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카 논란 속 조용히 출범 준비하는 현대차 '통합' 소프트웨어社
입력 2021.02.15 07:00|수정 2021.02.16 08:45
    25일 현대오토에버 3사 합병 위한 주총 소집
    SW 개발 역량 현대오토에버 중심으로 집중
    향후 현대차그룹 수익성 좌우할 역할로 부상
    • 현대자동차그룹 소프트웨어(SW) 계열사들의 합병 작업이 레일 위에 올랐다. 빅테크(Big Tech)와의 연합전선 구축에 대한 시장 기대와는 별개로 그룹의 SW 역량 강화 의지는 지속되는 것이다. 애플카 논란이 '현대차는 IT 회사로 변신할 수 있을까'라는 과제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10일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오트론과 현대엠엔소프트와의 합병과 사업목적 추가를 위한 정관 변경 승인을 의결하기 위해 25일 주주총회를 소집하겠다고 공시했다. 이번 주총에서 3사 합병 안건을 승인하면 기존 주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거쳐 4월1일 합병법인이 출범한다. 현대오토에버 포함 3사는 오는 15일부터 24일까지 전자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 3사 합병안은 자율주행 전기차 생태계 구축을 위해 다수 계열사에 분산된 SW 개발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오트론, 현대엠엔소프트는 각각 차량용 SW를 개발·판매해왔다. 차 산업 트렌드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차량 외부와 내부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동시·일괄적으로 처리하는 통합 SW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합병 후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그룹 수익성을 좌우하는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애플과의 자율주행 전기차 공동 개발에 가려져 있었지만 사실상 현대오토에버의 SW 역량에 따라 빅테크와의 협업은 불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기아 CEO 인베스터데이에서도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문제의식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이날 행사 이후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질의응답에서도 전용 전기차 라인업에 적용될 OTA 기술 등 SW 서비스 사업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참석한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현재 제어기 OTA 원천기술을 확보했고 2023년부터 전기차 라인업에 적용해 개발한 SW를 업데이트 가능한 형태로 로드맵을 짜고 있다"라며 "테슬라의 비즈니스 케이스를 벤치마킹한 것인데 현대차그룹 역시 SW 옵션 선택률에 따라 수익성이 좌우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테슬라가 올해 2만달러(한화 약 2200만원 수준) 전기차 출시 배경과도 관련이 깊다. 테슬라는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전동화를 추진하는 모든 완성차 업체가 구축하고 있는 자율주행 전기차 생태계에서 3년 이상 앞서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가에 전기차를 팔아도 OTA 업데이트를 통해 SW 구독 상품을 판매하면 천문학적인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테슬라는 OTA 업데이트를 통해 제로백을 0.5초 앞당기는 등 성능 개선도 가능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1월 유럽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SW가 자동차를 정의하고 이윤을 이끌게 될 것"이라며 "자동차 산업의 돈을 버는 방식이 바뀌었다. 폭스바겐 등 기존 자동차 회사의 SW 개발 능력은 의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자연스럽게 합병 이후 그룹 차원에서 현대오토에버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예상하는 목소리도 늘어나고 있다.

      경쟁사의 의지도 만만치 않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자체 운영체제(OS) 플랫폼 개발과 SW 서비스 개발을 위해 Car.Software사를 설립하고 5000명 이상 IT 인력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이나 현대차보다 전기차 플랫폼 개발에서 뒤처진 데다 투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완성차 업체는 엔비디아에 토탈솔루션을 맡기고 있다.

      테슬라는 수년 전부터 인공지능(AI)과 딥러닝, 자율주행 SW 개발을 위해 IT 인력을 흡수해왔다. 현대차그룹이 필요로 하는 기술자도 엔진이 아니라 IT 영역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 중심에 그룹의 SW 개발을 집중 수행할 현대오토에버가 있는 상황이다. 현대오토에버는 지난해 처음으로 그룹 출자사업에 참여하는 등 존재감을 점점 더 키우고 있다.

      애플카 논란을 둔 시각차도 여기서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테크 기업인 애플과의 협업을 통해 SW 개발과 향후 전기차에서 발생할 데이터 사업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지를 집중 검토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현대오토에버를 통해 관련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애플이어야만 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플랫폼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테슬라처럼 애플카 역시 배타적인 자율주행 SW 개발을 통해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할 것이다. 애당초 테슬라가 만든 자율주행 전기차 사업 구조는 애플이 아이폰에서 만들어낸 구조와 거의 동일하다"라며 "SW에서 현대차가 크게 도움을 받을 일이 없다면 현대오토에버의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다른 빅 테크와 협력하는 게 그룹으로선 더 나은 판단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