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美 협상은 삼성전자 몫, 국내 반도체 쇼티지는 SK하이닉스 몫?
입력 2021.05.21 07:00|수정 2021.05.24 10:03
    中 가는 시스템IC…M&A로 국내 공백 매우는 전략
    "LP로 남을 때보다 반도체 수급난 적극 대응 가능"
    정부와 교감해 삼성전자와 역할분담 나섰단 평도
    •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각각 메모리 반도체 시장 1, 2위인 양사의 최근 행보가 한미 정상회담 대응과 국내 반도체 공급 부족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다.

      20일 인수합병(M&A)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키파운드리(옛 매그나칩반도체 파운드리 사업부) 완전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키파운드리 측에서 자문단을 꾸리는 등 매각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SK하이닉스가 키파운드리 지분을 모두 가져갈 거란 전망은 박정호 부회장이 지난 13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2배로 확대하겠다"라고 밝히며 급부상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자회사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8인치 파운드리 사업을 보유 중이다. 현재 시스템IC의 8인치 파운드리 생산 능력은 웨이퍼 기준 월 10만장 규모다. 증설을 준비 중인 키파운드리의 월 생산량은 9만장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키파운드리 인수에 나선 배경으로는 국내 파운드리 사업 공백이 거론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8년 7월 중국 우시(無錫)시와 합작법인(JV)을 설립했다. 현재 국내 청주공장 8인치 파운드리 설비를 중국 우시로 이전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당시만 해도 우시 이전을 통해 현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업체)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2019년 이후 8인치 시장이 부활하기 시작하며 국내 사업장 공백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키파운드리 인수를 완료하면 국내 사업 공백을 매우는 것은 물론 국내 반도체 수급난에 적극 대응할 수 있다는 평이다. 키파운드리는 전력반도체(PMIC),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 현재 공급 부족이 집중된 품목을 생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실적 발표회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 수급 상황 등을 보면서 대형 반도체 업체로서의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밝힌 바 있다.

      1분기 말 기준 SK하이닉스가 보유한 매그너스PEF 지분 50%의 장부가는 약 2073억원이다. 비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나머지 지분 절반의 몸값은 장부가보다 높게 형성될 전망이다. 다른 출자자의 회수 눈높이에도 적합해야 한다. 코스피에 상장한 경쟁사 DB하이텍의 경우 2019년 이후 몸값이 5배 이상 뛰어 시가총액이 2조3000억원 이상이다. SK하이닉스의 3월 말 현금 보유액은 약 2조2000억원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특수목적법인(SPC)인 매그너스PEF에 LP로 머무는 것보다 직접 경영에 나설 때 자체 파운드리 전략에도 유리하고 국내 공급난 문제에 기여할 여지가 크다"라며 "다른 선택지에 비해 가격적인 이점도 있고 인수 여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이번 행보를 두고 정부와 대형 반도체 업체 간 역할 분담이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현재 미국은 반도체를 전략물자로 지정하며 노골적으로 현지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오는 20일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앞두고 미국 오스틴 공장(SAS)을 중심으로 선단공정 파운드리 투자 계획 발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미국 현지 투자 계획이 없는 SK하이닉스가 미국 눈치를 살펴야 할 거란 목소리가 높아졌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월 미국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짓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기존 국내 투자 계획을 고려하면 당장 미국 현지 진출이 쉽지만은 않다. 삼성전자의 경우 오스틴 증설을 통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확보나 고객사 확보에서 실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당장 12인치 파운드리 사업이나 선단공정 진출을 계획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조율을 통해 삼성전자가 미국의 반도체 정책에 증설로 대응하고 SK하이닉스가 국내 파운드리 M&A를 통해 공급난에 대처하는 식으로 역할이 나눠진 거란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대통령 방미를 통해 한미 양국 간 반도체 협력을 꾀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현지 투자 등 선물을 안기고 백신 문제를 협상하는 자리란 평이 많다"라며 "정부와 교감하며 반도체 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대미 협상카드를 담당하고 SK하이닉스가 국내 쇼티지를 책임지는 모양새가 됐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