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기업결합 심사 오락가락…CJ헬로 사례 대표적
정부 영향력 작지 않아…논리는 결국 만들기 나름
정부 부처 전폭 지원…”공정위 다른 생각 어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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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대형화, 독과점화 사례가 늘며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의 중요성도 커졌으나 점점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과 몇 년 만에 똑같은 사안의 결론이 달리 나거나,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사안은 별다른 제한을 가하지 않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심사 때 독점 방지와 소비자 보호 목적 외에 정부가 내세우는 방향성에 충실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적지 않다.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승인도 무난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공정위에 대한 이런 시선은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이달 초 KCGI 3자연합의 한진칼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한진칼의 증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및 통합 항공사 경영이라는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이며, 한진칼 현 경영진의 경영권 방어 목적은 아니라고 봤다. 아시아나항공 빅딜의 법적 위험은 사라졌고, 이제는 공정위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는 통상 관련 시장을 획정(劃定)한 후 그 시장에서의 집중도(허핀달-허쉬만 지수, HHI)를 살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번 빅딜로 유일의 초대형 국적 대형항공사(FSC)와 아시아 2위 저가항공사(LCC)가 탄생한다. 통합 항공사가 가질 점유율을 감안하면 경쟁제한성 문제를 비켜가기 쉽지 않다.
공정위는 최근 배달의민족 M&A 기업결합 심사보고서를 냈다.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요기요를 매각하는 조건을 부가했다. 심사가 진행되는 중 쿠팡이츠와 위메프오가 약진하며 약한 조건이 붙는 것 아니냔 예상이 많았지만 심사보고서에서는 사실상 기존의 사업을 내놓아야 배달의민족을 인수할 수 있도록 했다. 90%에 달하는 음식배달 시장 점유율, 가격 인상 시도 등으로 인한 부정적 여론이 영향을 미친 모양새다. 현재까지로는 '거래 불허'라는 의미와 같다.
공정위가 기업결합 심사에서 시정조치를 내릴 때는 주식이나 자산을 매각하라는 등 ‘구조적 조치’가 원칙이고, 이용료 인상 등 행동을 제한하는 ‘행태적 조치’를 부가로 내놓는다. 다만 실제 ‘요기요 매각’ 정도의 구조적조치를 내린 사례는 드물었다. 구조적 조치는 사실상 거래 무산을 뜻해 공정위로서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린데코리아 매각처럼 글로벌 M&A의 영향으로 국내 자산을 정리하는 경우는 왕왕 있지만, 국내 기업 거래에선 2004년 삼익악기의 영창악기제조 인수 거래 등 외에 사례가 많지 않다.
이를 감안하면 아시아나항공 빅딜도 기업결합 문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동일 업종간 결합(수평결합)에서는 HHI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작년 한국 시장에서 국제여객 수송점유율만 봐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19.3%, 14.1%였다. 두 회사의 점유율이 그대로 합쳐진다면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추정될 수밖에 없다. 작년 태림포장 M&A에선 동종업체들이 애초에 불참하거나 일찌감치 발을 뺐다.
그럼에도 불구, 한진칼이나 산업은행 등 거래 당사자들은 공정위의 기업결합은 시간 문제로 보는 분위기다. 일단 글로벌 시장에서 항공사간 기업결합 승인이 무산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 대부분 국가에서 하나의 국적항공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 위기의 항공산업 재편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공정위도 이 논리를 무난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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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 결론은 사안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민간 시장의 거래일 때는 기계적인 판단을 하지만 정부와 관련된 사안에선 다른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CJ헬로비전 M&A다.
2016년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을 인수해 SK브로드밴드와 합병하려 했으나 공정위에 발목이 잡혔다. 공정위는 기존 방송·통신 분야의 M&A와 달리 수평·수직적 기업결합으로 인한 경쟁 제한성이 혼재돼 있다고 봤다. 유료방송에선 일부 자산매각과 행태적 조치로는 경쟁 제한을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동통신 시장에서도 요금 인상 가능성이 커진다고 봤다.
공정위는 그러나 작년에는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를 승인했다. 2016년 이후 케이블TV 가입자가 감소하고 IPTV가 급성장하는 등 평가 토대가 달라졌다고 했다. 일부 이용요금의 인상을 제한하는 선에서 승인 결론을 내렸다.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시장의 변화를 살피지 못했다며 2016년 공정위의 판단도 잘못됐었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사 거래인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 거래도 비슷한 조건으로 공정위 승인이 났다.
불과 3년여 만에 결론이 달라진 것인데 그 배경엔 정권의 입김이 있었다. 2016년 당시 공정위는 ‘조건부 허가’를 고려했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자 승인 거부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을 거절하자 몽니를 부렸다는 것이다. 국정 농단 재판에서 이와 같은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작년 CJ헬로 M&A 때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통신시장 환경 변화는 더 가속화하는 상황이었다. 이 덕분에 공정위는 큰 부담없이 CJ헬로에 대한 기업결합 승인 방침을 바꿀 수 있었다.
1999년으로 거슬러가면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가 있었다. 당시에도 공정위 내부에선 승인에 부정적인 기류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의 구조조정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거래였기 때문에 결국은 약간의 가격 인상 제한 조건만 더해 승인 결정을 내렸다. 부실기업으로 원매자를 찾기 어려우니 현대자동차로의 기업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올해는 기업결합의 예외 인정 사례도 있었다. 공정위는 4월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거래에서 경쟁 제한 행위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조항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재무상황이 악화하는데 코로나까지 겹쳤고, 원매자들과 매각 협상도 모두 결렬됐다는 이유다. 이스타항공은 이상직 국회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이 창업주다. 여러 문제가 불거지며 거래는 무산됐지만 당시만 해도 성사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이런 과정들에서 공정위의 판단에 정부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론적으로 시장 획정 방안 가짓수부터 무한정이고, 각종 예외적인 요소들도 고려할 수 있다. '어떤 결론'을 내야 한다면 그까지 도달하는 논리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주도로 추진된 대우조선해양과 두산인프라코어 M&A도 현대중공업그룹이 공정위 심사를 문제 없이 넘을 것이란 전제에서 진행되고 있다. 민간 자본시장에서라면 시작도 하기 쉽지 않은 거래다.
아시아나항공 매각도 마찬가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밀어 붙이는 가운데 측면 지원도 충분하다. 금융위원회, 국토교통부 등 주관 부처들이 아시아나항공 빅딜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법원도 이미 ‘사업상 중요한 자본제휴’ 목적으로 정상기업 한진칼이 신주를 발행하는 것을 승인했다. 온 나라가 아시아나항공 빅딜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분위기에서 공정위가 다른 생각을 하기 쉽지 않다.
한 대형 법무법인 M&A 전문 변호사는 “정부의 방향이 정해졌는데 다른 기관이 방향을 트는 것이 가능한지 혹은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정부의 대리자 격인 산업은행이 총대를 메고 나선 순간 공정위 심사는 사실상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공정위라고 고심이 되지 않을 리는 없다. 국내 소비자를 도외시한 채 시장 획정 범위를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 사업 매각 등 구조적 조치를 내리자니 빅딜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요금제한 등 행태적 조치를 하자니 실효성이 의문이다. 두 FSC 체제에서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은 있었다. 통합항공사 매출 1조원이 늘어난다면 과징금 100억원이 두려울 리 없다. 여러 장치를 둬도 가격을 누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이번 거래를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는 산업은행 치하의 아시아나항공이 저가 공세를 펼 것이 두려워서다.
다른 M&A 자문사 관계자는 “이번 빅딜에서 소외된 LCC들은 대부분 자연도태되고 통합항공사의 시장 독점은 심해질 것”이라며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산업은행 등의 논리를 따라갈 것인지 관심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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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2월 0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