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한국인 빌황, 미국 월가 흔들어놔
마진콜 사태로 글로벌 투자은행 수조원 손실
아케고스 사태에 크레디트스위스 리스크 및 IB 수장 해고 위기
-
‘마진 콜 : 24시간, 조작된 진실’ 금융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가 현실에서 일어났다.
-
이 영화가 금융위기 당시 모기지 상품을 소재로 했다면 현실판은 한국계 패밀리 오피스가 움직이는 거대한 자산이다. 속편이 제작된다면 ‘마진 콜 : 아케고스의 진실’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리먼 브라더스 사태’의 골드만삭스를 다뤘다면, 속편의 주인공도 역시나 골드만삭스다. 영화에선 아시아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다면, 속편이 제작된다면 한국계 배우가 비중있는 역할을 맞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진콜 : 24시간, 조작된 진실’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직전 위기에서 탈출한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를 모델로 제작됐다. 영화에서 금융회사는 금융위기 직전 모기지를 자산으로하는 파생상품(MBS)의 위험성을 알고 미리 시장에 내다 팔아서 위기에서 탈출한다. 반면 뒤늦게 대응한 금융회사들은 심각한 손실을 입고 파산에 이르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와 똑같은 상황이 최근 미국 월가에서 벌어졌다.
영화에선 MBS가 사건의 시발점이었다면 현실판에선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황'이 이끌고 있는 패밀리오피스 ‘아케고스’가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다.
아케고스는 한국계 펀드매니저인 빌황의 패밀리오피스로 빌황의 본명은 황성국이다. 그는 1964년 한국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와 선교사인 어머니를 따라 고3때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에서 UCLA와 카네기멜론 MBA를졸업하고 한국의 현대증권에서 영업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펀드매니저로서 두각을 나타내며 SKT 등 한국의 회사를 미국계 헤지펀드의 거장은 로버트슨에게 소개하면서 로버트슨이 이끄는 타이거매니지먼트에 33세에합류한다.
-
타이거매니지먼트는 독특한 문화를 가진 헤지펀드로 ‘스승과 제자’의 도제식으로 펀드매니저를 키워냈다. 빌황은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성과를 보여 타이거매니지먼트의 아시아 부문 ‘타이거 컵’(타이거 아시아)을 맡아 운용하면서 연간 40%의 연간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이후 2012년 내부자거래로 시련을 겪은 뒤 2013년 개인자산2000억원으로 패밀리 오피스인 ‘아케고스’를 설립한다.
이 회사는 베일에 가려진 회사였다. ‘아케고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빌황의 개인자산은 2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김정주 넥슨 회장이 자산 16조원으로 한국 최고 부자로 꼽혔는데, 한국계로 넓힌다면 빌황이 최고 부자인 셈이다. 심지어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성 자산으로 다른 부자와 달리 순수하게 투자만을 통해서 20조원의 부를 일궜다. 로버트슨이 운영했던 방식 그대로 도제식으로 펀드매니저를 훈련시키는 것으로 전해진다.
빌황의 자산은 최근 1~2년 사이에 급격하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투자방식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50여명의 아케고스 직원들은 그들이 분석한 ‘위대한 기업’에 소위 말해서 장기·집중 투자를 단행한다. 한 종목에 전체 자산의 20%를 집중시키고, 확신이 있다면 과감한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한다. 코로나 팬데믹상황에서 주가가 급락하던 시기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면서 지난해에에만 자산이 10조원 불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한 헤지펀드 관계자는 “분석을 통해서 5~10년 이상 보유할 소수의 주식에 자산의 상당부분을 투자한다”라며 “장시간 분석을 하지만 확신이 생긴다면 레버리지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예기치 못한 금융시장의 출렁임이 발생하면서 빌황 신화에 금이 갔다. 빌황은 최근 바이콤CBS, 디스커비리와 중국의 바이두, 텐센트 뮤직 등 콘텐츠 미디어 테그 회사에 집중 투자했다. 미국과중국 양쪽의 미디어 테그 회사에 투자하면서 헤지(hedge) 효과를 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거래가 많지 않은 바이콤 주가가 떨어지면서 아케고스 사태가 시작됐다. 바이콤이 3월23일 증자에 나서면서 주가가 하락했고, 거래가 많지 않던 종목이다 보니 그 하락폭이 예상보다 컸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은행들이 아케고스에 담보로 제공한 담보가치가 마진콜(증거금 추가납입) 상황까지 떨어지게 된다. 통상 이정도 상황이 되면 헤지를 했던 중국 주식을 팔아서 증거금을 납입하면 되지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중국기업 상장폐지 소식에 중국 미디어 기업의 주가도 동시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아케고스는 투자 포트폴리오 주가가 동시에 하락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증거금을 납입하지 못하게 됐고, 일부 은행들과 증거금 납입을 미루는 협상이 진행됐다.
-
헤지펀드 업계에 따르면 바이콤 증자가 시발점이 된데다 미국에 상장된 중국 ADR 주식의 상장폐지, 중국정부의중국 테크 기업 반독점 규제가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벌어지면서 증거금 추가 납부가 어려워진 상황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와중에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마진콜 협상에 들어갔지만 이 와중에 골드만삭스가 선제적으로 움직였다.
현실판에서도 주인공은 ‘골드만삭스’였다. 마진콜 협상이 벌어지던 와중에 골드만삭스가 제일 먼저 주식을 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했다. 거래량이 많지 않은 바이콤 주식 물량이 대량으로 나오자 그 다음으로 모건스탠리가 바이콤 주식 매도에 나섰다. 이러면서 주가 하락이 가파르게 진행됐다.
이런 와중에도 손 놓고 있던 크레디트스위스, 노무라 증권 등이 뒤따라 나섰지만 이미 게임은 끝난 상태였다. 뒤늦게 주식을 처분한 크레디트스위스는 44억 스위스프랑(한화 약 5조3000억원)의 손실을 입었고, 노무라도 수조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선 부실자산을 한꺼번에 시장에 팔아버리면 금융시장의 대혼란이 야기한다며 반대하던 IB 헤드는 회장이 문제 없이 해당 상품을 정리하면 거액의 보너스를 주겠다는 제안에 넘어가 대량 매매에 나선다. 이런 위험을 미리 눈치챘지만 해고된 리스크 담당자는 이 건으로 다시 복직하게 된다.
현실판에선 뒤늦게 움직인 크레디트스위스의 수장들은 줄줄이 해고 위기에 놓였다. 크레디트스위스는 해당 사태의 손실을 막지못한 책임을 물어 최그리스크책임자인 라라 위너(CRO)와 IB부문 대표 브라이언 친의 경질을 고려하고 있다. 이르면 다음주에 이들 후임자가 나올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와중에 골드만삭스는 아케고스 사태와 관련해 아무런 손실이 없다고 밝혔다.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는 “내 관점에서 위험 통제는 잘 작동했다”라며 “우리는 일찍부터 위험을 알아차렸다”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4월 11일 08:0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