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쟁·파운드리까지 경쟁 지속 의지
사실상 美정부 인텔 활용한 반도체 굴기
美정부 지원책 적극적 활용 필요한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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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종합반도체기업(IDM) 인텔이 200억달러(한화 약 22조원) 규모 반도체 투자계획을 내놨다. 이미 반도체 시장이 TSMC와 삼성전자 양강 구도로 재편된 이상 인텔의 선언이 큰 위협이 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인텔의 뒤에서 적극적인 지원 카드를 꺼내든 미국판 반도체 굴기에 대해선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오코틸로에 200억달러를 들여 2개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외신 인터뷰를 통해 미국 외 유럽에도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를 검토 중이라 덧붙였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해 인텔의 반격은 물론 반도체 생산기지의 아시아 편중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선언이다.
삼성전자와 TSMC 양강 구도에 대한 도전적 메시지다. 지난해를 거치며 시장에선 미세공정 경쟁에서 인텔의 탈락을 거의 확실시해 보였다. 연초만 해도 자체 생산 비중을 줄이고 외부 파운드리를 활용하는 팹라이트 전략으로 선회할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신임 CEO가 등장하자 미세공정 경쟁도 파운드리 서비스 사업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복해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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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인 조건만 놓고 따졌을 때 삼성전자와 TSMC에게 인텔의 선언은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을 적용한 7나노미터(㎚, 10억 분의 1미터) 이하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 삼성전자의 시장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인텔이 2023년까지 7㎚ 공정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로드맵 상 TSMC와 삼성전자는 3㎚ 양산체제를 마치고 2㎚ 공정을 준비할 시점이다. 공정 격차를 해소하기 힘든 것은 물론 이 문제가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격차로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0억달러 투자계획도 올해 삼성전자와 TSMC에는 미치지 못한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와 TSMC는 올해 각각 30조원 안팎의 설비투자를 이어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화하며 하반기 들어 더 공격적인 설비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양사 설비투자 금액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인텔의 이번 선언이 사실상 미국 연방정부의 선언과 다를 바 없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중국 제재가 심화하며 미국 제조업 경쟁력에서 대만과 TSMC의 지정학적·경제적 가치는 큰 폭으로 부상했다. 대만 시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 삼성전자다. 양사 모두 중국과 인접한 동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도체 생산기지의 동아시아 편중 문제를 해소해야만 하는 구조다.
TSMC와 삼성전자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선 인텔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 반도체 시장은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팹리스)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생산을 담당할 수 있는 기업은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시스템 반도체의 경우 인텔에 불과하다. 마침 시스템반도체 품귀 현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특히 파운드리 몸값이 치솟고 있다. 파운드리와 칩 메이커 간 '갑을(甲乙)' 역전이 불가피한 가운데 미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인텔로선 미국 연방정부가 모처럼 강력한 지원책을 꺼내든 마당에 반등의 기회를 노릴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라며 "삼성전자와 TSMC가 인텔을 위협적인 존재로 볼까 하는 점에선 이견이 있겠지만 그 뒤에 있는 미국 정부는 또 다른 얘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제조·생산 역량 강화에 발 벗고 나선 이상 삼성전자와 TSMC를 포함해 파운드리 관련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 업체에 대한 미국 현지 투자에 대한 요구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미 상원에선 250억달러(한화 약 28조원) 규모 반도체 설비 확충에 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사실상 미국판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는 평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미국 현지 생산설비 투자의 경우 높은 인건비와 인프라 부족 등 총비용(TCO)에서 손해를 보는 측면이 있지만 이를 정부 차원 지원책을 통해 상쇄하겠다는 것"이라며 "파운드리 등 생산 부문 공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 산업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불안감에서 이 같은 전략이 나왔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연방정부를 등에 업은 인텔의 추격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정책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현재 오스틴 공장 추가 설비투자 계획을 놓고 주 정부와 세제혜택 규모에 대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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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3월 28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