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發 조정 온다...튀는 美금리, 치솟는 상품 가격에 게걸음하는 증시
입력 2021.02.25 07:00|수정 2021.02.26 17:11
    美 국채 금리 급등ㆍ자산 버블 우려로 '타이트닝 리스크' 부각
    달러 강세로 돌아서며 국내 증시서 외국인 자금 빠져나가
    예탁금 줄고 국민연금 자산 리밸런싱...국내 수급도 빨간불
    • 금세 코스피 지수 4000시대가 열릴 것만 같았던 연초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1월 급락을 겪은 국내 증시는 3000과 3200 사이에서 새 박스권을 형성하고,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 속 흔들리는 글로벌 자금 흐름과 밀접하게 연계된 채 게걸음을 하고 있다.

      최근 증시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변수들로는 강(强) 달러의 귀환과 유가 등 상품(commodity) 가격 상승, 그리고 미국 국채 금리 상승이 꼽힌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인플레이션 우려다.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코스피를 비롯, 최근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글로벌 주가지수는 상당 부분 유동성의 힘에 기대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유동성을 거둬들이기 시작하면, 지금의 주가가 지탱되기 어려울 거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이른바 타이트닝 리스크(tightening risk; 긴축 우려)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새해 거침없이 오르며 장중 3266선을 돌파하기도 했던 코스피 지수는 지난달 말 한때 3000선을 내주며 2주 만에 고점 대비 10% 가까이 급락했다. 이후 반등을 모색하던 코스피는 24일 다시 강한 조정을 받으며 주춤하는 모양새다. 장밋빛 전망이 가득했던 연말연초와는 다소 다른 분위기다.

      수급적인 측면에서 변화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6조원을 순매수하며 코스피를 끌어올렸던 외국인들이 지난해 12월부터 다시 순매도로 돌아선 것이다.

      이를 두고 지난달 뉴욕거래소 상장주 게임스톱(GME)을 둘러싼 개인투자자와 헤지펀드 간 '공매도 혈투'를 원인으로 꼽는 시각이 대두되기도 했다.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손실이 발생한 공매도 거래를 결제하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주식을 매도해 현금을 마련하려는 게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아예 영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초점이 완전히 어긋났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게임스톱 사태 그 자체보다는, 이로 인해 약(弱) 달러 기조가 흔들린 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연초 국내 증시는 개별 종목 이슈나 돌발 이벤트보다는 기본적으로 원달러 환율과 동조화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헤지펀드들의 달러 약세(숏 포지션) 베팅 규모는 2011년 초 이후 10년 만에 최대 규모다. 달러가 약해질 거라는 데 수많은 자금이 몰려있고, 이것이 실제로 달러를 지난해 하반기 약세로 이끌었다. 달러 약세로 인해 한국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띄자, 이를 노리고 국내 증시에 해외 자금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의 코스피 랠리가 이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게임스톱 사태는 헤지펀드들이 자신들의 숏 포지션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게임스톱이 급등하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던 1월 마지막 주, 실제로 일부 헤지펀드가 달러 숏 포지션을 일부 정리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글로벌 통화 대비 달러의 강세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가 급반등했다.달러당 1090원대를 맴돌던 원달러 환율 역시 일주일 새 1120원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20일에서 29일 사이 외국인들은 코스피ㆍ코스닥 양 시장에서 5조9000억원을 내다 팔았다.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2월 초부터 진행된 코스피 반등 역시 환율로 설명된다. 미국 금융당국이 개인투자자들의 개별주 시세조작에 대해 감시하겠다는 엄포를 내놨고, 바이든 행정부가 내놓은 경기 부양책이 속도를 내며 '달러가 시장에 넘칠 것'이라는 전망이 다시 득세했다. 91.5까지 급등했던 달러 인덱스가 불과 5일 사이 90.3까지 밀렸다.

      지난달 말 한때 3000선이 무너졌던 코스피 지수가 2거래일만에 3130선까지 반등한 건 이 사이 달러 강세가 한풀 꺾이며 외국인이 이틀 간 6200억원을 순매수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이렇다보니 당분간 코스피ㆍ코스닥 움직임을 점치기 위해선 달러화의 흐름, 그리고 이를 움직이는 매크로 변수들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고려하면 국내 증시도 조정이 불가피할 거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최근 급부상한 글로벌 매크로 핵심 테마는 '인플레이션'이다. 지난해 시장에 잔뜩 풀어놓은 유동성이 코로나19 백신 접종과 함께 순환하기 시작하며 물가 상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지난 16일(현지 시간) 미국 10년 기대 인플레이션이 2.24%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4년 8월 2.23%이후 6년 6개월 만의 최고치였다. 이날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배럴당 가격도 60달러선을 넘어서며 코로나1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 철광석 가격은 1년 사이 2배로 뛰었고, 비철금속류 가격은 10년 만에 최고치로 치달았다.

      인플레이션 기대감은 미국 국채 금리도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10년 만기 국고채 시장금리는 지난달 말만 해도 1.01% 수준이었지만, 22일 장중 1.39%까지 치솟았다. 불과 한 달간 35% 가까이 올랐다.

      국채 금리의 상승은 달러화의 매력을 높인다. 이론적으로 주식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장기 할인율을 상승 시켜 성장주의 밸류에이션(가치산정 기준)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 게다가 급격한 물가 상승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비롯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돈 풀기'를 지속하는 논리를 약화시킨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1월에 잠시 스쳤던 달러 강세와 타이트닝 리스크가 2월 중순 이후 다시 부각하는 모양새"라며 "백신 확보도, 접종도 지지부진한 유럽의 더블 딥(2차 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유로화가 약세를 띠고, 이렇게 되면 달러가 상대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다는 컨센서스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증시의 수급 현황도 다소 꼬이는 듯한 모양새다. 국민연금이 자산 리밸런싱(재조정)을 위해 국내 주식을 2달 가까이 대규모로 매도 중이다. 연기금이 순매도를 시작한 지난해 12월24일 이후 순매도 누적량이 9조7000억원에 달한다. 그간 국내 증시 상승분을 감안하면 아직도 10조~15조원의 매도 잔량이 남았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12일 75조원에 육박했던 증권사 투자자예탁금도 현재 65조원 수준으로 내려왔다. 한 달 새 10조원 넘게 빠져나간 셈이다. 26조원에 달했던 국내 증시 일일거래대금도 16조원대로 줄었다.

      한 증권사 임원급 관계자는 "개인 투자 여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나보다 비싸게 사줄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주저없이 투자할텐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다는 위기감이 생기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