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빠진 IPO 시장에 '번아웃' 온 IB맨들
입력 2021.06.02 07:00|수정 2021.06.03 10:09
    주식시장 전만 못해…하락장에 '우울'
    발행사의 공모가 욕심 맞춰주다 비난도
    갑질·美상장 열풍에…'인력 품귀' 가속
    • 지난해부터 '열풍' 수준으로 달궈진 기업공개(IPO) 시장 덕에 증권사 기업금융(IB) 인력들도 덩달아 바빠졌지만 막상 상장 시기가 다가오자 가라앉은 분위기에 '번아웃'이 왔다는 호소가 늘고 있다.

      높은 공모가를 고집하는 발행사들의 고자세는 여전한데 기업가치를 높게 산정하거나 상장 이후 주가가 하락하는 데 대한 책임은 주관사들이 모두 뒤집어써서다. 이에 더해 미국 상장 분위기까지 형성된 탓에 주식발행 업무를 봐주던 발행사가 국내 상장 의사를 철회할 가능성도 높아지며 무력감은 커지는 모양새다. 이는 고스란히 IPO 인력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뜨거웠던 IPO 시장의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올해 초 상장한 일부 기업들이 상장일 종가가 공모가 대비 하회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1월 상장한 씨앤투스성진은 상장 당일 공모가인 3만2000원보다 10% 낮은 2만8700원의 주가를 기록했다. 28일 기준 주가는 이보다 낮은 2만원대다. 5월 상장한 에이치피오, 씨앤씨인터내셔널, 진시스템도 상장일 종가는 공모가를 밑돌았다.

      IB맨들은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부진한 주가 추이에 그간 준비해온 딜(Deal)의 성과가 부진한 데 무력감을 느낌에도 불구, 어김없이 다음 딜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빡빡한 스케줄 뿐만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 때문에 업무 과중에 따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 IPO업계 관계자는 "RFP를 작성해 딜을 따내고, 우릴 주관사로 선택해준 발행사들이 시장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우리의 업무다"라면서도 "증시가 지난해만큼 호황이 아니다보니 잘 준비해오던 딜이 엎어지는 걸 보면 속상하지만 이런 스트레스를 술 먹고 풀기도 힘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이 예전만 하지 못한 데도 발행사들이 여전히 고자세인 것과 관련해서도 불만의 목소리는 높다. 발행사들의 높은 공모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증권사 실무진들 또한 고초를 겪고 있지만, 높게 산정한 공모가로 인해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의 불만은 주관사를 향하고 있다. 실제로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발행사들이 기업가치를 말도 안 되게 띄우고 있다"라며 목소리 높여 비난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증권사마다 IPO 인력을 확충하는 등 IPO 관련 부서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IPO 담당 실무진들은 공모규모가 크고 대기업 계열사 딜을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부담이 큰 셈이다. 발행사들의 높은 공모가 니즈(Needs)를 반영하지 못하면 주관사로 선정될 수 없기에 높은 공모가와 관련해 울며 겨자먹기로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다보니 중소형 증권사들이 발행사들로부터 수모를 겪는 사례도 거론된다. 카카오뱅크는 주관사 선정 당시, 중소형 증권사 고위급 실무진들만 카카오톡 단톡방에 초대해 한 번에 탈락 통보를 전했다는 후문이다. 통상 주관사 탈락 소식은 각 증권사에 전화를 해 전달하는 것이 통상적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간편한 방법을 택한 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쿠팡에 이어 미국 상장을 꿈꾸는 기업들의 변덕도 IB맨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미래에셋증권을 주관사로 두고 국내 상장에 나섰던 야놀자는 쿠팡 상장 이후 미국 나스닥 상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래에셋증권은 야놀자가 국내에 상장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최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그룹 산하 비전펀드로부터 1조원 규모의 투자를 받으면서, 야놀자의 미국 상장 가능성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증권사마다 IPO 인력 확충에 열을 올리곤 있지만 'IPO 기피 현상'은 불거지는 모양새다. 한 IPO를 담당하던 주니어 뱅커는  IPO를 제외한 유상증자 등 ECM 딜을 담당하는 타 증권사 ECM부서로의 이직을 결심했다. 잇딴 인력이탈에 잔존하는 IPO 실무진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하나의 딜에 한 명의 주니어급 실무진이 달라붙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전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혼자 딜을 맡곤 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저연차에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라면서도 "힘에 부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