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SE 성공적으로 상장한 쿠팡, 기대감 키워
까다로운 상장절차·수 배 수준 비용은 부담
"김범석처럼 영어할 수 있으면 해라" 회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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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업체들에 나스닥 상장은 항상 인기 있는 선택지였지만 최근엔 배로 심해졌다. 잘 하면 수 배로 상장차익을 거둘 수 있지만 '과연 내가 그 정도 기술성과 성장성을 갖췄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잘 하면 대박이지만 대체로 쪽박 신세다. 말리느라 바쁘다." -벤처캐피탈(VC) 업체 대표
"영어로 공시해야 하고, 어닝콜도 1년에 4번 해야하고, 미국인도 고용해야 하고, 언론 대응도 해야 한다. CNBC에서 왔는데 한국말로 인터뷰할 거 아니지 않나. 장이 좋다고 가는 건 정말 엄한 짓이다. 쿠팡 때문에 기업들 헛바람만 들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임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미국 나스닥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그동안은 미국 현지법인을 상장시키거나 미국 바이오업체에 지분을 투자해 간접 상장하는 방식이 많았다. 최근엔 미국 증시 직상장을 노리는 국내 업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게 다수 투자사들의 설명이다.
미국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쿠팡이 불을 지폈다. 상장 초기에 비해 주가는 조정을 나타낸 상태지만 '아직까지는 선방'이라는 평이 많다.
김범석 쿠팡 의장은 이번 상장 과정에서 총 4200만달러(한화 약 475억원)로 구주매출에 나섰다. 미국 기업공개 시장에서 통상 기업이 공모주 규모를 키우기 위해 대표의 구주를 공모주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차익실현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기업 오너 입장에선 꽤 부러울 만하다.
국내 바이오 업체들에 나스닥 상장은 '한번쯤 고려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로 통한다. 미국 의약품 시장은 세계 최대 규모로, 약 18조원의 국내 시장보다 33배 큰 600조원에 육박한다. 유동성 최대 시장인 만큼 후속 유상증자 등 투자성사 규모도 달라질 수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에 있어서도 매력적이다. 글로벌 임상을 준비하기 용이하고 미국 FDA(식품의약국) 허가를 받으면 그 가치는 국내 허가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정부 차원에서 5년여 전 업계 대상으로 나스닥 상장준비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도 있다. 글로벌 제약사와의 인수·합병(M&A)과 기술협력 사례가 활발해질 거란 기대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다수 투자사들이 바이오사 CEO들의 '미국병'을 말리는 이유는 있다. 까다로운 상장절차와 수배 수준의 비용 부담, 언어 장벽 등이 거론된다.
한 VC업체 바이오 투자팀장은 "바이오 시장은 지금 당장 매출이 나오지 않는 기업이더라도 자금 수요가 많다면 꽤 우호적인 시장이다. 성장성이 있다면 천문학적 규모의 유동성을 끌어올 수 있지만 '일장일단'이 있다. 나스닥은 공시 등 정보 공개에 있어 투자자 보호를 위해 꽤나 깐깐한 수준을 요구한다. 상장 비용도 수배 수준"이라며 "국내 증시보다 3배 이상 들지 않는 게 어쩌면 핵심"이라고 말했다.
투자사 사이에선 당초 나스닥 상장을 고려하다 유가증권시장으로 방향을 튼 SK바이오팜 사례가 거론된다. 당시 SK바이오팜은 본사가 서울에 위치한 점, 나스닥 상장 시 상장 유지비에 대한 부담 등을 이유로 국내 상장으로 최종 결정했다.
각 바이오펀드 담당역들은 '언어 장벽'은 최대 난관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최근 VC업계에선 김 의장이 상장 직후 CNBC 스쿼크박스(Squawk Box)의 앵커인 앤드류 소킨과의 인터뷰한 영상이 화제였다. 김 의장은 '수익을 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기존 주주들이 수익실현에 나서면 어떻게 될지' 등 꽤 구체적인 질문을 받았다. 미국 국적자이자 하버드대학 출신인 만큼 영어는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나 답변내용이 '동문서답(?)'에 가까워 다소 아쉬웠다는 평을 받았다. "김범석 쿠팡 의장이 외신 인터뷰에서 다소 아쉬움을 자아냈지만 사실 이 정도도 못하는 오너가 거의 전부"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 VC업체당 바이오 펀드 결성규모만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황이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정부뿐 아니라 연기금이나 은행 등 대형 기관투자자(LP)들도 바이오 투자는 사실상 '1순위'에 가깝다. 투자사 입장에서도 포트폴리오 중 다수를 차지하는 바이오 기업의 기업가치를 어떻게 극대화할지는 주된 고민거리이다.
상장보다도 M&A로 매각차익을 거두는 안을 중점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많다. 한 VC업체 대표는 "기업들의 엑시트 수단이 과거엔 상장이 100%에 가까운 선택지였다면 이젠 M&A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물론 최근 장이 좋은 건 사실이다. 다만 임상 실험을 중단하거나 실패하면 주가가 폭락하는 사례가 많으니 신중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 상장하겠다는 오너가 있으면 '정말 돈 벌고 싶으면 차라리 매각하라'고 조언하는 편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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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4월 25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