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PO 열기 식나…"거래소에 변화 예상"
정작 거래소는 자체적 평가기준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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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스타트업들이 쿠팡 학습효과로 '미국 증시 상장'에 관심을 보이는 와중에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는 오히려 상장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상장의 문턱을 크게 낮출 수 있던 계기로 평가받는 '기술특례 상장'에 대해 작년 말부터 거래소가 직접 관여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례로 상장한 신규 상장사들이 잇따라 '사고'를 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17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재무적투자자(FI)를 엑시트(Exit)시켜야 할 고민이 커진 국내 스타트업들은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쿠팡의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이후 신선식품 배송업체 '마켓컬리'와 콘텐츠 기업 '리디'도 미국 증시 상장에 관심을 보였다.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쿠팡은 국내에서는 받기 힘들었을 '100조원'이라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또한 외부 투자유치를 적극 받아야하는 스타트업 특성상 상장시 지분 희석으로 인한 오너의 영향력 감소는 불가피한데도, 김범석 쿠팡 의장은 차등의결권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됐다.
IPO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객관적으로 보면 미국의 아마존과 쿠팡의 기술력은 비교가 어려울 정도이며 아마존이 훨씬 우월하다고도 볼 수 있다"라며 "그럼에도 쿠팡이 미국에서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한국시장 내 점유율이 상당히 높다는 게 신기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지는데, 마켓컬리도 보유하고 있는 '콜드체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타국에서의 인지도를 끌어올려 성공적인 상장이 가능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내 증권사에서는 일감 감소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통상 국내 증권사들은 국내 증시 상장에만 관여한다. 또한 국내 증권사를 통해 국내 주식을 거래하는 투자자에게 제공할 공모주 상품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 한국거래소가 국내 증시 입성의 문턱을 낮추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갈 길은 멀다는 지적이다.
거래소는 작년 말부터 기술특례 상장 제도에 필요한 평가기준을 자체적으로 만드는 등 오히려 문턱을 높이고 있다. 기술성 평가를 받는 기업들에 대해, 과거에는 기술신용평가기관(TCB) 등 평가기관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작년 말부터는 거래소의 평가기준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의사결정이 진행되는 분위기다.
TCB의 평가 의견은 거래소의 예비심사신청을 위한 최소요건 정도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성장성 특례상장'과 '테슬라 요건 상장' 등 제도들도 심사가 여전히 까다로운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올해의 경우 거래소가 기술특례 상장제도에 관여를 많이 하는 등 과거 무분별하게 열어준 특례상장제도에 대해 정비를 하는 시기라고 판단된다"라면서 "게다가 해외 기업들이 국내 증시에 상장됐다가 상장폐지됐던 과거 사례들을 살펴봤을 때 한국거래소가 개인투자자 보호 명목으로 상장 문턱을 낮추는 것은 단기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거래소는 올해 1월부터 미래 성장형 기업 대상으로 코스피 상장 문턱을 낮추겠다는 방안도 내놓은 바 있다. 시가총액 및 자기자본 기준을 각각 6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2000억원에서 1500억원으로 완화하고 사업연도 매출액이 50억원 미만일 경우에도 미달로 인한 관리 종목 지정을 5년간 면제받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업계에서는 야놀자와 마켓컬리가 미래 성장형 상장 후보로 꼽고 있지만, 최근 양사 모두 미국 상장 가능성이 크게 부각된 상황이다.
한 IPO 실무자는 "국내 상장 규정은 이슈가 생기면 진입장벽을 크게 완화했다가 사고가 터지면 급격히 규제를 강화하는 식으로 널뛰기를 타는 일을 반복해왔다"며 "안정적인 성장기업 상장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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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3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