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미전실' 불식 못 시킨 삼성 준법위와 이재용 부회장
입력 2021.01.20 07:00|수정 2021.01.21 09:13
    '사과·반성' 아닌 '재발방지' 주문한 재판부
    이 부회장·삼성 준법위 오답지 마련한 셈
    출범 초 거론된 태생적 한계만 '재확인' 평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파기환송심 재판 결과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재판부 당부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출범하고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까지 나섰지만 양형에 반영할 만한 실효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결론난 것이다.

      파기환송심 판결문의 요지는 단순 명료하다. ▲이 부회장의 위법행위는 실형 선고와 법정구속이 불가피하며 ▲양형에 반영하기엔 준법위 활동이 제2의 미전실 출현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을 필두로 삼성그룹 전반이 재판부·준법위 의견을 전향적으로 따른 데 비해 박한 결과가 나왔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 지적은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아니라 '앞으로' 삼성그룹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판부는 "파기환송 판결 선고 이후 준법감시제도를 강화했다고 감형을 할 경우, 기업들에 유죄가 인정되면 그제서야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하거나 강화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라며 "준법감시제도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위법행위의 예방에 있는 것이지 감형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 판결문은 준법위 활동의 한계점을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판결문 주요 내용에 따르면 지난 1년여 동안 이 부회장과 준법위가 오답지에 골몰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3월 삼성그룹이 준법위 권고로 처음 사과에 나섰을 때도 초점이 어긋났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삼성전자를 비롯한 17개 계열사가 '구(舊) 미전실'이 임직원 기부금 후원 내역을 무단 열람한 것을 두고 공식 사과했다. 시기적으로 이 부회장에 불리하지 않을 소재(7년 전 미전실 위법행위)를 골라 직접 당사자가 아닌 삼성그룹 전체가 사과에 나서는 모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준법위가 이 부회장을 직접 거론하며 공개 사과할 것을 권고했지만 역시 재판부 주문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 부회장 대국민 사과와 무노조 원칙 폐기, 준법경영에 대한 약속이 전향적 조치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10년 넘게 반복된 지배구조 문제 해결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 관련 한 전문가는 "재판부가 이 부회장과 삼성의 반성을 근거로 사실상 미전실의 후신 격인 사업지원TF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기엔 부담이 따랐을 것"이라며 "재판부가 양형 힌트를 줬다는 세간 비판에도 불구하고 준법위 한계가 개선되지 않은 결과 이 부회장과 준법위, 재판부 모두가 우스운 꼴이 됐다"라고 평가했다.

      결국 출범 초부터 지적된 준법위 태생적 한계가 파기환송심 재판을 통해 재확인한 상황이다. 경영공백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재계 한 관계자는 "차라리 처음부터 정공법으로 준법위 활동 근거와 권한을 정관에 반영하는 등 정공법으로 나갔다면 재판부가 양형에 반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것"이라며 "재판부 측에서 이재용 말 한마디에 해체 가능한 조직이라는 외부 비판을 무시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