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한화, 6년 만의 ‘윈-윈’ 거래...오너 변수에 주관사는 '허탈'
입력 2021.06.25 07:00|수정 2021.06.28 10:22
    한화종합화학 예상 기업가치 낮을 가능성
    한화와 삼성으로서는 최선의 선택
    주관사단들은 수수료 못 받아 허탈감↑
    • 한화종합화학이 사실상 상장 철회로 선회하면서 대기업 계열사 거래(딜)에 수반되는 ‘오너 변수’가 작용했다는 의견이 많다. 삼성과 한화라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그룹이 참여한  ‘빅딜’이었던 만큼 두 거래 상대방이 각자의 실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선택했다는 평가다.

      반면 상장 작업을 추진하던 주관사들은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최근 대어급 기업공개 홍수 속에서 한화종합화학 상장 작업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지만 모두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한화그룹은 약 1조원을 들여 삼성SDI와 삼성물산이 보유한 한화종합화학 지분 24.1%를 모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삼성으로부터 방산·화학 계열사를 2조원에 인수하며 삼성 계열사에 남겨뒀던 잔여 지분을 사들이는 것이다. 당시 한화는 2022년 4월까지 한화종합화학 상장을 마무리 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삼성이 풋옵션(일정 금액에 지분을 팔 권리)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약속한 바 있다.

      갑작스런 한화의 변심을 두고 투자은행(IB)업계선 한화종합화학을 상장사로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해석한다. 통상 대기업들은 계열사들을 비상장 회사로 두는 것을 선호한다. 상장사들은 까다로운 공시 작성, 사외이사 선임 등의 의무를 지는 만큼 당국의 간섭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한화종합화학은 수소·친환경 분야 위주로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 등 오너 일가의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에 굳이 상장사로 전환할 필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의 투자회수'를 위해 상장을 계획했던만큼, 가격 협의만 이뤄진다면 굳이 상장을 끝까지 밀어붙일 유인이 없었던 셈이다.

      이번 지분 인수로 향후 승계 자금에 대한 이슈도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지주사인 한화종합화학은 한화토탈 등 자회사들의 실적이 주요 수입원으로 꼽힌다. 한화솔루션과 한화에너지가 한화종합화학의 지분 100%를 보유하게 되면 배당률을 높여 한화토탈->한화종합화학->한화솔루션->에이치솔루션 순서로 얼마든지 현금을 당겨올 수 있다.

      에이치솔루션은 한화그룹 3남이 각각 3분의 1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승계구도에 중요한 회사로 꼽힌다. 그동안 삼성물산과 삼성SDI를 한화종합화학의 주주로 두며 배당률 상향이 부담이었겠지만, 이번 지분 인수로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삼성물산과 삼성SDI는 왜 해당 거래에 동의했을까.

      지난 2018년 삼성물산과 삼성SDI는 한 차례 한화종합화학 잔여 지분 매각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한화종합화학 추정 시가총액은 약 4조원으로 추산됐다. 금번 한화종합화학 지분 24.1%를 약 1조원에 매입한 것을 감안하면 해당 시점과 비교해 한화종합화학 밸류에이션(Valuation)에 변화가 거의 없는 셈이다. 화폐 시간가치를 따져보면 오히려 손해다.

      그럼에도 삼성이 이번 인수에 동의한 것은 그만큼 한화종합화학 몸값에 대한 시장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한화종합화학의 전체 예상 시가총액은 3조~4조원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작년 기준 한화종합화학 매출이 1조원을 밑돌아 전년 대비 크게 감소했던 데다 석유화학이라는 전통 산업분야도 밸류에이션(Valuation)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몸값을 조금이라도 올리기 위해 주관사단에서 여러 아이디어를 고안한다 하더라도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의 심사 기준을 넘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를 종합하면 삼성 계열사들이 한화종합화학 상장 시 구주 우선매출권을 행사할만한 실익이 없다는 평가다. 한화종합화학이 최대 4조원의 예상 시가총액에 이른다 하더라도 상장 시 적용되는 20~30%의 할인율을 감안하면 삼성이 보유한 지분가치가 1조원을 웃돌기는 쉽지 않다.

      만약 내년까지 상장하지 않고 삼성이 풋옵션(주식매수청권)을 행사한다 하더라도 이익이 커진다고 장담하긴 쉽지 않다. 삼성은 ①행사 직전 사업연도의 조정 EBITDA(상각전영업이익)에 11.07배로 계산한 기업가치 기준 주당 가격 ②주당 3만3165원 중 높은 금액으로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한화종합화학의 실적 추이가 크게 개선될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에비타 기준의 주당 가격이 높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결국 현 시점에서는 1조원 규모의 지분 매각이 최선의 판단이었을 수 있는 셈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시장과 업황 등을 감안하면 한화가 삼성에 약속한 1조원 금액은 오히려 후하게 매긴 가격이라고 볼 수 있다”라며 “삼성으로서는 상장 시 대규모 구주 매출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텐데 한화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삼성과 한화, 양측으로서는 ‘윈-윈(Win-win)’이었지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등 주관사단의 허탈함은 지우기 어렵다. 지주사라는 한화종합화학 특성상 기업가치 산정과정에 애를 먹었지만 이번 결정으로 상장 수수료는커녕 그동안 들어간 비용도 돌려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

      또한 한화종합화학이 상장 재추진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업계에선 기약이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빠른 시일 내에 상장이 재추진되지 않는다면 주관사가 바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2018년 현대오일뱅크가 상장을 추진할 당시 NH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등이 주관사였지만 최근 회사 측은 주관사 선정 과정을 새로이 진행하고 있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사 상장 주관은 대체로 회사 측의 요구사항이 까다로워 품은 품대로 들지만 (상장 지연 등) 변수가 많아 수월한 딜(거래)은 아니다”라며 “상장 작업 준비만 2~3년 하다가 철회되면 수수료도 못 받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