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 투자유치 받은 기업들, 위상·처지 따라 수익률 보장도 제각각
입력 2020.12.30 07:08|수정 2021.01.04 11:06
    PEF 투자유치 많아...목적·상황 따라 보장조건 갈려
    유력 대기업·인기 산업은 보장 수익률 낮아지지만
    사양 산업·비주력 기업은 더 후한 조건 제시해야
    염가 투자·자금 소진 땐 안전장치 약해도 거래 성사
    • 올해는 대기업들의 사모펀드(PEF) 투자유치 거래가 많았다. 신성장 자금 조달, 비주력 사업 정리 등 목적이 다양했는데, 기업들이 투자자에 제시한 회수 보장 조건도 천차만별이었다. 기업의 위상이 높거나 유망 산업인 경우엔 보장수익률을 박하게 제시해도 경쟁이 치열했지만 반대의 경우는 달랐다. 기업가치를 낮게 산정하거나, PEF 자금 소진 부담이 있는 경우엔 안전장치가 강하지 않더라도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CJ그룹은 CJ올리브영 재무적투자자(FI)로 글랜우드PE를 선정했다. 글랜우드PE는 CJ올리브영 기업가치를 1조8000억원으로 보고, 4000억원가량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와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 이경후 CJ ENM 부사장 등 오너 일가 보유지분 일부와 신주를 합해 20% 이상의 지분을 가지게 된다.

      CJ올리브영 투자는 구주 매각 주체가 개인이니 풋옵션 등 실효적인 안전장치를 보장하기 어려웠다. 일부 원매자들은 CJ그룹의 고자세에 불만을 표했다. 글랜우드PE도 CJ올리브영이 고의로 상장을 하지 않는 경우에만 일부 불이익을 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 회피보다 오너 일가가 계속 지분을 가지는 점, 향후 디지털 전환에 따른 성장성이 크다는 점에 기대를 건 것으로 풀이된다.

      CJ CGV는 케이스톤파트너스에 2000억원 규모 우선주와 메자닌을 발행하는 안을 협의 중이다. 케이스톤파트너스는 CJ그룹이 CJ CGV를 팔 때 함께 팔수 있는 권리(Tag-along right) 외에 4% 초반대 수익 보장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영화산업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고, CJ CGV도 사업 축소를 계획하고 있다. 현재로선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장수익률이 높다고 보긴 어렵다. 상황이 한결 나았던 작년 해외법인 투자유치 때 조건보다도 낮다.

      케이스톤은 주가 상승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CJ CGV의 주가는 2015~2016년 고공행진하며 12만원을 넘기도 했지만 올해는 2만원 초반대로 10년전 수준에 그치고 있다. 코로나가 진정돼 작년 수준으로만 돌아가도 상당한 차익을 거두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SK루브리컨츠 소수지분 매각을 진행 중이다. 대형 사모펀드와 일본계 전략적투자자(SI) 등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거래가 아닌데다 성장성도 담보하기 어렵다 보니 매력도가 높지 않다. 윤활기유 1위 업체라지만 경쟁자들이 사업을 접은 반사효과도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의 자금 사정이 여유롭지 않다는 점도 변수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SK루브리컨츠의 기업가치를 낮추든, 보장을 강화하든 일정 부분 양보가 필요할 수 있다. 상장이 되지 않을 경우 일정 수익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수익률이 5%는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2018년 11번가(3.5%)와 올해 SK브로드밴드 합병법인(3.5%) 등 SK그룹의 FI 유치 거래보다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11번가와 SK브로드밴드는 SK텔레콤의 5대 핵심사업이지만, SK루브리컨츠는 SK그룹의 친환경 노선과 맞지 않다.

      올해 알케미스트캐피탈 등의 매그나칩 파운드리사업과 청주공장 인수 거래엔 SK하이닉스와 새마을금고가 출자자(LP)로 참여했다. SK하이닉스가 유력한 회수처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SK하이닉스는 ‘단순 투자’로 선을 그었다. 다만 작년 거래를 꾸려가던 초기 단계에선 SK하이닉스 임원들도 분주하게 움직였고, SK 쪽에서 보장할 수익률도 6~7% 선에서 거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지방 정부와 당분간 파운드리 확장을 제한하기로 협약을 맺은 데다, 인수 설비의 노후화가 심하고 신규 투자 부담도 크다보니 보장 수익률을 높이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KB금융은 지난 6월 칼라일에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하는 2400억원 규모 EB를 발행했다. 이자율이 없는 그야말로 원금만 보장되는 채권성 투자였지만 칼라일은 투자를 결정했다. KB금융 주가가 상승할 것이란 기대였지만 한동안 한국 시장에서 활약이 뜸했던 영향도 있었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한국 투자는 원금만 잃지 않는 조건이면 관대하게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KB금융 주가는 EB 교환가격(4만8000원)에 근접한 4만원 중반대에 형성돼 있다.

      JTBC스튜디오는 최근 프랙시스캐피탈로부터 상장전투자를 받기로 하고 막바지 조건을 조율하고 있다. 투자유치 초기 회사는 기업가치로 1조2000억원 수준을 바랐다. 해외 유력 OTT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원매자들은 1조원 내외를 적정 가치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프랙시스는 기업가치를 1조5000억원 수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입장에선 가치를 높게 평가 받았으니 반길 일이지만 고민이 없지는 않다. 정확한 보장수익률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찌되었든 향후 돌려줘야 할 최소 금액도 크다는 점에 다소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기업들의 투자 유치 거래가 많았는데 기업의 시장 지위나 사업성, 매력도에 따라 투자자에 보장해줄 안전장치 조건들은 천차만별이었다”며 “다만 시장에 유동성이 많다 보니 급이 떨어지는 기업들이 조건을 박하게 정하려 욕심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