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家 남매의 '조 단위' 베팅…불안히 지켜보는 채권시장
입력 2021.06.23 07:00|수정 2021.06.24 08:13
    이마트는 이베이, 신세계는 휴젤 인수 추진
    "투자 속도 감당할 수 있을까"…재무부담 우려
    신세계 남매 경영 성과 경쟁이란 분석도
    • 신세계그룹이 연이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채권시장에서는 ‘과연 속도를 감당할 수 있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마트는 3조원대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단독으로 나섰고, 신세계백화점(㈜신세계)은 2조원의 휴젤 인수가 예상되는 등 서로가 ‘빅 딜’에 뛰어들면서다.

      각 부문을 맡은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 남매가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베팅’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크레딧시장에서는 그룹의 재무부담 추이를 신중하게 지켜보는 분위기다.

    •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SSG닷컴 포함)는 올해에만 SSG랜더스(프로야구단), W컨셉(의류쇼핑 플랫폼)을 인수했다. 현재 요기요(배달음식 플랫폼) 매각 숏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린 상태다. 거래대금이 3조원 중후반대로 예상되는 이베이코리아는 본입찰 단계에서 네이버가 불참하면서 신세계그룹이 단독 인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마트는 등급 전망 ‘안정적’으로 당장 신용 리스크가 있지는 않다. 다만 이베이코리아 등 3조원 규모 딜을 포함한 투자를 연이어 해나가면서 ‘재무안정성’을 우선시하는 크레딧시장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마트는 2019년 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조정됐고 2020년 ‘AA+’에서 ‘AA’로 등급이 내려갔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이 공격적인 확장을 하는 모습을 신중하게 보고 있다”며 “정용진 회장의 과거 투자 트랙레코드를 보면 실패한 것들도 있다 보니까 ‘과연 잘 될지’, ‘어떻게 봐야하나’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야구단과 오프라인 유통을 결합하는 등 방향성은 틀리지 않다고 보는데, 속도는 너무 빠른 것 같기도 하다. 속도를 견딜 재무적인 여력이 충분한지, 또 오너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는건지 아니면 정말 치밀한 계획으로 진행하는 건지 성격을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이 이끄는 ㈜신세계도 조 단위 M&A(인수합병)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17일 신세계 측은 국내 보톡스 1위 업체인 휴젤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베인캐피탈 소유 지분 44.4%으로, 거래금액은 2조원에 달한다. 신세계가 휴젤 인수에 나선다면 2018년 까사미아 인수 이후 최대 M&A가 될 전망이다.

      현재 신세계(AA)의 등급전망은 ‘안정적’이다. 코로나 상황에서 재무안정성의 하방위험이 지속되고 있지만 부동산, 삼성생명 보유지분(약 3500억원) 등 보유자산을 비롯한 재무적 융통성을 감안해 전반적 재무안정성은 우수하단 평이다. 다만 코로나 상황으로 영업현금창출력이 단기적으로 저하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다보니 재무 지표의 조절 필요성도 언급되고 있다.

      NICE신용평가는 지난 4월 신세계의 정기평가 결과 보고서에서 “현금창출력 약화 및 대전 사이언스 컴플렉스(대전신세계) 관련 대규모 설비투자(CAPEX) 집행 및 2020년 신종자본증권 3670억원 상환 등으로, 과거 대비 재무안정성 지표가 다소 저하됐다”며 “코로나 종식 시점의 불확실성 및 2020년 중 회사의 재무안정성 저하폭 등을 감안해, 영업현금흐름 창출력의 개선추이 및 운전자금·투자 관련 재무부담에 대한 대응력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증권사 채권투자 관계자는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각각 내수만 하던 기업들이 여러 사업 분야를 확장하려고 하니까 시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 있다”며 “M&A로 양적인 증가는 있겠지만, ‘1+1=2’가 되는건 아무것도 아니고 ‘3’ 이상의 효과를 내야하는데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마트와 신세계 모두 ‘공격 투자’에 나서면서 그룹 차원의 재무부담 통제와 투자 포트폴리오를 향한 의문도 제기된다. 신용도 측면에서 각각 별도로 평가받고 있어 상호 영향이 있지는 않지만, 그룹 차원으로 보면 ‘서로 열심히 돈을 쓰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백화점과 할인점 등 부문이 다르긴 하지만 크게 ‘유통업’이란 점에서 업황의 영향도 유사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일부 부문에서 투자가 겹치고 있기도 하다. 2008년까지 호텔 사업을 이끌다가 분리 경영으로 손을 뗐던 정 총괄사장은 다시 호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신세계는 오는 8월 대전에서 ‘오노마’ 오픈을 앞두고 있다. 정 부회장 또한 지난 5월 서울 강남에 문을 연 ‘조선 팰리스 서울 강남’으로 럭셔리 호텔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또 다른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이 워낙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어 어떻게 재무 부문을 조절하고 통제하는지 잘 지켜볼 것”이라며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함께 그룹 차원에서 윗단의 의사결정이 있겠지만, 재무나 신용도 부담을 각자 지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투자 성향 등이 평가에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의 ‘승계 구도’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공격적인 행보가 남매가 서로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세계그룹은 2011년 신세계와 이마트를 분할한 이후 2016년부터 정 부회장이 이마트 부문을, 정 총괄사장이 신세계 부문을 맡는 남매 분리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이어 지난해 9월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이마트 지분 8.22%를 정용진 부회장에게, 신세계 지분 8.22%를 정유경 총괄사장에게 증여했다. 증여 이후 남매 각각이 각 부문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분리 경영’ 체제도 확실해졌다. 당시 신세계그룹 측은 이 회장의 그룹 총수 역할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2세 경영’ 체제로 승계에 속도가 붙었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