 한층 강화, 시장 주도로 옥석가리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시작한 항공산업 재편은 시장이 이어받아 마무리하게 됐다.

      정관변경·결합승인·주도권 다툼...딜 완주까지 과제 산적

      대한항공과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실사와 결합승인 대비 작업에 돌입했다. 단일 대형항공사(FSC) 탄생에 대한 기대감이 모이는 가운데 정관변경부터 결합승인까지 거쳐야 할 관문이 많다보니 최종 완주까지 가능할지 우려도 나온다.

      법원으로부터 한진칼 신주 발행을 허가 받았지만 유상증자를 하려면 발행주식총수 한도를 확대하는 정관 변경안이 통과돼야만 한다. 내년 1월 정관변경을 위한 주주총회가 예정돼 있다. 최대주주인 한진칼 및 특별관계자(31.13%·조현아 전 부사장 제외) 지분만으로는 단독 통과가 어렵다보니 2대주주인 국민연금(8.11%)과 소액주주들로부터 찬성표를 이끌어내야 한다.

      국책은행이 주도적으로 인수 구조를 짰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은 찬성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소액주주들은 유상증자 흥행 기대감과 별개로 주주가치가 희석될 수 있어 찬성표를 내기 쉽지만은 않다.

      성공적으로 유증을 마치더라도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으로부터 최종 결합승인을 받아내야 한다. 정부 주도 딜인 만큼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는 무난한 통과가 예상되지만 유럽과 미국 등 장거리노선에 집중해온 양사에 해외 규제당국이 민감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국 당국의 결합심사가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대한항공과 조인트벤처(JV) 관계인 미국 델타항공의 시장점유율까지 고려하면 미국 경쟁당국으로부터 기업결합 승인을 받는 데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LCC 3곳(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의 통합은 더욱 난관이 예상된다. 구체적인 뼈대가 나오기도 전부터 주도권을 쥐려는 기싸움이 시작됐다. 당초 한진그룹의 진에어가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을 흡수합병하는 안이 유력안으로 제시됐지만, 에어부산이 자산 및 보유 항공기 대수 규모 기준으론 이들을 압도한다는 점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끝내 통합안 합의에 실패할 시 에어부산이 독자경영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 FSC 진짜 위기는 통합 후?…확신 부족한 사업·재무적 시너지

      모든 관문을 거쳐 딜이 최종 성사되더라도 막상 합병 후 계획했던 만큼의 시너지가 나올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에 '진짜 위기는 통합 이후가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품으면 국적항공사 '원톱' 체제가 된다. 보유 자산을 단순합산하면 40조원으로, 현재 글로벌 순위 20위 수준에서 7위까지 도약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중복 노선 규모가 42%로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라 시너지 효과는 '1+1=2'가 아닐 수도 있다는 평이 나온다.

      소속 항공동맹이 다른 점도 난관 요소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스카이팀, 스타얼라이언스에 소속해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흡수될 경우 스타얼라이언스를 탈퇴해야 하는데 100억원 상당의 비용 지불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항공 동맹간에 공유했던 마일리지를 쓰지 못하게 될 경우 고객 반발도 예상된다.

      대한항공은 사업적 시너지나 비용절감 측면에서 통합 효과가 막대할 거란 입장이지만 제시된 모든 계획이 산업은행의 지원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목된다. 아시아나항공 체질 개선 방안도 산은의 한진칼 증자를 통해 투입되는 구조라 대한항공 스스로 통합 FSC의 사업적·재무적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구심 해소가 어렵다.

      윤리경영위원회 및 경영평가위원회를 신설해 조 회장의 경영성과를 감시할 계획이라는 산업은행 존재감도 변수다. 당장은 국책은행의 출현이 조 회장에 우호적인 여건을 만들어줬지만 언제든지 조 회장 턱밑에 칼끝을 들이댈 수 있어 사실상 '적과의 동침'이란 해석이 나온다. 조 회장에겐 주주들뿐 아니라 업계에 통합 항공사 수장으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증명해내야만 하는 과제가 부여됐다.

      LCC업계 '옥석 가리기'…정부가 시작해 시장이 주도할 듯

      사실 '통합 대한항공'보다 더 큰 관심은 업계 전체 중 절반 가까이 합쳐지는 LCC업계의 지각변동이다. 한진그룹은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3개사를 단계적으로 통합할 계획이다. 실제로 이뤄지면 국내에선 압도적 1위, 아시아권에선 에어아시아 다음으로 2위가 될 수 있다.

      업계는 이번 거래를 두고 '초대형 LCC'의 탄생보다도 정부가 사실상 구조조정 신호탄을 쐈다는 점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FSC는 한 곳으로 통합해 경쟁자를 없앴지만 LCC는 오히려 유력한 사업자를 출현시켜 경쟁을 유도한 부분이 있다. 사실상 정부가 시작해 시장이 마무리하는 구조조정 수순이라는 평가다. 한진그룹과 산업은행이 잇따라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 강조하지만 LCC만큼은 자연스럽게 인력이 소멸하는 식의 감축 방안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거의 모든 LCC들이 벼랑 끝에 섰다. 대부분 외형 성장 한계에 도달했고 유상증자 등 자구안에도 자금은 금방 바닥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지원금 혜택이나 고용 안정 확약 등에 있어서도 FSC와 비교하면 대부분 찬물신세다.

      최악의 재무여력으로 매각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항공사 간 합종연횡으로 몸집을 키우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LCC는 살아남기 위해선 선제적인 구조조정으로 최대한 깔끔한 재무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독자생존이 어려운 곳들은 합종연횡만이 정답일 수 있다.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곳들은 결국 파산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며 "통합 LCC 3사를 포함해 2~3곳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제주항공의 행보가 주목된다. 그동안 LCC 1위 타이틀은 제주항공의 큰 무기였지만 통합 LCC 출현 가능성에 입지가 애매해졌다. 제주항공은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 등 항공사 M&A에 모두 참여했지만 최종 고배를 마셨다. 이번 거래로 규모의 경제를 일으킬 또 한번의 기회를 잃었다는 점이 아쉬울 만하다. 티웨이항공 등 타사와 합종연횡하는 식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