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업계로 번진 '인센티브 논란'...주니어 운용역 잇따라 '엑소더스'
입력 2021.05.03 07:00|수정 2021.05.04 10:54
    운용사 수익은 늘었는데 인센티브少
    배신감에 이직 고민…"우린 가마우지"
    대기업·금융지주 계열도 대거 이탈
    • "가마우지라는 새를 아세요? 이 새가 유명해진 건 낚시법 덕분이에요. 낚시꾼이 가마우지 새의 목 아래를 끈으로 묶어뒀다가 가마우지가 먹이를 잡으면 끈을 당겨 고기를 뺏는 식이래요. 자산운용사 입사하려는 후배한테 제가 늘 하는 말입니다. 너는 가마우지가 되는 것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

      '성과급 시즌'을 지나며 자산운용업계에서 일하던 주니어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 대기업 계열 운용사 뿐만 아니라 작은 신생 운용사에서도 인력 부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운용의 핵심인 운용역들의 이탈이 잦다.

      이탈 원인은 역시 대부분 성과급에 대한 불만이다. 지난해 유동성 장세로 대부분의 운용사들은 상당한 이익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 운용역들에게 주어진 대가는 실무진 입장에서 불만족스러웠다는 목소리가 많다. 올 초 SK하이닉스 성과급 분쟁으로 대표되는 '인센티브 논란'이 운용업계에서도 일어난 것이다.

      27일 운용업계에 따르면, 4월부터 시작된 인센티브 지급 시즌을 거치며 이직을 고민하는 운용업계 주니어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직 사유는 다양하겠지만 '회사가 번 만큼 내가 가져가지 못해서'가 가장 자주 거론된다.

      실제로 자산운용들은 지난해 순이익이 크게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자산운용사의 운용자산은 1197조원으로 전년대비 5.4% 증가했고 순이익도 1조3320억원으로 전년대비 62.4% 증가했다. 그러나 올해 초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인센티브는 빈약했다는 평이 많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이번에 돈을 많이 벌어서 명품 가방을 살 만큼은 나오겠지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인센티브 액수를 보자마자 장바구니에서 삭제했다"며 "지난해 이익이 많이 난 만큼 직원들에게 돌아갈 인센티브를 기대했지만 많이 받질 못하니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생긴 지 얼마 안 됐지만 크게 성장한 운용사의 경우 이직을 고민하는 직원들이 늘었다. 지난해 공모주 펀드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운용사들은 짧은 기간에 성장했다. 직원들은 초창기 멤버로서 이에 기여를 했다고 자부했지만 성과의 축배에선 소외된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사가 처음 설립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해 직원들도 본인이 회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인센티브에서는 소외되니 이직 생각을 하는 모습이었다"라며 "직원들이 모여 퇴사를 고민하다보니 대규모 이탈도 현실화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기업이나 금융지주 계열 자산운용사도 인력 이탈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한화자산운용은 부서 하나가 아예 없어질 정도로 직원들이 대거 퇴사했다는 전언이다. 이탈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실력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어 타격이 큰 상태라는 지적이다.

      애당초 한화자산운용의 경우 근무조건이 '공무원'에 가까운 수준이어서 인센티브에 대한 불만은 무뎌졌지만 본연의 업무 외에 담당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며 이직을 결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기자 출신 인력이 운용역으로 들어오며 주니어들의 불만이 가중됐다는 후문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한화자산운용의 경우 미래에셋자산운용이나 삼성자산운용처럼 순수 증권맨을 선호하는 기업과는 달리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온다"라며 "증권사 기업금융(IB) 부서라면 괜찮지만 펀드매니저와 운용역 역할로서는 다양한 경력이 어떤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금융지주 계열 운용사도 주니어 엑소더스(Exodus)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운용사는 한국투자신탁운용이다. 이곳도 꽤 오랫동안 거듭되는 주니어 이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탈이 잇따르자 지주 차원에서도 인력을 관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후문이다.

      회사는 연차장려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의 실무자들은 여전히 한국투자신탁운용에 경직된 조직 문화가 남아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젊은 운용역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근무환경 쪽에서 잡음이 지속되고 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처음부터 운용사에서 일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며 "결국 운용사 운용역이든 매니저든 회사의 가마우지였음을 주니어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