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복ㆍ관료주의ㆍ회장 의전이 늘 1순위
금융사들에 "사무실로 들어와라, 금리 깎아라"
"포스코와 거래를 감사히 여기라"…산은도 한수 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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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국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열린 산업재해 청문회는 사실상 ‘최정우 포스코 회장 청문회’였다. 다른 8곳 기업들은 대표가 나오는데 포스코는 그룹 총수격인 회장이 소환됐으니 집중포화가 불 보듯했다. 최 회장은 진단서까지 제출하며 청문회를 피하려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포스코는 수장의 체면을 챙기려 했겠지만 결국 정치권의 압박에 납작 엎드렸다. 최 회장은 내달 연임이 걸린 주주총회를 앞두고 있어, 정치권과 여론의 눈밖에 나서 득 될 것이 없다. 평소라면 뛰어난 대관 역량을 활용해 버텼을 테지만 지금 기류는 포스코와 최 회장에 우호적이지 않다. 청문회에서도 특혜 채용, 부당이득 취득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고 자진 사퇴 압박이 이어졌다.
포스코의 기업 문화는 다른 대기업과 다르다. ‘군홧발’로 터를 닦은 기업이다보니 여전히 상명하복 문화가 남아 있고 관료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30년씩 근속하는 직원들이 수두룩하니 좀처럼 기업 문화가 바뀌지 않고, 임원들은 총수의 눈밖에 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포스코 회장의 해외 출장을 지켜본 한 인사는 ‘의전 매뉴얼만 수백 페이지는 되는 것 같다’며 경직된 문화를 꼬집기도 했다.
민영화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정부 입김에선 자유롭지 않다. 정부 정책에 따라, 회장 교체에 따라 사업 방향이 널뛰기 일쑤고, 인사 때는 정권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간 포스코 회장들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번 정부에선 민관을 막론 과거의 인사 공식이 통하지 않은 사례가 많았다. 정권 막바지니 6개월 장관, 1년 짜리 사장 자릴 노릴 인사들이 많을 것이다. 최 회장의 ‘번복’도 이런 위기감의 발로일 수 있다.
포스코는 지난 18일 이사회 산하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위원회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최근 철강 분야에서의 환경 오염 절감, 전기차 배터리 부문 육성에 힘써왔으니 이상하게 볼 것은 아니지만 청문회를 앞두고 있던 터라 시기가 공교로웠다.
포스코는 물류 자회사 설립에 공을 들였지만 작년 하반기부터는 속도 조절에 나섰다. 연임 문제를 앞두고 해운업계와 정치권의 반발을 살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란 평가다. 최근엔 흥아해운 2대주주로 해운업 우회 진출을 꾀했지만, 이마저도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외적으로는 거침이 없다. 고자세에 일방통행이다. 국가 지원으로 커서 주요 산업재인 철강을 틀어쥐고 있으니 절대 갑(甲)으로 군림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현대차그룹이 현대제철을 따로 뒀겠냐는 오래된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포스코와 일을 해본 외부 기관들은 고압적인 분위기에 학을 떼곤 한다. 서로 성과를 내야 하니 한 사안을 두고도 담당자들의 말이 다르거나 서로 다투는 사례가 허다하다. 외부 자문을 받더라도 위에 보고하기 난처하거나, 위의 입맛에 맞는 내용이 필요한 경우엔 내용을 바꿔달라 하기도 한다.
글로벌 기업이지만 시장의 흐름과는 괴리돼 있다. 자문료를 지급하는 데 박하다. 한국은행보다 자문료가 짜다며 발을 끊은 곳도 있다. 이미 프로젝트 담당 부서와 합의한 자문 보수도, 구매 부서에 가면 금액을 깎자며 말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구매 부서는 비용 절감이 핵심성과지표(KPI)라며 버틴다. 애초에 원하는 것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것이 ‘꿀팁’으로 거론된다.
포스코는 금융사 사이에서도 절대 갑으로 통한다. 신용도나 글로벌 시장 지위가 대형 금융지주에 밀리지 않으니 아쉬울 것이 없다. 여러 해 전엔 주요 시중은행들에 전산 시스템을 포스코 방식으로 맞추지 않으면 거래하지 않겠다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돈을 빌릴 때 금리를 후려치는 정도는 애교라는 지적이다.
포스코와 계열사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일으킬 때 대부분 금융사들을 자사로 불러 협상을 진행한다. 대주단 구성이 완료되면 ‘고맙다’가 아닌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와 일할 기회를 주었으니 고마워하라는 고압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이름값으론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 산업은행조차 포스코엔 한수 접어준다.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부실 투자 후 포스코 계열사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산업은행이 도왔지만, 자금 사정이 나아진 후에도 포스코에서 변변한 인사치레가 없자 산업은행은 불쾌함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산업은행과 감정이 틀어지자 퇴직연금을 빼겠다 엄포를 놓고, 실제 실행에 옮겨 원성을 사기도 했다.
포스코는 새로운 회장이 취임할 때마다 이런 관료주의적, 고압적 기업문화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러나 포스코의 분위기를 잘 아는 인사들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평가한다. 현재로선 미래 전망도 밝지 않다는 것이다.
포스코와 거래하는 한 금융사 임원은 “포스코가 기간산업을 맡고 있으니 사업이 어려워져도 망할 일은 없겠지만 경직된 문화를 고치지 않는 한 더 번성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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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2월 24일 11: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