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타고 재등장한 소부장 펀드…생색은 또 정부가?
입력 2021.05.17 07:00|수정 2021.05.18 10:14
    1차 소부장 결성 1년만에 2차
    민간 투자기관에 자율성 여전
    장기 투자로 당장 효과 보기 어려워
    • 산업은행이 지난해 초 1차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펀드를 모집한 지 약 1년 만에 2차 소부장 펀드를 모집한다. 규모와 출자금액도 커졌다. 정부가 발표한 ‘K반도체’ 육성 프로그램과 맥락을 함께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가 반도체를 포함한 소부장 육성에 다시 한번 팔을 걷는 모양새지만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을 여전히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후장대 산업 특성상 펀드 만기가 5년 이상이지만 정부가 관리·감독의 의무를 다하긴 쉽지 않다.

      지난 3월 산업은행은 소부장 분야 펀드를 운용할 민간 운용사를 모집하는 공고를 발표했다. 최소 결성금액은 블라인드 펀드가 약 3000억원, 프로젝트 펀드가 2000억원으로 산정됐다. 블라인드 펀드는 일반 소부장과 반도체 소부장으로 나뉜다. 위탁 운용금액은 블라인드 2100억원, 프로젝트 1000억원으로 총 3100억원이다. 현재 미래에셋벤처투자, 린드먼아시아인베스트먼트, 유안타인베스트먼트 등 9곳이 서류 심사를 통과했고 다음주 프레젠테이션(PT)을 앞두고 있다. 최종 결과는 5월 말 정해질 예정이다.

      지난해 모집한 1차 소부장 펀드와 비교하면 큰 틀에서 달라진 점은 많지 않다. 출자사업 구조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블라인드 및 프로젝트로 구성돼 있고 위탁 운용금액만 소폭 늘었다. 1차 운용사 모집 당시 정부는 블라인드 1200억원, 프로젝트 1000억원으로 총 2200억원을 출자해 위탁했다. 예년과 다른 점은 블라인드 가운데 반도체 펀드를 새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반도체 펀드에 출자하는 비율도 80%로 일반 블라인드 펀드(65%)와 프로젝트 펀드(50%)보다 높다.

    • 이는 정부가 강조하는 ‘K반도체’와도 맥락이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K반도체 전략보고 대회’에 따르면 ▲반도체 관련 R&D나 시설에 투자할 때 세제·금융지원을 확대 ▲소부장 분야 설비투자 특별자금 1조원 마련 등을 약속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국내 반도체 산업의 장기적인 육성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의 이 같은 노력에도 여전히 해당 분야 투자의 실효성을 키울 수 있을지 여부에는 의구심을 표현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민간에서 부담해야 하는 금액에 비해 정부의 출자 규모가 미미한 데다, 실질적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에 효과를 미치기까지 사후 관리가 지켜질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예로, 정부가 금번 내놓은 51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계획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규모를 제외하면 정부가 부담하는 금액은 약 1조원 남짓에 그친다. 산업은행이 조성하는 소부장 펀드 가운데 정책금융 규모는 4000억원에 불과하다. 민간에서 부담하는 금액이 크다보니, 자연스레 투자 자율성 역시 기업이나 민간 투자기관에 부여될 가능성이 높다.

      펀드 출자규모 자체가 현재 반도체 시장에 부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히 민간 투자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떠나 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실제 자금수요 눈높이에 턱없이 부족하다. 공급부족 사태에도 증설을 주저하는 대표적 사례인 국내 8인치(200mm) 웨이퍼 파운드리 업종의 경우 설비투자에 못해도 1조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이전에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의 도움을 받아 반도체나 장비 등 기간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내놨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한 경우가 많았다”라며 “극단적으로 기업들은 경쟁회사에 납품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중소기업 지분을 인수해 기술력을 내재화하고, 이후 해당 회사의 미래는 '나몰라라'하는 사례들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민간 투자기관에서 이번 소부장 펀드로 조성된 금액을 얼마나 해당 분야 투자에 할당할지도 미지수다. 실제로 정부 주도의 농수산식품펀드 등 소위 ‘비주류’로 꼽히는 업종에서는 최소 투자비율만 맞추고 이외에는 바이오나 전기차 등 4차 산업과 관련한 기업들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다. 이번 소부장 펀드의 최소 투자비율은 60%로, 반도체 분야는 최소 투자금액이 500억원으로 산정됐다. 기간산업 특성상 투자 효과가 즉각적이지 않다보니 나머지 금액은 소부장과 관련 없는 '돈 되는' 산업과 기업에 투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VC업계 한 관계자는 “벤처투자업계에서 소부장 테마는 정부 주도로 지난해부터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투자업계에서는 여전히 TMT(Technology·Media·Telecom) 등 4차 산업 관련 종목이 인기가 많다”라며 “실제 주니어 VC들 사이에서 반도체나 장비 업종은 선호도가 낮은 테마”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4년차에 소부장 펀드를 내세우는 것이 정권 말기에 늘상 반복됐던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시적인 업적을 앞세워 임기 말 레임덕을 조금이라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기관투자자 한 관계자는 “정책성 펀드들의 만기는 통상 5년 이상으로 길다보니 (정부 입장에선) 투자 효과를 떠나 '펀드 결성 금액만 맞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