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등의결권 도입한다고 쿠팡이 돌아오고 벤처붐이 일진 않는다
입력 2021.03.23 07:00|수정 2021.03.24 09:53
    여당 "차등의결권제 도입해 제2벤처붐 선도"
    참호구축 효과로 기존 경영진 사익추구 뚜렷
    선진국선 오히려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 줄어
    "성공한 벤처가 국내 외면하는 이유부터 찾아야"
    • "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한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겠다.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제 때문에 벤처 기업이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없도록 하겠다. 제 2벤처붐을 만들겠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지난 16일 발언)

      여당이 자못 진지하게 차등의결권 도입 이슈화에 나섰다. 김 원내대표가 자신의 임기 내 오는 5월 내 도입을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는 평가다.

      사실 차등의결권제 도입 논란은 2014년 이후 매년 반복된 논란이다. 헤지펀드에 맞서 삼성물산의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홍콩거래소가 도입하니 우리도 해야 한다며, 쿠팡이 차등의결권 때문에 뉴욕으로 향했다며, 해마다 테마를 바꾸어 꾸준히 공론장에 올랐다.

      일단 기초적인 사실 관계부터 확인해보자. 쿠팡 및 금융권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쿠팡은 차등의결권 때문에 뉴욕 증시로 향한 것이 아니다.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처음부터 국내 증시는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쿠팡의 의중을 헤아리려는 국내 투자은행(IB)들의 노크를 매번 냉정히 거절해왔다. 지난해 코로나19 국면에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건재함을 알리는 '부활의 세레머니' 장소로 뉴욕거래소만한 곳이 없었을 거란 평가다.

      기술적 격차와 치열한 연구개발(R&D)이 핵심 경쟁력인 성장벤처기업의 창업주에게 경영권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비판할 수 있는 논리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수단이 반드시 차등의결권일 필요는 없다.

      여당은 '벤처붐'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묘사하고 있지만, 차등의결권제는 단점이 명확한 제도로 꼽힌다. 지금까지 매년 이슈화하고도 도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2019년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차등의결권은 기존 경영진의 입지가 굳어지며 '참호구축 효과'를 내고, 이로 인해 사적이익추구 경향이 강해지는 부정적 영향을 가지고 있다.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의 기업가치는 상장 직후엔 일반 기업보다 높게 나타나지만, 상장 7년을 전후해 급격히 가치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존 경영진의 입지가 공고해지며 오히려 장기투자 유인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주가치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체 주주보다는 특정 주주를 위한 의사결정 경향도 짙다. 2016년 미국 17개 대형 테크기업의 인수합병(M&A)을 분석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차등의결권 기업의 M&A 성과가 더 저조하며,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경향성을 띄었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차등의결권은 오히려 축소되는 흐름을 보여왔다.

      캐나다 토론토증권거래소 상장기업 중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은 2005년 100곳(비중 6.9%)에서 2018년 69곳(비중 4.6%)로 감소했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상장기업 중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 비중은 6.5~7%까지 상승했지만, 2010년대 이후엔 빅테크들의 잇딴 상장에도 5.4~7.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최대 연기금 캘퍼스(CalPERS)는 2014년 차등의결권 도입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했고, 같은 해 미국 기관투자가협의회는 뉴욕거래소와 나스닥에 차등의결권 도입기업 상장을 허용하지 말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동아시아 증시의 경우 알리바바의 미국 상장 이후 홍콩거래소가 '샤오미까지 빼앗길 순 없다'며 적극적으로 차등의결권 도입을 추진했고 이런 움직임이 한국거래소에도 영향을 줬다"며 "쿠팡을 핑계로 정치권까지 나서 부화뇌동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 상법은 이미 의결권 없는 종류주식,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 등에 대해 내용이 다른 주식 등 다양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비상장사 종류주식 발행 한도는 발행주식총수의 25%로 제한되지만, 상장사의 경우 특례로 50%까지 허용한다.

      2015년 기준 종류주식을 도입한 상장사는 전체 상장사의 18%에 불과하고, 보통주 대비 종류주식 발행 비중도 8.7%에 그친다. 이미 허용된 종류주식의 활용도가 낮은 상황에서 차등의결권 같은 새로운 종류주식 도입이 적절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당이 쿠팡을 매개로 차등의결권에 집중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정치적인 해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현 정부는 집권 이후 혁신ㆍ성장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지만, 박근혜 정부의 코넥스시장 처럼 '랜드마크'급 정책은 마땅치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벤처업계의 오랜 숙원(?)인 차등의결권제를 도입해 이를 '치적'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열린 차등의결권 도입 관련 중소기업벤처부 공청회에서 토론자로 참여한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래와 같이 발언했다.

      "쿠팡이나 일부 벤처기업이 (국내)상장을 꺼리는 이유가 경영권 위협을 받을 수 있어서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아직 국내 증권시장에서 벤처기업 출신이 경영권을 위협받거나 뺏긴 적은 거의 없습니다. 성공한 벤처기업이 우리나라 증권시장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