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가뭄' 장기화 조짐…파운드리 육성 호기 맞은 삼성·SK
입력 2021.03.19 07:00|수정 2021.03.22 10:12
    5G·AI·전기차 등 반도체 수요 급증
    반도체 공급부족 장기화 조짐
    파운드리 시장 연평균 8% 성장 예상
    역대최대 규모 투자 예고한 TSMC·삼성전자
    •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들이 호기를 맞았다. 전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화 할 조짐을 보이고 앞으로 반도체의 품종은 다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파운드리 육성에 힘을 쏟아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일단은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작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자동차 판매량이 줄자 파운드리 기업들은 수익성 높은 전자기기나 서버용 반도체로 눈을 돌렸다. 최근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며 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화했다. 내연기관 차량은 200~500개가량의 반도체가 쓰이지만 전기차용 반도체는 그보다 많게는 10배 이상 더 필요하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균형은 전체 반도체 시장을 뒤흔들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더라도 파운드리 기업들의 일손은 몇 년간은 분주할 것으로 보인다. 5G, 인공지능(AI), 미래차 등 신산업 발전 속도가 가속화하며 반도체 종류는 다변화했고, 그 중요도도 커졌다.

    • 반도체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작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전체 매출은 682억달러(약 75조원)다. 올해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8%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파운드리는 기술집약적 사업으로 새로운 사업자의 진입이 어렵고, 설비를 구매하는 것도 어렵다. 기존 반도체사만 수혜를 보는 구조다. 파운드리 육성에 공을 들여 온 국내 기업들도 호기를 맞았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파운드리 글로벌 1위에 오른다는 목표를 세웠다. 작년 설비투자액은 약 38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2조원가량 늘었는데 반도체 분야에만 32조9000억원이 투입됐다.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을 증설하는 안을 현지 정부와 협의 중이다.

      지금까진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1위 TSMC에 밀려 힘을 쓰지 못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선단공정은 TSMC에, 그보다 저부가 제품은 삼성전자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적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로, 일감을 맡기는 입장에서도 이것 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생산능력도 예약으로 모두 꽉찬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사업도 올해부터는 선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파운드리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는 일감이 몰리며 작년 매출 7000억원을 넘어섰다. 회사는 2018년부터 중국 진출을 추진했는데 작년 현지 공장이 완료됐다. 원가 절감 및 중국 내 고객을 확대하는 데 유리하다. 올해부터 키파운드리(전 매그나칩 파운드리)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SK하이닉스는 작년 사모펀드(PEF) 출자자로 나서 키파운드리에 투자했다.

      TSMC, 삼성전자 등이 12인치 웨이퍼에 주력하는데 SK하이닉스는 8인치 위주다. 점차 품종이 다변화하는 반도체 산업 흐름에선 12인치 위주 대량 생산보다 8인치 라인의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고부가 가치 제품엔 적합하지 않지만 소량 생산이 가능하고 초미세공정도 필요하지 않아 틈새시장을 노릴 만하다는 것이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극단자외선(EUV) 노광기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EUV는 짧은 파장으로 미세 회로를 그리는 데 필요한 장비다. 반도체 소형화, 집적화, 저전력화에 필수 장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작년 ASML을 방문했고, SK하이닉스는 2025년까지 4조7549억원을 들여 EUV를 확보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었다.

      한 반도체 산업 전문가는 "앞으로 수많은 품종의 시스템 반도체가 나오고 생산 수요도 늘겠지만 파운드리 업체가 당장 이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며 "향후 몇년간은 국내외 파운드리 기업 등 공급자 우위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글로벌 경쟁사들도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는다. 특히 TSMC의 독주는 이어지고 있다. 올해 생산설비, 연구개발(R&D)에 250억~280억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미국 애리조나 공장 투자금도 몇 배로 늘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월 2만장의 웨이퍼 생산 계획은 월 10만장으로 수정했다. 연간 EUV 생산 물량의 60~70%를 TSMC가 빨아들이고 있다. 미국에선 애리조나 주정부의 세제혜택도 받는다. 글로벌파운드리는 기업공개(IPO) 시기를 앞당겨 올해 하반기 증시에 입성할 계획이다. 상장으로 마련한 자금이 파운드리 증설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유럽에서 전세계 반도체의 20%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중국도 변수다. 미국 상무부는 중국 파운드리 SMIC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에 SMIC는 대규모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최근 ASML과 반도체 장비 공급계약을 연장했다. EUV 수준의 장비는 아니지만 미국 제재가 완화한다면 거대한 중국 시장의 일감이 SMIC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

      총력전에 대비해야 하는데 국내 기업들에 닥칠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말 낸드 사업 부문의 1차 인수작업을 마무리 해야한다. 순 부채규모는 7조원을 넘는데, 인수금액은 이를 훌쩍 뛰어넘는 총 8조원 수준이다. SK하이닉스의 주력인 낸드 사업은 지난해 말까지 9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맞아 올해 흑자 전환을 기대해 볼만 하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대규모 M&A의 재무적 부담은 가중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역시 사법리스크가 발목을 잡는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M&A 시장 규모가 총 1180억달러(약 130조원) 수준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삼성전자의 M&A는 사실상 없었다.

      TSMC가 정부와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중국 화웨이와의 거래가 끊긴 TSMC는 중국 수출물량이 급격히 감소했으나, 반대급부로 미국 기업에서 훨씬 많은 반도체 주문을 받아냈다. 사실상 정부와 한몸을 이뤄 글로벌 마케팅에 나서는 TMSC와 그룹 총수가 협상장에도 나타나지 못하는 삼성전자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있다.

      삼성전자가 압도하던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미국 마이크론이 삼성을 제치고 지난해 11월 업계 최고난도 기술인 176단 낸드플래시 제품을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