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방 위험도 일부 감수…인수금융 협조 중요해진 PEF 소수지분 투자
입력 2021.03.16 07:00|수정 2021.03.18 10:53
    PEF 경쟁 심화 속, 몸값 높고 성장성 불투명한 거래 많아져
    우리은행, 안전장치 부족한 CJ올리브영 거래에 과감히 투자
    “인수금융 안전장치 유연해져야 거래 성사 가능성 커진다”
    • 사모펀드(PEF)의 소수지분 투자는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하방 위험을 막는 구조(Downside protection)가 필요하다. 그래야 금융사로부터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데 유리한데, 최근엔 강한 수준의 안전장치를 요구하지 않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투자 경쟁은 심화하는데 이익창출력 대비 몸값이 높은 기업들은 많아지고 있어 과거의 안전장치만 답습하다간 거래에 참여할 기회를 잡기 어려워서다.

      12일 M&A 업계에 따르면 우리은행 등 금융사들은 이날 글랜우드PE에 2000억원가량의 대출금을 인출해줬다. 글랜우드는 이 차입금을 포함해 4000억원 이상을 CJ올리브영 상장전투자(Pre IPO)에 투입한다.

      통상 PEF가 비상장주식에 투자할 때는 상장을 최우선 회수 방안으로 설정한다. 어느 정도의 수익률은 붙여 상장하는 조건(적격상장, Qualified IPO)을 부가하는데, CJ올리브영 투자엔 그 조건이 빠져 있다. 매각자와 그룹 측에서 원금 수준만 보장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CJ올리브영은 투자유치 1년 6개월 이후부터 IPO를 추진하기로 했는데, 글랜우드PE는 투자 3년까지는 원하는 몸값이 아니면 상장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4~5년째에는 그런 조건가 없다. 그룹 입장에선 상장만 하면 부담이 사라진다. 상장이 안 될 경우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 등이 책임을 진다는 수준의 합의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올리브영의 성장성이 크다지만 보장된 것이 많지 않다 보니 극단적인 상황이 되면 글랜우드PE가 손실을 입을 수 있다. PEF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레버리지를 일으켜야 하는데 안전장치가 약하다 보니 금융사들의 호응을 얻기도 쉽지는 않았다.

      우리은행이 글랜우드PE의 우군으로 나섰다. 비경영권 거래에 적격상장 조건도 없는, 즉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는 거래에 과감하게 인수금융을 지원했다. 계약서에 모든 안전장치를 담지는 않았지만 거래의 실질에 집중했다. 오너 경영권과 관련된 거래이고 그룹 차원에서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높이 샀다. 우리은행 투자금융부는 오히려 강한 회수 장치를 요구하지 않은 글랜우드PE의 투자 구조를 보고 일찌감치 승리를 자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JTBC스튜디오 상장전투자 거래도 CJ올리브영 사례와 비슷하다. 회사는 초기부터 인수금융을 활용하는 후보자에겐 페널티를 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소수지분 투자고, 성장 전망이 들쑥날쑥함에도 기업가치는 높게 인정받고 싶어했다. 즉 금융사로부터 이런 저런 재무약정과 회수 안전장치를 요구받는 곳 대신 펀드 자금을 통크게 쓸 수 있는 곳이 나서달라는 맥락이다.

      콘텐츠 기업으로서 투자 경쟁이 치열했는데 결국은 인수금융을 활용하기로 한 프랙시스캐피탈이 승리했다. 기업가치를 과하게 산정했다는 시선이 없지 않지만 결국 금융사를 설득했기 때문에 승자가 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프랙시스캐피탈과 공동 운용사(Co-GP)로 PEF를 꾸리는 등 인연이 깊었던 신한금융투자가 조력자로 참여했다.

      SK텔레콤의 자회사 티맵모빌리티는 최근 어펄마캐피탈과 이스트브릿지로부터 수천억원의 상장전투자를 받기로 했다. 티맵모빌리티 투자 역시 회수 장치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던 거래다.

      통상 소수지분 투자자는 콜옵션과 드래그얼롱(Call&Drag)을 갖는다. 즉 상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투자자가 SK텔레콤 보유지분까지 묶어서 매각할 수 있고, SK텔레콤은 이에 대응해 일정 수익률을 쳐주고 지분을 되사올 수 있다. 다만 티맵모빌리티는 성장 전망을 담보할 수 없는 초기 기업이라 드래그얼롱을 행사하더라도 SK텔레콤이 콜옵션으로 응하지 않으면 투자금을 회수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금융사로서도 돈이 떼일 위험이 없지 않았던 셈인데, 일부 증권사가 인수금융을 대기로 했다.

      갈수록 초기 성장자금을 받으려는 기업들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기업 등 포장지가 씌워졌지만 언제 이익이 날지 점치기 어려운 곳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성장기업들이 각광을 받는 시기다 보니 PEF도 과거의 잣대만 고집할 수는 없다. 금융사들도 과거엔 현금창출력과 담보가치에만 집중했다면, 그 이상의 가치를 살피려는 노력이 중요해졌다.

      한 PEF 운용사 대표는 “CJ올리브영 투자의 경우 경영권 거래가 아니고 회수 안전장치도 부족한 데도 우리은행은 계약서에 드러나지 않은 실질을 믿고 파격적으로 인수금융을 지원했다”며 “대주단 입장에선 다양한 안전장치가 있는 것이 유리하지만, 반대로 요구 수준을 낮춰야 PEF가 협상을 하는 데 여유가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