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부터 규제...글로벌 압박에 암호화폐 '좌불안석'
입력 2021.05.20 07:00|수정 2021.05.18 17:40
    각국 정부, 투자자 보호 내걸고
    탈세·범죄 악용 방지 대책 추진
    거래소는 여론 눈치 보며 긴장
    • 가상자산(이하 암호화폐) 투자 열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실물 경제와의 괴리, 시세조종 등 문제가 불거지자 각국에선 규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단 글로벌 각국 정부들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용이한 거래소 대상 압박에 나섰다.

      투자자 보호를 전면에 내걸고 탈세ㆍ범죄에 악용되지 않도록 울타리를 칠 필요가 있다는 데 일단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투자자 보호 기준을 만든 뒤 거래소들로 하여금 이를 지키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급격히 악화되는 여론에 기존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투자자 보호에 신경쓰고 있음을 시장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내 14개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액은 10조원 중반대 수준인 코스피 거래대금을 추월했다. 이달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액은 40조원대로, 일평균 거래대금은 20조원을 기록했다.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가격도 이달 사상 최고치 가격인 6만2965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시세 조종에 따른 손실 위험에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그대로 노출된 점에 대해선 우려가 크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이사(CEO)의 말 한 마디에 암호화폐의 가격이 출렁이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암호화폐의 열풍의 시작점도 '지불 수단'으로서의 기능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최근 머스크가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차를 파는 일을 중단할 것"이라고 기존의 발언을 번복하면서 비트코인의 가격은 8% 이상 떨어졌다.

      국가별로 암호화폐 규제의 양상은 다르지만 최근 들어 규제의 대상은 '거래소'로 모아지는 분위기다. 암호화폐 거래 행위를 막는 것보다 규제 기준을 세우기 용이한 까닭에서다. 암호화폐 거래소에서는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다단계 사기에 휘말리거나 시세조종 행위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 현재 주요국 중 가장 규제가 강한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2016년부터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암호화폐를 '가상통화'로 통칭하고 거래소 등록 조건을 자본금 1000만엔(한화 약 1억264만원)으로 규정했다. 2018년에도 7개 암호화폐 거래소에 업무개선명령 등 행정처분을 내렸고 2019년 자금결제법과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주요 투자은행이 잇따라 관련 상품을 내놓으며 가장 '양성화'가 빠른듯 했던 미국도 규제당국이 팔을 걷어부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을 한 달 미루는 결정을 내렸다. 이어 지난 12일 SEC 투자관리부는 성명을 통해 "비트코인 ETF는 매우 투기성이 짙은 상품"이라며 "투자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기대했던 ETF 상장 승인은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이어 14일엔 미국 법무부와 국세청이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자금세탁과 탈세 관련 이슈가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4년만에 업비트, 빗썸 등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현장조사를 진행하는 등 거래소 규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아직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하다는 있다는 평가도 많다. 금융위원회에서는 '화폐,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기 어렵고 정부가 보호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선을 긋는 모습이지만,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펀드를 통해 암호화폐 거래소에 투자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등 정부기관끼리도 혼선을 빚는 모습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자격 기준에 미달하는 거래소를 모두 폐쇄하면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보유할 이유가 없어지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 가이드라인을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준수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과거 다수의 주식거래소를 합쳐 뉴욕증권거래소가 생겨난 것처럼, 가이드라인을 맞추지 못하는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합병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높은 중개수수료 덕택에 한 해에 조(兆) 단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최근 투자업계에서 제기되는 등 여론이 크게 악화한 상태인데 규제의 대상이 거래소로 좁혀지고 있어서다. 실제로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지난 4년 동안 시스템 장애로 인한 투자자 피해에 31억원을 보상해왔다며 시장에 투자자 보호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암호화폐 분야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현재 특금법 시행과 관련해 실명계좌를 받기 위해 은행과 협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라며 "다만 암호화폐 자체를 바로 제도권에 편입하는 것은 논의가 필요하고 부담스러운 부분이지만 투자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