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PDR(주가꿈비율)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21.06.08 07:00|수정 2021.06.10 10:21
    지난해 급등장 설명하는 키워드 '주가 꿈 비율'
    인플레ㆍ테이퍼링 우려 대두한 이후 언급 '뚝'
    PDR의 선구자격 'ARKK'도 급락하며 체면 구겨
    닷컴버블 유산 PSR, 자리잡는 데 20년...PDR은?
    • '주가 꿈 비율'(PDR;Price to Dream Ratio)은 2020년 하반기 전 세계적인 주가 폭등장을 설명하는 키워드였다. 모두가 미래를 향해 투자했다. 투자자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계좌 잔고를 보며 선지자가 된 것 같은 꿈을 꾸었다.

      '포스트 코로나' 급등장이 펼쳐진지 고작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 시장에서 PDR을 말하는 전문가들은 자취를 감췄다. PDR 산식을 상표 등록 출원한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서나 간간히 언급하는 정도다.

      새 시대의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본)로 각광받던 가치산정(밸류에이션) 지표가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난 것이다.

      PDR이 각광받던 이유는 간단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어마어마한 돈을 풀었다. 이 중 상당수가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정보기술ㆍ전기차 등 이른바 '미래 산업'에 투자자들의 발길이 쏠렸다. 급등한 주가는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들였고, 폭등으로 이어졌다.

      기존의 주가순이익비율(PER)같은 밸류에이션 산식으로는 해당 종목의 주가를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시장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기존 산식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입장과, 새 시대가 왔으니 일단 현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했다. PDR은 후자에 의해 고안됐다. 일종의 '정당화' 과정이었다.

      PDR이라는 용어는 새로웠지만, 개념은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산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미래 특정 시점에 전 세계 해당 제품ㆍ서비스의 시장 규모를 예상한다. 그리고 해당 회사가 그 시장에서 차지할 점유율을 예상한다. 이렇게 예상한 수치에 비슷한 사업을 하는 회사들의 '평균 배율'을 곱한다.

      주로 바이오기업들이 신규 상장할 때 쓰던 방식이다. SK바이오팜이 대표적이다. 이 모델의 단점은 명확하다. 예상에 전망에 추정을 더해 계산하기 때문에, 가정한 수치 단 하나만 삐끗해도 전체 밸류에이션이 무너져 내린다. 2017년 상장하며 2019년엔 흑자전환하고 2020년부턴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내겠다던 신라젠이 그랬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돌아보면 주가 꿈 비율이 아니라 주가 유동성-광기 비율이었던 것 같다"며 "물가 상승 우려와 테이퍼링(양적완화 감축) 우려가 고개를 들자 PDR을 외치던 종목들이 일제히 무너져내렸다"고 말했다.

    • 2021년 1월을 정점으로 PDR은 설득력을 잃은 지표가 됐다. 물가가 자극을 받으며 시장 금리가 급등했다. 역사적인 수준으로 늘어난 유동성이 자산 시장 이곳 저곳에서 우려를 낳기 시작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내부에서까지 테이퍼링에 대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으며 PDR을 적용받던 기업들의 주가들이 곤두박칠쳤다.

      구(舊)시대의 유물로 여겨졌던 은행 등 '가치주'로의 순환매가 이뤄졌다. 인플레이션 우려를 타고 원자재주가 급등했고, 백신 접종에 따라 재개장(Re-opening) 기대가 커지며 소비ㆍ여행ㆍ항공주가 조명을 받았다.

      PDR의 선구자격으로 여겨졌던 미국 아크인베스트의 '아크 이노베이션 상장지수증권'(ARKK)역시 고점 대비 30% 이상 급락하며 체면을 구겼다. 아크인베스트는 테이퍼링 위기감이 고조되던 지난 3월 테슬라 목표 주가를 3000달러로 제시하며 증권가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당시 아크인베스트가 사용한 밸류에이션 산식은 '몬테카를로'인데, 이는 평균 판매단가ㆍ대수 등 예측 모델을 만들어 무작위 시나리오를 돌리는 방법"이라며 "'잘은 모르겠고 어쨌든 잘 될거에요'와 다름이 없어 '아크인베스트가 선을 넘었다'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말했다.

      기존의 잣대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면, 언제나 이를 정당화하려는 논리가 등장하곤 했다.

      2000년 '닷컴 버블'땐 주가매출액비율(PSR)이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했다.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PSR로 주가를 정당화하던 기업들은 대부분 머지않아 폭락을 맛보거나, 아예 시장에서 퇴출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PDR로 주가를 정당화하던 기업들 역시 비슷한 흐름을 타고 있다.

      물론 PDR이라는 개념까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닷컴버블 붕괴 이후 한동안 '지나치게 급진적인 척도'라는 평가를 받던 PSR은 20년이 지난 지금엔 '주요 가치평가 척도'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고객 확보가 중요한 플랫폼 기업이나, 매출 성장성이 중요한 벤처기업의 경우 PSR이 주요 평가 기준이다.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 역시 여러 트레이더들이 PSR을 기준으로 매매하고 있다.

      PSR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덴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PDR은 앞으로 몇 년 후에야 PER 같은 '주요 척도'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