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인수 5년차 '하만'은 제자리…전장사업 한계만 드러난 삼성전자
입력 2021.05.04 07:00|수정 2021.05.07 13:36
    2017년 하만 9조원에 인수…전장사업 시너지 기대
    괄목할 성과 없고 회사 내 매출·이익 기여도 게걸음
    디지털 콕핏 점유율 상승…“마진 낮은 제조업” 평가도
    하만으론 전장사업 경쟁 역부족…M&A 가능성 거론
    • 삼성전자는 2017년 하만을 인수하며 자동차 전장부품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했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전장 분야에서 단번에 인지도를 쌓는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존재감은 여전히 미미하다. 삼성전자의 5G·인공지능(AI) 등 기술과 시너지 효과도 크지 않았다는 평가다.

      하만 인수 정도로는 글로벌 전장 시장에서 앞서나가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다. 앞으로 삼성전자와 하만이 괄목할 성과를 거두려면 대체하기 어려운 자체 생태계를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대형 M&A에 나설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2014년 이재용 부회장 시대가 열린 후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SW)와 AI, 사물인터넷(IoT) M&A에 힘을 실었다. 최종 목적지는 커넥티드카(Connected car)였고, 그 시장 진입을 앞당길 것은 전장 기업 M&A였다. 삼성전자는 2015년말 전장사업부를 출범시킨 후 꾸준히 인수 대상을 물색했다. 2016년엔 유럽의 기업을 인수하려다 그 사실이 먼저 알려지며 거래가 무산된 경우도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전장 사업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 드러났고, 하만 측이 삼성전자에 접촉해왔다. 하만은 삼성전자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던 기업은 아니었지만 거래는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에 들인 돈은 80억달러(약 9조원)다. 거래 전일 종가 기준 대비로는 30%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하만 인수 당시 삼성전자가 인식한 영업권 규모만 거래 금액의 절반에 달한다. 당시 국내 기업의 해외 M&A 역사상 최대 거래였고, 지금도 삼성그룹 역사상 최대 거래다. 그만큼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 의지가 강했고, 기업가치도 높이 평가했다.

      그룹이 전장을 미래 먹거리로 설정했다면 대형 M&A가 가장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고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길이다. 매년 대규모로 하만 영업권 손상차손을 인식하고 있지만, 삼성전자 정도 되는 기업 입장에선 비용보다 속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장에 전장사업 진출을 선언한 것만으로도 하만 인수는 의미가 있었다는 평가다.

      이후 삼성전자가 하만을 잘 활용하고 있느냐 하는 의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하만을 인수한 후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삼성디지털플라자 등에서 하만카돈, JBL 등 브랜드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AKG 브랜드는 삼성전자 모바일 기기의 번들 이어폰으로 제공되기도 했다. 하이엔드급 오디오의 수요는 안정적이다.

      정작 가장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 전장사업의 성과는 의문이다. 삼성전자는 전까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중심의 전장사업을 준비해왔다.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 글로벌 선두기업인 하만이 더해지면 전장사업 토탈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만의 전장사업 노하우와 고객 네트워크, 삼성의 IT 및 모바일 기술이 시너지를 낼 것이란 기대가 컸는데 괄목할 성과는 없다.

    • 하만의 성적표는 들쑥날쑥하다. 2019년까지는 실적이 오르다가 작년에 다시 뒷걸음질쳤다. 하만은 매출의 3분의 2가량을 전장사업에서 거두는데, 작년 팬데믹 영향으로 전방수요가 줄며 타격을 입었다. 작년 1분기와 2분기 각각 900억원, 19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3분기(1500억원)와 4분기(1800억원)에 차량 수요가 되살아나며 최악의 성적표는 면했다. 1분기에 이어 당분간은 차량 수요 증가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인수 당시 하만은 240억달러(약 27조원) 의 수주 물량이 있었다.

      실적이야 경기에 따라 오갈 수 있다지만 삼성전자 내 하만의 존재감이 커진 것도 아니다. 하만은 막대한 돈을 들인 만큼 하나의 사업부문 대접을 받고 있는데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대, 영업이익 비중은 0~1%대에 불과하다. 하만의 영업이익률도 1~3% 수준에 그쳐 10%에 가까웠던 삼성전자 인수되기 전보다 부진하다. 오히려 삼성전자 내 반도체 의존도만 높아졌다.

      삼성전자가 하만과 2018년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 CES에서 선보인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도 갈 길이 멀다. 매년 CES에서 새로운 제품을 강조하고, 세계 시장 점유율도 상승한다지만 전장 시장을 뒤흔들긴 어렵다. 아직 본격적인 상용화까진 갈 길이 멀고, 글로벌 시장 전체 파이도 크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삼성전자와 하만의 전장사업이 아직은 단순 제조업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점유율이 상승해도 개별 제품 가격은 하락세니 마진이 박할 수밖에 없다. BMW, 도요타, 폴크스바겐 등 세계 유수의 완성차 기업과 협력을 맺고 있지만 신기술 전장제품 수주는 또 다른 이야기다. 자동차 개발 초기 단계부터 어떤 전장부품을 집어 넣을지 협의해야 하는데, 사업 주기 상 금방 관계를 맺기 어렵다.

      하만은 현대자동차와 디지털 콕핏 탑재를 협의하고,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만나 미래 전장사업을 논의하기도 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는 없었다. 현대차(엠빅스), 벤츠(MBUX 하이퍼스크린), BMW(iDrive 8) 등 완성차 업체의 디지털 콕핏 기술 내재화 경쟁도 강해지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시장 변화에 따라 하만을 인수했지만 아직 삼성의 전장사업은 시장의 핵심이 아닌 데다 제조 마진 이상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상태”라며 “삼성전자로선 완성차들이 자체 전장 기술 확보에 나서면서 자동차가 없는 전장기업들이 수익성 악화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하만이 전장부문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결국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력과 밸류체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콕핏, 통합반도체(SoC), 5G, 자율주행까지 자체 생태계를 만들어 고객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가 처음 하만을 인수했을 때부터 그렸지만 실행하지 못한 청사진이기도 하다.

      손영권 하만 이사회 의장은 하만을 인수한 2017년말 자율주행차 등 분야에서 공격적인 M&A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다음해 이재용 부회장이 돌아와 4대 먹거리(AI·5G·바이오·반도체 중심 전장부품)를 꼽은 후에도 삼성전자는 안팎의 사정상 반도체에만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하만이 올해 초 인수한 사바리(Savari) 역시 하만 거래 이후 이어진 소형 기술 기업 M&A의 일환이었다.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로 전장사업의 신호탄을 쐈던 것처럼 추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대형 M&A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전장사업 밸류체인에서 약한 고리는 반도체 설계기술이다. 삼성전자가 TSMC와 차별화하기 위해서라도 반도체 설계기업 M&A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NXP 등 차량용 반도체 설계 기업들이 잠재 인수 대상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