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이랜드 여성복 사업부 매각 불발
입력 2021.03.23 10:30|수정 2021.03.23 10:19
    국내 패션업 한계 드러낸 여성복 사업부 매각 실패
    패션 대기업도 구조조정…투자자, 의문 갖기 시작
    "이름은 다 아는 브랜드던데 그리 매력 없나?"
    • 이랜드월드가 여성복 사업부 매각에 실패했다. 예견됐던 일이다. 저가 이미지가 강하고 브랜드 히스토리가 없어 인수하더라도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매각자의 눈높이는 너무 높았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랜드월드의 여성복 사업부 매각 예비입찰에 단 1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랜드월드는 지난해 11월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로엠, 미쏘, 에블린, 클라비스, EnC 등 브랜드를 포함한 여성복 사업부를 매각한다고 처음 밝힌 뒤 코로나로 잠시 매각을 중단했다가 2월에 재개했다.

      매각이 불발된 원인으로는 매각 대상인 미쏘, 로엠 등 브랜드의 매력이 떨어지는 점이 꼽힌다. 그럼에도 이랜드월드의 매각가에 대한 눈높이는 높았다. 2000억원 중반에서 최대 3000억원까지 거론된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쏘, 로엠, 에블린 등 브랜드 구성이 일반 기성복부터 속옷까지 다양하긴 하지만 중국에서 만든 저가 상품들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라며 "디자인도 다양하지 않고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 디자인을 배끼는 경우도 허다한 데다 브랜드 히스토리도 전혀 없는데 누가 사겠나"라고 말했다.

      예비입찰에 참여할지 여부를 마지막까지 고민한 건 한 홈쇼핑업체였다. 로엠, 미쏘 등을 PB(자체브랜드)로 내재화할 경우 브랜드 사용비를 줄여 이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PMI(인수후합병) 전략까지 거론됐지만 결국 막판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브랜드를 보유해 얻는 이익보다 비용이 더 크다는 계산에서다. 매출 증대를 위한 용도로도 내실이 없다는 외면당한 셈이다.

      이번 매각 불발은 국내 패션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지 않다는 점을 반증한다. 인지도가 꽤 높은 브랜드라고 할 수 있지만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패션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로엠이나 믹쏘 같은 브랜드가 그렇게 가치가 없나요?"라는 질문을 되레 던지기도 했다.

      이랜드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패션 대기업들은 관련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있다. LF는 코람코자산신탁을 인수하는 등 '패션'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한다. 삼성물산도 최근 '빈폴스포츠' 사업 철수에 나서는 등 구조조정 움직임을 보였다.

      글로벌 패션업계는 이미 명품 아니면 SPA, 양극화가 극명해졌다. 백화점 명품관 앞은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지만 명동, 강남의 국내 의류 매장은 한산하기 그지 없다. 한국 '패션' 기업들은 어디서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랜드의 여성복 사업부 매각 불발은 한국 패션업의 현 주소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