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소진률 저조”…내년 투자확대 불가피한 대형 PEF들
입력 2020.12.18 07:00|수정 2020.12.21 09:26
    펀드규모 매년 더 대형화 추세
    대기업 관련 거래 줄어…'관계맺기' 거래도 시도
    실탄 든든한 중소형사, 세컨더리 거래 늘어날 전망
    •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은 올해 대규모 투자를 쉽사리 달성하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대신 펀드레이징에 집중한 곳이 많았다. 이러다보니 내년에는 쌓여가는 드라이파우더(투자하지 못한 자금) 소진 작업과 투자기업 매각까지 바쁜 한 해를 보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주요 PEF들의 펀드 규모는 점점 커지는 추세다. 올해 초 MBK파트너스는 8조원대의 역대 최대 규모 블라인드펀드를 결성했고, 한앤컴퍼니와 IMM PE, 스틱인베스트먼트 등도 조단위 펀드 결성을 마쳤다. 이제는 5000억원 이상의 대형 펀드를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국내 PEF들의 투자여력은 상당히 늘어났다.

      다만 펀드 규모에 비해  PEF들의 바이아웃(경영권거래) 투자 활동은 그리 많지 않았다. SK그룹과 금융회사, 채권단 구조조정 거래를 제외하면 전체 M&A 시장의 대형 거래를 찾기 어려웠다. 초대형 M&A 거래로 기록된 SK그룹의 인텔 반도체 사업부 인수는 그룹 자체 자금으로 해결했다. 대신 국내외 대형 PEF들이 소수 지분에 투자하는 거래들이 눈에 띄었다.

      국내 주요 연기금의 한 관계자는 “LP들의 출자사업은 예년과 다르지 않게 진행됐지만, GP들의 투자활동은 크게 위축되면서 소진율이 크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며 “내년에는 PEF들이 드라이파우더 소진을 위해 공격적인 투자 활동을 펼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매물로 나오는 기업들의 가격이 높아질 것이란 우려를 낳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 펀드 규모가 커진만큼 대형 거래에 반드시 참여해야하는 대형 운용사들의 부담도 점점 늘고 있다.

      대기업발 구조조정은 수년에 걸쳐 진행되며 일단락 돼가는 분위기다. 내년도 최대 화두가 될 뉴딜이란 키워드에 맞춰 경영권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대규모 투자처를 물색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단 대형사를 중심으로 SK·CJ·현대중공업 등 기업의 확장과 경영권 승계 이슈가 있는 기업들에서 대형 거래를 물색하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PEF 업계에서 주목하는 국내 대기업은 단연 SK그룹이다. 올해 매그나칩 파운드리 사업부와 인텔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한 SK그룹은 반도체 분야의 영토확장을 예고한 상태다.또  SK바이오팜의 성공적인 증시데뷔와 더불어 제약·바이오 분야의 공격적인 M&A도 전망된다. ESG를 강조하는 SK그룹의 기조를 비쳐볼 때 SK E&S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인수·합병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SK그룹은 PEF들의 접점을 늘리면서 바이오 및 인프라 분야의 공동 투자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만 해도 SK그룹은 한앤컴퍼니에 바이오에너지 사업부를 매각했고, 현재는 SK루브리컨츠의 소수지분을 PEF에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초 매그나칩 파운드리 인수전에선 크레디언-알케미스트파트너스 등과 손잡고 투자에 나서면서 PEF와의 접점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CJ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에서 파생되는 거래들도 주목받고 있는데 모두 가업 승계와 맞닿아 있다. CJ그룹은 현재 뚜레쥬르 매각과 CJ올리브영의 상장전투자유치(Pre-IPO)작업을 진행중이다. 주요 운용사들은 향후 발생 가능한 거래에 주목하며 일단 CJ그룹과 인연을 맺어놓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국내 PEF 업계 한 대표급 관계자는 “펀드 규모가 커진만큼 대형사들은 대기업발 투자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상황이다”며 “해외 진출과 더불어 각 자회사들의 상장 작업이 시급한 SK그룹, 승계 이슈가 있는 몇몇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주요 PEF들이 꾸준히 스터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이파우더 소진과 더불어 또 한가지 숙제는 투자금 회수다. 코로나 상황이 심화하면서 일부 PEF들은 시장 상황을 지켜보자며 매물을 거둬들여야 했다.

    • 몇몇 대기업을 제외한 기업들의 투자 여력은 예년과 같지 않다. 이에 투자금 회수가 필요한 PEF들과 캐시플로어가 비교적 안정적인 매물을 찾는 PEF들의 필요성이 맞아 떨어지면서 세컨더리 시장의 활성화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내년초 초대형 M&A 거래를 예고하고 있는 H&Q의 잡코리아 인수전에는 국내 PEF는 물론, 리즈널펀드들이 가세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대형 전략적투자자(SI)들이 참여한다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컨더리 거래는 비단 대형사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중소·중견 PE들 또한 상당한 투자여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소형 M&A에서도 세컨더리 거래가 눈에 띌 가능성이 높다.

      올 한해 1000억원 이상의 경영참여형 펀드 결성은 약 25건을 넘었고, 지난해까지 포함하면 50여곳 이상의 운용사가 1000억원 이상의 경영참여형 블라인드펀드를 결성해 운영중이다. 블라인드펀드와 프로젝트펀드를 병렬로 구성하고, 인수금융까지 사용하면 수천억원대 M&A를 추진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

      PEF 업계 한 관계자는 “올 한해 코로나 상황에 눌려 엑시트 시기를 놓친 기업들 또는 업황 악화에 버티고 버티다 매각에 나서는 경우 등 내년에는 PEF발 매물이 상당수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LP들도 과거와는 달리 단순 GP교체에 대한 상황도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세컨더리 시장이 활발해 질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