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님' 엑시트 창구된 프리 IPO?...장및빛 미래 vs 독이 든 성배
입력 2021.06.22 07:00|수정 2021.06.24 08:12
    공모주 시장 호황으로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 IPO) 열풍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의 엑시트 창구로 활용된다 지적
    상장 입소문 탔다가 좌초될 경우 투자사·회사 모두 난처
    • 중소ㆍ중견기업들의 상장 전 지분투자(프리 IPO)가 다채롭게 시장에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의 자금회수(엑시트)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들이 제기되고 있다.

      공모주 시장 호황을 틈타 상장을 앞둔 기업들의 지분을 미리 사두려는 투자자들의 수요에, 오너들의 지분 매각 필요성이 부합되면서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문제는 일부 오너들 사이에서 투자은행(IB)과 협의를 통해 구주매각을 먼저 염두에 두고 상장 밑그림을 그리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즉 상장 가능성을 공론화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비싼 값에 구주를 매각하는 방식이다. 어찌보면 선후관계가 뒤바뀌었을 뿐이지만 자칫 시장 교란행위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데다 행여 상장이 여의치 않게 되면 회사와 투자자 모두가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최근 제약·바이오회사 지아이이노베이션은 하반기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10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유치해 투자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약 한 달 간격으로 무려 세 차례나 유상증자를 실시, SK·제넥신 등 일반기업과 DS자산운용 등 금융사까지 투자자로 두게 됐다.

      지난 15일 유한양행 역시 블록딜을 통해 엔솔바이오사이언스 지분 약 30억원가량을 매도했다. 엔솔바이오사이언스의 코스닥 이전 상장을 앞둔 시점으로 시기가 공교롭다는 지적이다. ‘아기상어’로 유명한 스마트스터디나 이지스자산운용 지분 일부도 PE(사모펀드)가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두 회사는 모두 상장설이 유력하거나 소문이 무성한 회사다. KTB네트워크 역시 하반기 상장을 앞두고 구주 일부를 사줄 투자자를 물색 중이다.

      상장을 추진 중인 회사들이 투자를 받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오너 입장에서 상장 시 구주매각을 하기에는 한국거래소나 시장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탓이다. 또 투자자들은 상장이라는 확실한 엑시트 방안을 통해 자금회수 가능성을 높여 투자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

      그러나 구주매각을 위해 상장 작업을 준비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즉 상장이 원래부터 예정된 기업의 지분을 파는 것이 아닌, 애초에 구주매각을 염두에 두고 상장을 추진해 기업가치를 올리고 비싼 값에 엑시트를 하는 방식이다. 상장 밑작업 과정에서 입소문을 타면 구주매입을 위한 투자자들이 몰려 비싼 가격에 구주를 매각할 수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지아이이노베이션이나 유한양행의 거래 사례도 이런 식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유한양행이 투자했던 엔솔바이오사이언스나 지아이이노베이션은 모두 상장이 임박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큰 상황에서 지분이 매각된 셈이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일반 투자자들 외에 SK, 제넥신, 종근당 등 직간접적으로 사업적 연관을 맺었던 회사들을 대상으로 ‘보은’ 차원에서 투자 기회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한양행 역시 10년 만에 투자금 회수에 성공했다. 엔솔바이오사이언스의 상장 가능성이 불거진 덕을 봤다. 상장 ‘가능성’만 불거졌을 뿐인데 회사 측과 투자자들이 서로 ‘윈-윈(Win Win)’하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라고 입을 모은다.

      벤처투자사(VC)나 PE들은 최근 프리 IPO 경쟁이 치열한 만큼 상장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구주매입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VC들이 증권사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어두고 투자한 회사의 오너들을 연결해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오너들은 상장 작업 과정에서 입소문을 내고 회사의 기업가치를 올리면 더 많은 잠재적 투자자를 모을 수 있어 이득이다. 지금과 같은 공모주 호황 시기를 틈타 갑자기 상장을 하겠다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뒤이어 구주매각을 시도하는 사례들이 자주 눈에 띄는 까닭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요즘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은 상속이나 승계보다는 번거로운 상장 절차 이전에 지분을 털고 싶어한다. 상장 시에는 거래소 눈치를 봐야하니 구주매출은 꿈도 못 꾸기 때문”이라며 “반면 비상장 주식 투자자들은 엑시트를 못할까봐 걱정이 큰데, 투자 전에 상장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영리한 선택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시장 교란행위에 가깝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분가치를 올리기 위해 상장 가능성을 시장에 미리 알리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다. 백 번 양보해 법적 위반소지가 없다 하더라도 일반투자자와 정보 비대칭성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장외주식 투자자들이 치솟는 주가에 발을 들였다가 자칫 상장이 좌절되기라도 한다면 기업 오너와 달리 투자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큰 셈이다. 대형 로펌의 한 M&A(인수합병) 전문 변호사는 “상장 동기와 관련한 법적 책임을 입증하기가 어렵고 비상장기업은 자본시장법상 규제에서도 벗어나 있다”라면서도 “다만 시장에서 논란이 될 여지가 있고 법적 위반 여지에서 완전히 피해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회사와 투자자들로서도 마냥 장및빛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상장까지 성공한다면 다행이지만 상장을 추진했다가 예상치 못한 외부요인으로 직전에 좌절되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 말부터 공모주 시장 분위기가 한풀 꺾인다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상장이라는 엑시트 방식에 오롯이 희망을 걸기는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비상장기업들이 상장을 토대로 여러 PE들을 투자자로 유치했다가 상장이 미끄러지며 회사와 투자자가 모두 난처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상장만 믿었다가 기약이 없어지자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VC나 PE들은 풋옵션(특정 가격에 팔 권리)을 요구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회사는 투자자들의 지분을 비싼 값에 되사고 손실을 메워줘야 하는 셈이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야 (손실 최소화를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해두는 만큼 (상장이 어그러지면) 기업 오너들은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주려다 회사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지기도 한다”라며 “투자자들도 공동 운용사(Co-GP) 방식으로 지분을 사둔 경우에는 어떻게 투자금을 회수할 것인지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양쪽이 모두 난처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이번 프리 IPO 투자 유치는 GI-101 글로벌 임상 및 후속 파이프라인 개발을 위한 자금유치 성격"이라며 "이번 투자는 신주 발행으로만 이뤄졌고 창업주의 구주매각은 없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유한양행은 "엔솔바이오사이언스 상장 계획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사항이 없고  해당 지분 매각은 엑시트를 해야 또 다른 곳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기 때문에 지분가치가 올랐을 때 일부 지분을 처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6월 18일 15:58 게재ㆍ6월22일 17:25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