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피너티의 투자금 소진 조급증…유동성이 성사시킨 잡코리아 매각
입력 2021.03.10 07:00|수정 2021.03.12 10:35
    매각자 눈높이 과도하다 지적에도 대성공
    대형 PEF 간 드라이파우더 소진 경쟁 주효
    한국 특화 어피너티, 한국 성과 없어 압박
    "미래 기대수익률 손해보더라도 이겼어야"
    •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잡코리아를 인수한다. 매각자의 눈높이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실탄 두둑한 대형 운용사들이 각축을 벌이며 몸값이 정당화됐다. 벌써부터 다음 회수가 걱정될 상황이지만 한동안 한국에서의 성과가 뜸했던 어피너티로선 당장의 투자 성과가 필요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4일 H&Q코리아는 잡코리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어피너티를 선정했다. 이번 주 매각 계약을 체결할 계획으로, 거래 금액은 9000억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어피너티는 인수자금 절반 가까이를 인수금융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잡코리아 매각은 올해 초 최대 거래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돼 왔다. 국내 1위 채용 플랫폼으로 매년 실적이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매각자가 희망하는 가격도 2019년 4500억원, 2020년 6000억원, 올해 7000억~8000억원으로 매년 올라 갔다.

      매각자의 기대가 과도하다는 시선도 없지 않았다. 미국 링크드인이나 호주의 SEEK처럼 진화한 서비스가 아님에도, 비슷한 가치를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높아지는 만큼, 거래 배수도 함께 오른다는 지적이 있었다. 펀드 만기가 다가옴에도 매각 시기를 차일피일 늦추는 것도 의아함을 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H&Q의 매각 시기는 적절했고 거래는 큰 성공을 거뒀다. H&Q는 2013년,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잡코리아에 2000억원을 투자했는데 수천억원의 차익을 거두게 됐다. 코로나 여파로 기업의 구인 활동이 줄었음에도 잡코리아 실적을 잘 유지했고 '플랫폼' 기업의 거래 배수도 올랐기 때문이다. H&Q는 막대한 성과보수가 예상된다.

      잡코리아 M&A를 성공으로 이끈 가장 큰 힘은 PEF가 가진 유동성으로 풀이된다.

      잡코리아 인수전에는 쟁쟁한 국내외 PEF가 참여했다. 본입찰엔 어피너티 외에 MBK파트너스, CVC캐피탈, TPG 등 대형 운용사가 참여해 9000억원 안팎의 몸값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8~2020년 사이 수조원대 PEF를 결성했다. 작년 코로나 여파로 대형 거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투자해야 하는 실탄이 많았다. 매각자는 프로그레시브딜(경매호가식딜)을 통해 매각 금액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 가장 투자가 급했던 것은 어피너티였다. 어피너티는 아시아 지역 펀드(Regional Fund)를 표방하지만 실제론 한국과 호주 투자가 주다. 어피너티의 성과 중 하이마트, 더페이스샵, 오비맥주 등 굵직한 것은 모두 한국 시장에서 이뤄졌다. 어피너티는 2018년말 60억달러(약 6조6000억원) 규모 블라인드 PEF를 결성했는데, 이후 국내에선 서브원을 제외하면 잠잠했다. 한국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에 투자할 수 있는 펀드를 만들었는데 성과가 없었으니 투자금 소진 압박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MBK파트너스는 작년 65억달러에 이르는 아시아 최대규모 PEF를 결성했다. 수천억원의 최소 투자금 기준이 있지만 이를 충족할 대상을 찾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잡코리아를 인수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힘을 쏟았다. 어피너티는 절박함으로 경쟁입찰 거래의 최강자인 MBK파트너스까지 제쳤다. 2015년 인수 눈앞에서 MBK파트너스에 홈플러스를 빼앗겼던 아쉬움을 6년만에 설욕했다.

      어피너티로선 간만에 굵직한 성과를 냈지만 앞으로 어떻게 회수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안게 됐다. 잡코리아의 성장 전망은 엇갈린다. 최근 몇 년간 현금창출력 상승세는 완만해지고 있다. 잡코리아의 시장 지위는 앞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지만, 인수가가 싸지 않았던 만큼 회수기에 높은 이익을 창출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 대형 PEF 관계자는 "어피너티는 출자자(LP)들에 한국에서 바이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운용사로 인식되지만 그 정체성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한국 투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 보니 미래의 수익률을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높은 가격을 써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