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 공매도 외치며 롤러코스터 올라탄 개미들...'루보 사태' 재현 우려
입력 2021.02.04 07:00|수정 2021.02.05 14:39
    셀트리온·에이치엘비, 공매도 상위종목 주가 출렁
    정부 “투자자 군집행동 예의주시”
    게임스탑 발 반(反) 공매도 운동 지속여부는 미지수
    “기업 본질가치로 회귀하는 과정” 이벤트 투자 우려도
    • "개미판 루보 사태가 될 수도 있겠네요." (한 증권업계 관계자) 

      미국 게임업체 게임스톱(GameStop)에서 촉발된 개인투자자와 공매도 세력과의 전쟁은 국내증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매도가 금지된 현재, 지난해 3월 기준 공매도 잔량이 많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몰리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집단행동이 확산할 조짐도 나타나는데 반 공매도 운동으로 인해 기업의 주가가 펀더멘털에서 과도하게 벗어날 경우 투자자들의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게임스톱 사태는 공매도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개인투자자들이 결집해 주가를 끌어올린 사건이다다. 주가는 한달만에 약 1600% 상승했고 공매도의 주체인 헤지펀드 운용사들의 손실률은 197억5000만달러(한화 약 22조400억원)에 달했다. 미국 내 개인투자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공매도 잔고 비중이 높은 AMC, 베드배스앤비욘드 등에도 매수세를 집중했다. 공매도 전략을 사용하는 일부 헤지펀드들이 다른 주식을 팔아 손실을 충당하면서, 투자심리가 다소 위축하며 미국 증시 하락을 이끌었다.

      이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예상한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로 몰리면서 일부 기업들의 주가가 출렁였다. 유가증권 시장 공매도 잔고 상위 종목인 셀트리온과 두산인프라코어, 코스닥 시장의 에이치엘비, 헬릭스미스 등의 주가가 일제히 급등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특히 공매도 잔고가 2조598억원으로 가장 많은 셀트리온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최근 5영업일간 5220억원 규모의 주식을 사들이며 급등했다.

      일부 주주단체를 중심으로 공매도 대항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단체 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면서 공매도 잔고가 많은 기업들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졌다. 정부도 이 같은 사태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게임스탑 등 일부 종목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태는 군집행동이 시장 변동성을 높인 사례로 그 파장을 예의주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태가 지속될지 여부는 예단하기 이르다는 평가다.

      게임스탑의 경우 유동성이 상당히 적었던 종목 중 하나로, 투자자들의 결집으로 주가 상승을 이끄는데 비교적 손 쉬웠다면 현재 거론되는 국내 기업들의 경우엔 상황이 다르다. 셀트리온을 비롯한 국내 주요 상장사들은 개별 종목 선물이 상장돼 있기 때문에 급등락의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개별 선물의 거래량과 유동성이 적다는 점은 변수다.

      국내 한 기관투자가 주식운용 담당자는 “국내 공매도 상위종목의 상당수가 선물 시장에 상장돼 있기 때문에 주가의 급등락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며 “과거와 비교해 개인투자자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주가의 급등으로 차익실현에 나서는 개인들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크게 확산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국내 한 증권사 연구원 또한 “코로나 위기 이후 미국 증시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미국주식의 유동주 대비 공매도 잔고는 2012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며 “미국의 추가 부양책이 통과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유동성이 늘어나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은 있지만 결론적으로 기업들의 주가는 본질적 가치로 회기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태의 확산으로 일부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도 크다. 주가조작 사건으로 잘 알려진 루보사태와 같이 실체 없는 주가 상승에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상당히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루보사태는 일부 주가조작 전문가들이 차명계좌를 동원해 1300원대 주식을 5만원까지 약 40배를 끌어올려 부당이득을 취한 사건이다. 이 같은 행태가 적발되자 5만원을 웃돌던 루보 주가는 2000원으로 폭락하면서 상당수의 개인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기도 했다.

      은 선물(silver futures)로 옮겨간 '미국 개미'들의 '제 2의 게임스톱' 역시 고전 중이다. 현지시간으로 2일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 은 1트로이온스 당 가격은 장중 5% 이상 폭락했다. KODEX은선물(H) 등 국내 은 관련 투자상품도 이날 장중 약세를 보인 데 이어, 시간 외에서도 2% 이상 하락세를 이어갔다.

      외국계 증권사 한 관계자는 “폭등했던 게임스탑의 주가가 최근 크게 하락했고,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공매도 상위 기업들의 주가도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벤트가 지속할 것이란 기대감으로 투자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예상된다”며 “결국 급등했던 국내 주식시장이 실적에 기반한 주가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