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의 강원랜드'…21세기판 '젊은이의 양지' 된 코인
입력 2021.05.24 07:00|수정 2021.05.23 11:16
    • 내 손안의 강원랜드 : 투기·도박판으로 변질된 코인판을 의미

      안전벨트 매세요 : 가격이 급하락 혹은 급상승할 때 흔들리지 말고 버티라는 뜻

      돔황챠 : 코인장이 급격하게 하락할 때 '도망치라'는 말

      껄무새 : '~일 때 살걸'처럼 과거 매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사람

      투더문 : 가격이 급등해 달까지 간다는 의미

      흑두루미 : 두루미처럼 목을 길게 빼고 휩쓸리듯 투자, 흑우('호구'를 음차한 은어)가 되는 어리석은 사람

      흑송아지 : 머지않아 흑우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

      그야말로 '광풍(光風)'에 가까운 가상화폐 투자열풍은 이제 일종의 '놀이문화'가 됐다. 점차 투기 혹은 도박판으로 변질되면서 '내 손안의 강원랜드'라는 말까지 나왔다. 공감대를 형성한 코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위 같은 밈(Meme;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이 농담처럼 오간다.

      그들은 왜 '코인판'에 뛰어들었나

      국내 가상화폐 4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의 하루 거래대금이 코스피를 초월한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주식보다 상승률이 훨씬 크다보니 보유주식을 매도해 가상화폐로 옮기는 현상이 벌어졌다. 주식보다도 레버리지 한도가 높은 선물에 투자한 사람들마저 코인으로 눈을 돌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코인 안 하는 사람도 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너도나도 코인판에 뛰어드는 분위기다. "코인 하시냐"는 말은 어느새 직장이나 거래처 직원을 만날 때 쓰는 아이스 브레이킹 멘트가 됐다. 폭락장이 와도 "안전벨트 꽉 매고 버티자"며 '손묶기'에 나선다. 가격이 폭락해도 다른 투자자들도 같은 처지인 만큼 '다같이 망했으니 그래도 괜찮다'는 집단 안정감이 있다고 한다.

      수백만원부터 수억원대까지 투자금을 키우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될 줄 나도 몰랐다"는 말을 한다. 시작은 푼돈이었지만 눈 깜짝할 새에 투자금이 수배 불어나는 것을 보면서 이성을 잃고(?) 점차 큰돈을 베팅하게 된다. 분명 투자 초반엔 투자규모로 고려조차 하지 못 했을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시장에선 '부자'와 '거지'의 차이가 순식간에 벌어진다. 오늘의 부자도 눈 한번 떴다 감으면 벼락거지가 될 수 있고, 동시에 오늘의 거지가 내일은 일확천금을 벌 가능성도 열려 있다. 가상화폐 시장은 '큰 돈을 쉽고 빠르게 벌고 싶다'는 인간 본능을 깊숙이 타깃했다.

      투자에 뛰어들지 않으면 자산 증식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공포가 곧 투자 동력이다. 일확천금 심리가 발동하며 도박적인 심리가 가세, 무리한 투자를 하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가상화폐 투자는 24시간 내내 거래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주식투자보다 상대적으로 중독 수준이 크다는 평가다.

      코인은 믿음이다

      코인 투자자들은 '코인은 믿음'이라고 얘기한다. 일단 돈을 넣고 나면 언젠간 오를 수밖에 없다는 희망이 굳건해진다. 4월 폭락장에 이어 5월 중순 시장을 강타한 일론 머스크(테슬라 최고경영자) 발(發) 악재에도 이들의 믿음은 여전히 굳건해 보인다.

      '박상기의 난'이란 말이 있다. 지난 2018년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는 사실상 투기도박과 비슷하다"며 "거래소 폐쇄까지 목표하고 있다"고 발언, 대부분의 가상화폐 가격이 절반 이상 떨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투자자들은 당시의 패닉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한 투자자의 말을 인용하면 2000만원이 200만원이 되기까지는 5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거품론'에 시달렸을 당시와 비교해 가격이 수배 이상 급등, 결국 언젠간 오를 수밖에 없다는 학습효과가 생겼다. 일단 버티면 지금의 손실은 곧 회복될 것이란 믿음이다.

      일각에선 코인 가격 급락은 외부적 요인에 의한 일시현상이라며 코인의 가치엔 문제가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앙은행에서 디지털화폐(CBDC)를 만들겠다고 나섰고,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는 월가 최초로 자체 가상화폐를 수개월 내 출시할 계획을 공식화했다. 카카오나 네이버 등 대기업에서도 관련사업에 뛰어든 만큼 장기 전망이 긍정적이라 보는 것이다.

      주식투자처럼 코인 내에서도 '대장주'을 찾으려는 경향도 있다. 이는 특히 40대 이상 중·장년층 사이에서 두드러지는 움직임이다.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코인을 통칭) 위주로 투자하자는 젊은층에 비해 이들은 '대장'으로 불리는 비트코인 위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젊은층에 비해 비교적 투자경향이 보수적인 이들마저 가상화폐를 사실상 자산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큰 돈 번 사람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코인 투자로 큰 돈을 만지게 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몇십억 벌고 퇴사장을 던졌다거나 추가 '대박'을 노리면서 퇴사만을 기다린다는 직장인들의 사례가 많다.

      '주변에 강남에 집 한 채를 샀다는 얘기가 하루 멀다하고 들려온다'는 말도 자주 떠돈다. 다만 무성한 소문만큼 실제 '코인 부자'들이 부동산을 매입하는 사례는 흔한 경우는 아니란 얘기도 있다.

      한 대형증권사 초고액자산가(VVIP) 부동산 컨설팅 담당자는 "VVIP 고객들이 주변의 코인 부자들에게 '부동산 컨설팅 한번 받아보지 않겠느냐'고 소개해주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자문 서비스를 신청해 고객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아직 없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주식·부동산 등 한 자산에서 큰돈을 만진 사람들은 수익을 다른 자산으로 이동을 결심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담당자는 이어 "현금출처를 자세하게 밝히진 않는 만큼 실제 고객 중 숨겨진 코인부자들도 있었을 순 있다. 다만 자산의 종류를 바꾸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주식하는 사람은 주식만, 부동산 하는 사람은 부동산만 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주식 투자가 익숙한 투자자들은 대체로 주식과 코인을 고루 운용하는 편이지만 부동산 투자는 허들이 다소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1억으로 시작해서 10배를 벌었었다. 그렇게 번 10억을 다시 코인에 '몰빵'해 최대 130억원까지도 불렸다. 하지만 점차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불안해져 결국 80억원 수준에 팔고 나왔다. 지금은 이 돈을 하루에 1억씩 주식에 넣고 있다. 부동산 투자도 끌리는 선택지였지만 세금 부담이 좀 있어서 단념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