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소송 '패소' SK이노, 조단위 합의금 현실화에 재무악화 불가피
입력 2021.02.11 09:25|수정 2021.02.11 09:25
    美 ITC "SK 10년간 수입금지"…LG 손들어줘
    2조원 합의금 현실화…60일 이내 조율 나서야
    올해만 7조원 필요한데 조달 일정은 불확실
    LGES, 합의금 문제에서 더 강경해질 가능성
    •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에너지솔루션(LGES)이 제기한 배터리 영업 비밀 침해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의 패소 판결을 내리며 소송 합의금 문제가 현실화했다. 10년간 미국 내 수입금지 명령 효력이 발생하기까지 60일 이내 합의하지 못하면 미국 공장 수주 계약 납기가 힘들어진다. 합의금 규모를 고려하면 SK이노베이션의 재무부담 악화가 불가피하다.

      10일(현지시각 기준) 미국 ITC는 SK이노베이션에 10년간 미국 내 수입 금지 명령을 내렸다. 고객사 중 포드와 폭스바겐에 납품하는 물량 일부에 각각 4년, 2년간의 유예를 적용했다. 양사가 ITC 측에 낸 탄원서를 반영해 일자리 등 미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고려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ITC 결정이 소송의 쟁점을 실질적으로 밝히지 못한 것이 아쉽다"라며 "주어진 유예기간과 이후에도 고객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힘을 싣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있지만 지적 재산권 다툼 문제에 행정부 개입이 불가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이 투자자에게 제시한 배터리 사업 청사진과 늘어난 수주잔량을 고려하면 사업 불확실성은 대폭 증가했다. 현재 수주 계약을 반영해 2025년까지 매년 3조원 이상을 투입해 미국 공장을 포함한 생산설비를 125GWh 이상 확충해야 한다.

      본 판결의 효력은 60일 이후 발생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4월 말까지 LGES와 합의에 이르러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양사는 지난 1년간 합의 문제를 다뤄왔지만 합의금 눈높이에선 여전히 격차가 큰 상황으로 전해진다.

      패소 판결은 SK이노베이션에 최소 2조원 규모 재무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올해 계획 중인 투자지출금은 4조5000억원 안팎이다. 2조원 상당 합의금을 반영하면 7조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다.

      지난 실적발표회에선 연간 기준 순차입금 규모를 10조원 안에서 유지하겠다고 제시했다. 성장성 높은 배터리 투자를 지속하면서도 투자자들의 재무부담 악화 우려가 큰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4분기 말 기준 SK이노베이션의 부채비율은 149%로 확대했다.

      합의금을 언제, 어느 시점에 반영하느냐에 따라 재무지표가 추가 악화할 가능성도 높다. SK이노베이션은 LGES와의 소송비용 수천억원을 지금까지 배터리 사업부에 반영해왔다. 2조원 안팎의 합의금을 최종 판결이 나온 올해 손실로 반영할 경우 실적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년 동안 연간 기준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진행 중인 사업부 매각 및 상장 작업을 통한 조달도 예정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지난 2019년 이후 진행 중인 페루 88, 56광구 매각은 페루 정부의 승인 보류로 2년간 매각이 지연되고 있다. 윤활기유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의 소수지분 매각 역시 완료 시점은 상반기 이후가 될 전망이다. 분리막 자회사인 SK IET의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LGES와의 합의금으로 흘려보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승소한 LGES 역시 시간을 끌 여유는 없을 전망이다. 합의금 문제에서 더 강경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LGES는 사업보고서 제출과 상장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 성장성을 부각시켜야 하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합의금을 받아낼 필요가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LGES 역시 수천억원 규모 소송비용이 발생했고 품질비 추가 발생 우려도 있어 합의금 문제에서 양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ES은 "SK이노베이션이 ITC의 최종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하루빨리 소송을 마무리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라며 "(당사는) 배임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주주와 투자자가 납득할 수 있는 합의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