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상보단 높은 공모가 택한 크래프톤에 비난도
일각선 "금감원, 효력발생 시켜주면 공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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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공개(IPO)에 나선 크래프톤이 다소 높은 희망 공모가 밴드를 제시하면서 기관투자자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크래프톤의 대표적인 개발작인 '배틀그라운드'의 인도 시장 진출이 성공해야만 정당화할 수 있는 가격대라는 설명이다. 비싼 공모가에 기관투자자들은 락업(의무보호예수)을 걸지 여부에 대해 고민이 큰 상황이다.
특히 크래프톤은 이번 IPO를 통해 최대한 많은 자금을 조달하길 희망하고 있다. 따상(공모가 2배로 시초가 형성한 뒤 상한가)보단 높은 공모가를 주관사에 요구했다는 전언도 나온다. 통상 공모가를 낮게 설정한 뒤 투자자들로 하여금 차익 실현 기회를 주는 업계 관례를 깬 데 기관투자자들은 크래프톤이 IPO 시장을 흐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크래프톤은 이번 IPO를 통해 최대 5조6000억원 가량을 조달할 전망이다. 1주당 희망 공모가액을 45만8000원~55만7000원으로 제시했다. 해당 공모자금은 역대 최대규모로 꼽힌다. 올해 상장 대어(大魚)급으로 꼽혔던 SK IET(2조2459억원)와 SK바이오사이언스(1조4917억원)보다도 훨씬 높다.
기관투자자들은 대체로 '비싸다'고 평한다. 락업 기간에 대한 고민도 크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생각보다 더 비싸게 공모가가 책정돼서 락업을 어느정도로 걸지 고민하고 있다"라며 "공모 규모가 크니 락업을 걸진 않아도 물량은 웬만큼 받을 것 같은데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인도 시장에서의 배틀그라운드가 성공해야 해당 공모가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크래프톤은 인도에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 사전예약을 실시하고 있다. 사전예약 실시 2주 만에 예약자 수가 2000만명을 넘긴 했지만 인도 국민들의 구매력을 비추어봤을 때, 실제 구매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란 평가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인도에서 배그가 잘 된다는 걸 보여주면 지금 밸류가 정당화될 듯 하다"라며 "지금까지는 사전예약 결과가 좋은 것으로 나오는데 인도 사람들의 구매력이 어떤지를 모르겠어서 쉽게 투자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크래프톤이 IPO 시장의 물을 흐리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크래프톤은 주관사로 하여금 따상에 욕심이 크지 않으니 대신 공모가를 높게 산정해달라고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따상을 했다는 것은 결국 IPO 시장을 통해 자금을 더 많이 조달할 수 있었지만 못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머리를 잘썼다'라고 평하면서도 난색을 표한다. 통상 IPO 시장에서는 공모가를 낮게 책정해 투자자로 하여금 차익 실현의 기회를 주는 것이 관례다. 그럼에도 크래프톤이 따상보단 높은 공모가를 택하며 크래프톤 상장 이후 IPO 시장의 분위기가 상당히 흐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들에게 알파를 주지 않으면 상장 이후 공모가 아래로 흘러내릴 것 같다"라며 "이렇게 되면 IPO 시장 전체 분위기가 어려워질 듯 하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나서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에 접수된 증권신고서는 15거래일 간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거친다. 금감원에서 '효력발생' 판정을 내려야 크래프톤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활동을 펼칠 수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디즈니를 비교기업에 포함시키는 등 상식에서 벗어난 공모가 산정식과 다소 허술하고 낙관적인 투자위험요소 항목 등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며 "현재 공모가 그대로 신고서가 효력발생 한다면 금감원도 '크래프톤 뻥튀기 공모'의 공범이 되는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악화한 여론이 신고서 정정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달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에스디바이오센서는 공모가 고평가 및 과도한 구주매출 논란에 휩싸인 끝에 금감원의 정정 요구를 받았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최근 공모가를 낮추고 구주매출 규모도 축소한 내용의 새 신고서를 제출했다.
최근 대어급 상장 건들이 연이어 나오면서 기관투자자들은 기관 대상 설명회(IR)에서도 질문을 아끼는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발행사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괜히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는 까닭에서다.
한 기관 실무자는 "자본시장에서 추후 자금 조달할 계획이 없는 건가 싶을 정도로 높은 가격을 부르는 발행사에게 근거를 신랄하게 물어볼 수도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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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6월 17일 15:5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