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家가 ESG 챙기는 엔씨소프트…'셀프 견제'가 판교 스타일?
입력 2021.03.23 07:00|수정 2021.03.24 09:52
    엔씨소프트, 업계 최초 ESG위원회 설치
    전략·운영·인사 책임자 등 전원 사내이사로 구성
    ESG활동, 사익추구와는 별개…독립성 보장 받을까?
    사외이사에 힘 싣는 전통 대기업들과 반대 행보
    •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가 무엇보다 강조되는 시점이다. 오너에 집중되는 의사결정 권한을 축소함과 동시에 기존보다 엄격한 감시체계, 투명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재계의 화두다. 이를 위해 대기업들은 외부인사로 구성된 사외이사진을 보강하고, 이사회 내 위원회를 만들어 기업 경영 전반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긴다.

      준법감시체제를 갖춰가는 삼성, 외부 투자자의 견제와 감시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대자동차, 오너가 앞장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SK그룹 등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의 ESG 트렌드에 신흥재벌인 IT 대기업들도 동참했다. IT 대기업들이 글로벌스탠더드에 맞는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감시 체계를 확립하겠단 노력은 높이살만 하다. 다만 여전히 오너에 집중된 의사결정체계 그리고 실질적인 경영 감시를 위한 위원회 구성 등은 여전히 국내 대기업들의 엄격한 수준에는 못 미친다는 지적이 있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업계 최초로 ESG위원회를 구성한다. 미래세대에 대한 고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환경 생태계의 보호, 인공지능(AI) 시대의 리더십과 윤리 등이 ESG 경영의 중점 분야다.

      엔씨소프트의 ESG위원회 설치는 온라인 게임업체의 확률조작 논란이 퍼진 시점, 소비자들이 게임회사들에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점에 발표됐다. 엔씨소프트의 대표적인 게임 리니지 또한 해당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게임 3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공정위의 결과가 어떻든 앞으로 ESG위원회의 주목도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과연 실질적인 ESG 추구 활동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SG위원회의 위원장은 윤송이 최고전략책임자(CSO·사장), 정진수 최고운영책임자(COO)와 구현범 최고인사책임(CHRO)가 위원회를 구성한다. 모두 내부 인사들이다. 윤송이 사장은 등기임원이 아니지만,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립자(대표이사, 사장) 및 최대주주의 아내로 회사 경영에 가장 밀접한 특수관계인이다.

      결국 회사의 이해관계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특수관계인과 핵심 경영자들이, 기업의 사익추구 목표와는 다소 거리가 먼 ESG위원회를 맡아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든다.

      사실 이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위원회는 이사진의 경영활동을 감시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위원회를 설치해 주주들의 권익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려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오너입장에선 외부인사로 구성된 위원회 설치는 경영에 대한 자율성이 제한돼 부담스러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다만 국내외 주요 기관투자가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목적이 크기 때문에 재계의 반발은 거의 없는 편이다.

      자의든 타의든 삼성그룹은 준법감시위원회를 모두 외부인사로 구성해 운영중이다. 7명의 위원 중 삼성 내부 출신 인사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이 유일하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과거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모든 구성원을 사외이사로만 구성하도록 했다. SK그룹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 1명의 사내이사가 포함된 것을 제외하면 모든 위원회가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산업재해 논란이 일었던 포스코는 ESG위원회를 설립하고 김신배 사외이사가 위원장을 맡는다.  오너일가의 갑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한항공은 지난해 거버넌스위원회의 명칭을 ESG위원회로 바꾸고 ESG와 관련한 이행 사항을 검토하도록 했다. 위원장을 비롯한 구성원 모두 사외이사다. KB금융지주, DGB금융지주와 같은 금융권에서도 사외이사로 구성된 ESG 위원회 설치가 늘어나는 추세다.

      사실 감시와 견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반 대기업들과 달리 국내 IT 대기업들의 거버넌스 개선은 비교적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ESG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지만, 사내 권력이 집중된 오너 그리고 핵심 경영인들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회사의 지속가능경영 전략 방향성을 점검하고, 성과와 문제점을 관리 감독하겠다는 취지로 설립된 카카오의 ESG위원장은 창립자인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다.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신설해 이인무 사외이사에 위원장을 맡겼으나, 역시 사내이사인 한성숙 대표이사가 주요 위원으로 참석하고 ESG 전담 조직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담당한다. 넷마블과 넥슨은 ESG 경영활동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재계에서 이제 막 ESG 경영에 대해 고려하면서 관련 조직을 신설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위원회의 구성인력까지 면밀히 따져 실효성을 검토하는 투자자들이 많지는 않다. 분명한 점은 전문 위원회의 구성과 역할 그리고 실질적인 활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질 것이란 점이다.

      실질적인 위원회 활동을 기대하기 위해선 보다 독립적인 외부인사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부거래를 감시하고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 그리고  투명한 회계처리와 마땅한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를 통해 궁극적으로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전통적인 대기업들은 크고작은 내홍을 겪으며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요구를 끊임없이 받아왔다. 신흥 재벌로 분류되는 IT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경영에 대한 투명성, 오너에 대한 견제와 감시에 대한 요구가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