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업계 배터리 주도권 쥐려는데…제살 깎기 바쁜 SK와 LG
입력 2021.03.31 07:00|수정 2021.04.01 07:03
    SK이노 "수용불가"·LGES "진정성 결여" 입장 되풀이
    거부권 기한 2주 앞두고 업계선 '합의 불가' 전망 多
    車업계 '협상력' 강화…배터리에 휘둘리지 않겠단 뜻
    화재·합의금 등 갈등 지속하며 약점만 들춰내는 꼴
    •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LGES)의 소송전이 소모적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제살 깎아먹는 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사를 두고 관련 업계와 시장의 우려도 커진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에도 두 달여 동안 같은 입장을 되풀이하며 정체된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 시장 판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현재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과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은 미국에 체류하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ITC 판결에 대한 거부권 행사 요청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 여론전을 통해 LGES의 요구가 수용 불가한 수준이라 설파하는 동시에 현지에서 판결 자체를 무력화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거부권 행사 시한은 내달 11일까지다. 2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관련 업계에선 기한 내 양사가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미국 공장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LGES와 SK이노베이션의 합의금 규모는 최대 8조원까지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갈등이 좀처럼 쉽게 진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오히려 관련 업계와 투자자가 불안을 표하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변화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만 해도 소송전은 어느 일방의 승패를 가리는 일이었고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이달 들어 관련 업계에선 양사 갈등보다 완성차 업체의 기류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성장주 우려 확대와 함께 치솟던 양사 주가는 큰 폭의 조정을 거쳤다. 여기에 최대 고객사 중 한 곳인 폭스바겐이 내재화 전략까지 내놨다.

      일각에선 폭스바겐의 이번 발표 내용을 이유로 국내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우려하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테슬라도 내재화 계획을 밝혔지만 아직까지 배터리 공급사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 노스볼트 등 대체 공급사로 부상한 신생 배터리 업체의 경쟁력도 국내 배터리 업체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완성차 업체가 수직계열화를 위해 배터리 생산설비에 투자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완성차 업체가 이 같은 전략을 제시하는 것은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배터리 업체와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이자 ▲독자적으로 배터리 관련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말에는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대규모 발주가 예정돼 있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2년 동안 100년간 이어진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 간 갑을 관계가 역전되는 현상이 벌어졌는데 공급사 간 소송전 때문에 계약이 틀어지는 일이 완성차 업체에 유쾌한 일이 아니다"라며 "완성차 업체의 목표가 테슬라로 좁혀진 만큼 더 이상 배터리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무서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부터 폭스바겐이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와 직접적인 점유율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꾸준히 언급됐다. GM과 현대자동차그룹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결국 이들 역시 테슬라와 경쟁하기 위해 테슬라만큼 배터리에 직접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일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 업계에선 이들 3사가 최대 고객사다.

      한 배터리 연구원은 "테슬라가 원통형 4680 배터리를 제시한 뒤로 상위 배터리 셀 업체가 관련 연구에 들어서며 표준화하는 모습을 보이니 폭스바겐에선 각형 배터리를 표준으로 내세우는 양상"이라며 "완성차 업체들이 연이어 전기차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한 이상 배터리 업체는 협력자인 동시에 넘어서야 할 경쟁자가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합의금과 거부권이라는 가림막 때문에 양사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커지고 있다. 배터리 내재화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증권가에서만 높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사안임을 감안하더라도 갈등을 지속하는 동안 양사의 약점이 지속 노출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모든 입장 발표에서 '불이 나지 않았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LGES의 전기차 화재 리콜 비용 분담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LGES는 사실상 경쟁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으로 합의금 규모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SK이노베이션과 LGES 모두 취약점을 한 가지씩은 안고 있는 실정이다. 소송전을 되풀이하면서 서로의 약점은 계속 부각되고 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접근하는 게 맞는지 우려가 들 정도"라며 "한 쪽에서는 불리한 이슈에서 눈을 돌리려고 소송전을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쪽에선 끝까지 책임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태도로 비친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