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스미스바니를 팔지 않았더라면"…美 부진에 韓 철수 고민하는 씨티
입력 2021.03.05 07:00|수정 2021.03.08 14:51
    알짜 사업부문인 스미스바니, 모건스탠리에 매각
    이후 글로벌에서 영향력 줄어들고
    미국 시장에만 치중하는 상업은행으로 전락
    변화 꾀하는 차원에서 국내 씨티은행 매각 거론
    • "2009년 씨티의 비크람 팬디트 최고경영자(CEO)는 브로커리지 자회사 스미스바니를 모건스탠리에 매각하기로 합니다. 전통 상업은행 모델로 돌아가자는 취지였죠. 이 과정에서 29억달러의 평가손이 발생했고, 씨티의 고객 관리 능력이 훼손됩니다. 반면 스미스바니를 품은 모건스탠리는 승승장구 했습니다. 이후 본토에서 은행업 경쟁력까지 잃은 씨티가 해외 사업장 정리 수순에 나섰고, 그 여파가 한국 시장까지 미쳤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한 외국계 IB 고위급 임원)

      씨티그룹이 한국시장에서 투자은행(IB) 부문만 남기고 소매금융부문을 매각할 가능성이 부각하고 있다. 미국 씨티그룹의 새 CEO인 제인프레이저가 최근 그룹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처음엔 아시아태평양 부문 수준의 모호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최근 '한국과 베트남'이라고 구조조정 대상이 구체적으로 좁혀지는 모양새다.

      제인프레이저는 지난 2015년 중남미 지역 책임자로 있던 당시, 해당 부문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한 바 있다. 방만한 해외 사업장 정리의 전문가라는 평가다. 이런 경력의 경영자를 CEO에 앉힌 씨티의 의도는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한국 소매금융 부문 철수 가능성은 이전 CEO인 비크람 팬디트의 '악성 유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씨티 경영진이 느끼고 있는 위기감의 핵심은 주 사업 영역인 미국에서의 부진이다.  지난 2월 26일 기준으로 JP모건의 시총은 4490억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 3000억달러, 웰스파고 1500억달러, 모건스탠리 1390억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씨티그룹은 1370억달러에 불과했다. 씨티그룹의 기업가치는 지난 10여년 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익 측면에서도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뒤쳐졌다.

      코로나19가 경쟁사와의 격차를 다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팬더믹(대유행) 이후 미국은 물론 주요 선진국에 대규모 유동성이 풀리며 금융자산의 가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국내 동학개미 열풍 못지 않게 '월스트리트베트'와 '로빈후드'로 상징되는 미국 투자자들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주식 브로커리지 사업부문을 보유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의 이익도 폭증했다. 이들의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핵심 배경이다.

      반면 씨티는 2009년 금융위기 당시 브로커리지 부문을 매각했다. 종합금융업을 지향해온 씨티그룹은 금융위기 당시 자산운용 그룹 내 주식영업 부문인 스미스바니를 모건스탠리에 팔았다. 금융위기에 따른 부실채권 증가로부터 4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등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 수익성 높은 브로커리지 사업을 정리한 것이다.

      당시 스미스바니는 900만명의 고객을 갖고 있는 알짜사업으로 평가받았다. 회사 위기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의사 결정이었지만, 해당 부문 매각으로 씨티그룹은 고액 자산가 고객군의 상당부분을 모건스탠리에 넘겨줘야 했다. 이후 씨티그룹과 모건스탠리의 운명이 갈랐다. 해당 거래를 성사시킨 모건스탠리 임원진들에겐 수백억원의 연봉이 아깝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씨티그룹은 글로벌에서 그 위상을 잃어갔다.

      해당 의사결정을 주도한 비크람 팬디트 전 CEO는 결국 2012년 이사회와의 갈등 끝에 돌연 사임하고 회사를 떠났다.

      이런 상황에서 등판한 새로운 CEO인 제인프레이저가 총대를 메고 나서는 모습이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진 않았지만, 임원들 사이에서 씨티그룹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말들이 나온다. 앞서 씨티그룹은 자산운용부문(wealth-management)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런 확장과 맞물려 수익성이 크지 않은 아시아 부문, 그 중에서도 한국과 베트남 소매금융부문 매각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이다.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여기서 나온 자금 및 유휴자산으로 본업, 특히 미국 내 자산운용에 집중하겠다는 판단으로 분석된다.

      한 외국계은행 관계자는 “씨티그룹은 해당 부문 매각으로 전세계 고액자산가와의 접점이 사라져 미국 내 상업은행 업무에 치중할 수 밖에 없게 됐다”라며 “최근 외국계 은행들이 아시아에서 고액자산가들 확보와 그에 뒤따르는 IB업무로 수익성 다변화를 하고 있는 글로벌 트랜드에도 뒤떨어지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씨티그룹 내부사정으로 아시아지역의 구조조정이 진행되지만, 한국이 여기에 포함된 것은 국내 금융시장에도 좋지 않은 신호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만큼 한국 시장이 매력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씨티은행의 국내 시장에서 수익성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당기순이익은 1611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38%가 감소했다. 2018년 3074억원, 2019년 2794억원으로 당기 순이익은 지속하락 중이다.

      시장 환경도 좋지 않다. 이익공유제, 배당축소 등 금융사들에 대하 규제의 허들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계 은행이지만 감독기관의 눈치를 안 볼수는 없다. 즉 한국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규제만 늘어나는 금융시장이 된 것이다. 국내 금융기관이 한국씨티은행 철수로 경쟁이 줄어든다고 마냥 좋아만 할 수 없는 이유다.

      이 관계자는 “씨티그룹도 철수할 지역에 대한 고민을 했을텐데, 한국이 거론된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성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반증이다”라며 “국내 금융기관도 한국씨티은행이 철수한다면 남일 같이 여기긴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