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해진 금융권 고객확인절차...PE 대표 인적사항 제출로 줄다리기도
입력 2021.04.28 07:00|수정 2021.04.27 18:12
    금융사고 막기 위해 고객확인절차(KYC) 강화 추세
    대출·주식 매매 등 다양…금융사별로 KYC 방식 달라
    PEF의 경우 대표자 인적사항 제출 놓고 갈등하기도
    고객-금융사, 누가 힘세냐에 따라 정보 수준 달라져
    • 금융사들이 점차 고객확인절차(KYC, Know Your Costomer)를 강화하고 있다. 고객 신원을 철저히 확인해 자금세탁이나 금융사고를 막겠다는 취지인데 잡음도 있다. 이미 거래 관계가 있던 사모펀드(PEF), 누구에게나 알려진 기관 등을 상대로 요구해야 하는 정보가 많아지니 금융사와 고객간 줄다리기가 벌어지기도 한다.

      KYC는 말 그대로 고객의 신원을 확인하는 업무 절차를 말한다.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업이나 자금세탁방지(AML, Anti-Money Laundering) 분야에서 중요성이 커졌다. 금융 범죄나 사고를 예방하고 금융사가 건전성을 관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2019년 우리은행이 국내 은행 중 처음으로 KYC 제도를 시행했고, 다른 금융사들도 KYC를 적용하고 있다. KYC 수준은 금융업권 별, 각 금융사 별로 다르다.

      KYC가 적용되는 영역은 넓다. 일반적인 대출은 물론 M&A에 수반하는 주식담보대출(인수금융), 각종 금융상품 판매 등에도 적용된다. 고객을 대신해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를 수행하는 증권사도 매각자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가상화계 거래에서도 KYC가 점차 강화하는 추세다.

      일반적인 개인이라면 확인할 정보가 많지 않지만 법인의 경우엔 받아야 할 서류가 많다. 특히 투자자 및 지배구조가 중층 형태인 PEF의 경우 확인할 내용이 많고 어디까지 확인해야 하는지도 모호하다.

      금융사 입장에선 돈을 빌려주는 대상의 진정한 주인을 알고자 한다. PEF 투자라면 실제 돈을 빌리는 투자목적회사(SPC), SPC의 출자자(LP), LP의 주주나 대표자까지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LP까지 거슬러갈 수 없기 때문에 운용사나 각 펀드의 대표자, 그도 어렵다면 SPC단의 대표자의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태생적으로 비공개(Private)를 중시하는 운용사는 금융사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특히 독립계 운용사의 경우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창업주의 정보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이 때문인지 대표자가 외국 국적인 운용사는 투자시 차입을 거의 일으키지 않기도 한다.

      금융사 입장에선 난처한 경우가 많다. 원칙적으로는 받아야 할 정보가 많지만 이를 그대로 고집해서는 실적을 쌓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SPC의 대표자라면 보통 운용사 파트너급인데 이 대신 다른 사람의 정보로 갈음하기도 한다. 파트너가 주니어 인사들에 업무를 위임하는 형태를 취하고, 주니어 인사들의 신분증과 주소 등 인적정보를 금융사에 보내는 식이다.

      힘 있는 고객일수록 금융사가 양보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소위 ‘거래를 많이 주는’ 운용사라면 금융사들이 편의를 봐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각 금융사들이 차주에 요구하는 KYC 수준이나 양식이 모두 다른데 힘 있는 운용사는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을 수 있다. 최근 마무리된 한온시스템 인수금융 차환에서도 대주단은 한앤컴퍼니의 요청에 따라 KYC 양식을 하나로 통일해서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가 블록딜을 수행할 때도 예전보다 높은 수준의 고객확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실 블록딜에 나설 정도면 매각자는 아주 유명한 개인이거나 법인, 기관이다. 누구나 아는 매각자더라도 금융사 입장에선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데, 일감을 주는 고객의 정보를 빡빡하게 요구하려니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한 기관을 대신해 블록딜을 수행한 증권사는 고객확인실사를 두 차례나 실시해 진땀을 뺐다는 후문이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KYC가 점점 강화하는 추세인데 요구할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은 금융사와 고객 중 어느 쪽으로 힘이 기우느냐에 따라 다르다”며 “금융사고를 막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고객에 정보를 요구해야 하는 실무 입장에선 불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