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전환' 시급한 현대중공업, ESG 경영에 올인
입력 2021.03.08 07:00|수정 2021.03.05 17:05
    그룹 ESG 조직 강화· 계열사 ESG채권 발행
    글로벌 해상 규제 및 주요 선주 요구 맞추기
    주요사업 '친환경 전환' 시급…자금 조달 박차
    • 현대중공업그룹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사실상 올인하고 있다. 그동안 ESG 경영과 다소 거리를 뒀던 조선업계가 변화한 데에는 친환경 규제가 날로 엄격해지는 국제 해양업계 흐름을 발맞추기 위함이 크다. 전면적 전환이 필요한 가운데 때마침 국내에서 ESG 바람이 불면서 자회사 IPO(기업공개), 대우조선해양 인수, ESG 채권 발행 등 그룹 전반의 사업 정비와 자금 조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현대중공업그룹은 시장에서 보수적인 의사결정 속도를 보이는 곳이란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과거 20년간 시장 상황 등을 이유로 주력 계열사의 상장 검토와 철회를 반복했다. 주력 사업이 조선, 정유 같은 중후장대 사업인 점도 ESG 흐름과 거리가 있다는 인식을 줬다.

      최근 자본시장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 내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 내에서 일사분란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있고, ESG 이슈를 따라가는 것도 다른 곳에 비해 빠르다는 평이다.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어쩌면 국내에선 ESG를 가장 앞단에서 내세우는 SK그룹보다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란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올해 초 현대중공업그룹은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사장을 그룹 최고지속가능경영책임자(CSO)로 선임하고 ESG실무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조직적으로 ESG 경영을 끌고가겠단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분위기가 반전된 데에는 그룹의 자체 의지보다는 급변한 조선업계 상황이 가장 결정적이라는 분석이다. 북미, EU(유럽연합) 쪽 주요 선주들이 높은 친환경 수준을 요구하는 만큼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발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제적 해상 환경규제는 갈수록 더 강력해지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23년부터 실시하는 에너지효율등급지수(EEXI) 규제에 따르면 선박의 탄소 배출량을 2008년 평균치보다 30% 감축해야 한다. 규제를 충족하지 못하면 선박 운항속도 제약을 받고, 선박의 가용 톤마일(선박의 수송량 단위) 하락으로 이어져 해운시장 내에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사실상 발등의 불은 이미 떨어졌다. 운항 중인 선박들 가운데 가스연료 추진방식으로 개조가 가능한 선박들이 있는 반면, 2013년 이전 인도된 선박들은 추친체계 개조가 불가능한 기계식 엔진을 탑재하고 있어 교체 발주해야 한다. 선박 건조가 통상 1~2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규제에 대응하려면 지금부터 선박을 발주해야 하는 셈이다.

      향후 지속적으로 해상 환경규제가 강해질 가능성도 크다. 현재 IMO는 2030년 선박의 탄소 배출량을 2008년 평균치보다 40%, 2050년에는 70% 감축하는 환경규제의 도입을 추가로 논의하고 있다.

    • 친환경 전환에는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 만큼 자금 조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3월5일 3000억원 규모 ESG 채권 발행을 앞두고 있다. 채권인증을 진행한 NICE신용평가의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녹색채권을 통해 조달한 자금 전액은 친환경선박 건조(2척) 사업, 친환경선박 관련 시설투자 및 기술개발 투입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다. 정유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도 1월말 40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최근 현대중공업은 자회사 현대글로벌서비스 프리IPO를 통해 총 8000억원을 조달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사모펀드 KKR에 현대글로벌서비스 지분 38%를 6460억원에 매각하고,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보유 현금 1500억원도 배당받는다. 현대중공업은 조달 자금을 로봇과 인공지능(AI) 수소 등 미래 사업 육성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KKR은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친환경 솔루션 및 기술개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이 ‘로봇’과 ‘AI’ 등 첨단 기술 개발을 강조하는 것도 자율항행(무인선박) 등 '스마트 선박'이 대세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항행은 센서와 AI를 사용해 장애물을 인식하고 회피하는 기능 구현이 핵심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10월 신규 법인 ‘아비커스’를 설립하고 자율운항 솔루션 및 항해 보조 시스템 개발 등 스마트 선박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향후 ICT 기업과의 협업 강화를 위한 전략적투자자(SI) 투자유치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ESG를 리딩한다기 보다는 본연의 비즈니스 자체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며 “조선업계 규제가 환경 친화적으로 가고 있고, 주요 선주가 EU 쪽이다 보니 요구를 맞추지 않을 수가 없다. 조선 쪽이 평판이나 가격 경쟁이 중요한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미래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선 친환경·첨단 기술 등 선주한테 어필할 수 있는 명확한 것들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