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 성장·해외투자 증가…국내기업들 '한국물' 발행 수요 증가
입력 2021.03.19 07:00|수정 2021.03.22 10:15
    해외 무대 집중하는 IT기업들 외화 조달 수요 늘 듯
    산업 패러다임 변하면서 채권시장 평가도 달라져
    • 소수기업의 전유물이었던 한국물(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 시장에 도전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지금까지 국내 민간기업 중 외화채를 발행하는 곳들은 제조업 기반이 대부분이었다. 최근 IT기업 등 신산업 기업들의 규모 및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물 시장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국내 대표 IT기업인 네이버는 이달 창사 이래 첫 외화채권 발행에 나선다. 17일 네이버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와 S&P(스탠더드앤푸어스)로부터 각각 A3, A- 등급을 받았다고 밝혔다. 등급 전망은 모두 '안정적'이다. 국내 공모채 시장에서도 ‘낯선’ 기업인 네이버가 외화채 시장에서 데뷔전을 치르는 만큼 관심이 집중된다. 지난달 말 국내에서 70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에 성공하며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한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해외 시장 공략에 집중하는 네이버가 적극적인 외형 확대를 이어가면서 향후 달러화 조달을 늘려갈 가능성이 크다. 올해에만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 인수, 스페인 중고마켓 ‘왈라팝’ 투자 등 해외 대형 투자 계획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네이버를 필두로 해외 자금조달에 나서는 국내 기업들의 영역은 앞으로 더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금까지 한국물 시장은 국책은행 등 은행권, 공사 위주였다. 민간기업은 현대차, 포스코 등 ‘숫자’로 증명이 가능한 제조업 기반 대기업이 주를 이뤘다. 채권 이외의 해외 조달 시장도 비슷했다.

      3~4년 전부터는 IT 등 국내 비제조업 기업들을 향한 해외 시장에서의 달라진 인식이 감지됐다. 2018년 카카오가 해외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주식예탁증서(GDR) 발행으로 10억달러(1조원)를 조달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카카오는 일반 제조업들과 다르게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미래 성장성’을 어필했고 해외 투자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예정돼 있던 해외 투자자 미팅을 36회에서 55회로 늘리기도 했다.

      기존에 해외 조달을 해 온 한국 기업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점도 새로운 기업들의 진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글로벌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회사채 시장 투심이 회복된 가운데, 수급 면에서 시장 내 희소한 한국 기업 발행 외화채에 수요가 확대했다.

      올해 1월 SK하이닉스는 10억달러 그린본드(녹색채권)를 포함한 총 25억달러(2조7000억원) 규모의 외화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수요예측에서 123억달러(13조5000억원)의 주문이 몰렸다. 해당 발행은 국내 민간기업 외화채권 중 가장 큰 규모다. 이전 최고 기록은 2019년 LG화학의 15억6000만달러(1조8000억원) 규모 발행이다. 같은 달 수요예측에 나선 현대캐피탈아메리카의 달러화 채권에도 매수세가 몰려 역대 최저 금리로 발행에 성공했다.

      한 기업 자금조달 담당자는 “앞으로 국내 전통기업을 비롯해 금융사, 신산업 기업들의 해외 조달이 늘어날 것”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해외 사업 확장이 필요한 가운데 외화 조달 필요성이 커졌는데, 주주가치 측면에서 조달 비용이 비싼 에쿼티(equity)보단 론(loan)이 낫다”고 말했다.

      해외 조달에선 스와프(swap) 여건이나 글로벌 신용등급, 인지도 등 국내 발행보다 신경 쓸 부분이 많다. 해외 신평사들은 전 세계 기준으로 등급을 평가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을 보는 평가 기준이 국내 신평사들과 다른 점도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선제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인을 신용등급 평가에 반영 해 왔다. 해외 신평사들은 등급 변동도 비교적 자유롭다.

      해외 투자자들의 수요를 이끌어 낼 글로벌 네트워크도 필수다. 수요예측 전 수 차례의 투자자 미팅에 나서기도 한다. 이에 국내 기업의 해외채 발행이 IPO(기업공개)에 비유되기도 한다. 트랙레코드와 네트워크가 중요해 해외 투자은행의 역할이 부각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국내 증권사들도 채권 부문에서 해외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해외물 발행에서는 파트너로 이름을 올리는 정도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산업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고 있는 만큼 조달 시장도 변하고 있다” 며 “다수의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투자를 적극 이끌어낸다면 전반적인 시장 참여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