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M&A 대표 주자…트렌드 세터 'SK', 꿈틀대는 네이버·현대차
입력 2021.06.25 07:00|수정 2021.06.24 16:29
    2010년대 전반엔 '구조조정'
    후반엔 '새 먹거리' 찾기 몰두
    SK그룹, 자본시장 흐름 선점
    현대차·LG도 M&A 본격화
    삼성·롯데, 분위기 다소 침체
    네이버·카카오 행보 주목
    • 인수합병(M&A) 시장을 주도하는 그룹들의 면면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재계 순위를 끌어올리려는 기업들의 경쟁이 한 차례 지나갔고, 2010년대부터는 생존과 미래 성장을 위한 M&A가 주를 이뤘다. 최근 몇년간 SK그룹의 행보가 가장 숨가빴고, 현대차와 LG 등 잠재력을 터뜨리지 않은 기업들도 주목받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쿠팡으로 대표되는 신기업들도 대형 M&A의 주축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2010년대 M&A 시장은 전반기와 후반기의 분위기가 다르다. 2015년까지는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하이닉스반도체, 웅진코웨이, 금호고속, STX에너지, 현대로지스틱스, 동양시멘트, 금호산업 등 구조조정 성격의 거래들이 줄을 이었다. 금호, 동양, STX 등의 실패를 지켜본 다른 그룹들은 2016년 이후 신중하고도 적극적으로 M&A에 뛰어들었다.

    • 현재 M&A 시장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룹은 단연 SK다. 초기부터 에너지(SK이노베이션), 통신(SK텔레콤) 분야 M&A로 성장했지만, 최근 행보는 더 빨라졌다. 최태원 회장은 2016년 딥체인지 선언 후 여러 화두를 던졌다. ESG 경영을 주도하고, ‘파이낸셜스토리’도 강조한다. 전 계열사들이 경영권 인수와 매각, 재무적투자자(FI) 초빙, 자본시장 활용 등 다양한 기법을 펼치고 있다. 최근 성장세도 가파르다.

      SK㈜는 투자전문 회사로 거듭나 첨단소재·그린·바이오·디지털 등 투자센터에서 M&A와 지분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추형욱 SK E&S 대표, 황근주 SK바이오텍 대표가 투자센터를 거쳤다. SK하이닉스는 작년 인텔 낸드 사업 인수 계획을 밝혔는데, 박정호 사장이 2017년 SK텔레콤에 부임하면서 데려온 측근 노종원 SK하이닉스 CFO가 거래를 주도했다.

      SK그룹에서 최근 가장 부상하는 곳은 SK에코플랜트(전 SK건설)다. 에너지-통신-반도체에 이은 제 4의 먹거리, 친환경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사업을 독려하면서 SK㈜와 그룹 출신 인사들이 대거 내려와 있다. 올해 폐기물 처리업체 4곳을 한꺼번에 인수했고, 추가 M&A도 예고하고 있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M&A는 인수 후 재무구조가 악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외부 자본 조달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SK그룹은 시장의 화두를 선점해 기업가치를 키우고 상장하는 등 현재 자본시장의 흐름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 대기업 중 현대차와 LG도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룹의 역량에 비해 대형 M&A를 추진하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팬데믹 후 글로벌 기업들의 생존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이제는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지금까지 가장 큰 돈을 쓴 것은 한전 부지 인수(10조5500억원)고, 순수 M&A로는 2011년 현대건설 인수에 5조원가량을 쓴 것이 최고다. 경영권 인수보다는 기술 확보를 위해 지분 투자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지난 수년간 지분투자에만 수조원을 썼고, 지금도 물밑에서 수 십 건의 투자를 진행하거나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지영조 사장을 중심으로 지분투자에 공을 들였지만, 작년을 기점으로 김걸 사장이 이끄는 기획조정실에 힘이 실렸다. 김걸 사장은 작년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2019년 앱티브와의 사업 합작 등 대형 거래를 주도했다.

      LG그룹은 2018년 구광모 회장이 취임 후 행보가 잠잠했다. 그룹 사상 최대 M&A는 여전히 2018년의 ZKW 인수고, 이는 구광모 회장이 주도한 프로젝트로 보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데 신경을 쏟았다. 올해는 적자를 이어오던 LG전자 스마트폰 사업까지 접었다. LX그룹과 계열분리도 진행했다.

      앞으로 LG그룹이 전장, 인공지능(AI)에 힘을 쏟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많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M&A에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키맨’이 누구냐는 문의도 많았다. 올해는 LG전자와 마그나그룹의 합작사가 설립된다. 향후 그룹의 대형 M&A는 LG전자가 맡을 가능성이 큰데 조주완 부사장(CSO), 이충섭 상무(M&A 실장)가 핵심 인사다. 한온시스템 인수 검토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SK그룹이 M&A 시장 분위기를 이끌었지만 앞으로는 현대차와 LG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란 예상이 많다”며 “앞으로 인력 자원을 현대차와 LG에 얼마만큼 배분할 것이냐를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 5대 그룹 중에서 삼성과 롯데의 분위기는 다소 침체돼 있다.

      삼성은 2014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끌기 시작한 후 대대적인 사업 조정에 나섰다. 2014~2015년 한화, 롯데와 잇따라 빅딜을 하며 화제가 됐다. 새로운 먹거리를 채워야 했지만 이후 국정농단, 불법승계 등 문제가 불거졌다. 여전히 그룹 사상 최대 거래는 2017년 하만 인수인데, 아직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고 있다. 이후론 소형 기술기업 인수만 간간이 진행하고 있다.

      M&A 부서도 개점 휴업 상태다. 총수가 없어서, 혹은 총수에 누가 될까봐 대형 M&A를 검토만 할뿐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진작 계열사 사장으로 갔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안중현 삼성전자 부사장이 여전히 M&A 업무를 이끌고 있다. 안 부사장은 2004년 이재용 부회장(당시 상무)의 첫 사업 성과인 소니와의 합작사(S-LCD) 설립 때부터 관여한 측근 중의 측근이다.

      롯데는 삼성과 빅딜, KT렌탈 인수 등을 계기로 사세 확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2014년 74곳이던 계열사는 2018년 107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중국의 사드 보복이 불거지며 그룹 전체가 큰 타격을 입었다. 유통업 부진이 이어졌고 지난 수년간 금융사 등도 정리하면서 계열사 수도 쪼그라들었다.

      신동빈 회장의 복심 황각규 부회장이 지난해 유통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리를 떠난 후 전략 방향은 모호해졌다. 대형 경영권 거래는 없고 중고나라와 두산솔루스 등에 지분을 태우는 정도다. 매년 임원을 줄이고 조직을 바꾸니 외부에서도 혼란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근 인수가 무산된 이베이코리아 M&A는 작년 축소 개편된 경영혁신실이 주도했다. 앞으로 M&A에 나선다면 유통보다는 화학 분야에 집중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재계 10위권 진입을 앞둔 신세계와 CJ의 행보는 대비된다. 신세계는 2018년 까사미아 인수가 그룹 대표 M&A였지만 최근엔 보폭이 넓어졌다. 이마트를 중심으로 야구단(SSG랜더스), 패션(W컨셉)에 이어 이커머스(이베이코리아)까지 거침없이 확장하고 있다. 별도로 신세계는 휴젤 인수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정용진 부회장-정유경 사장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CJ그룹은 속도 조절에 나섰다. 한때 ‘그레이트 CJ’, ‘월드베스트 CJ’ 등 목표를 내걸며 계열사간 확장 경쟁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일부 사업 성과가 부진하고 재무구조도 악화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확장보다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다행히 조단위 자금을 쏟은 CJ대한통운, 쉬완스 등의 성과는 나쁘지 않다. 향후 다시 사업을 확장하려면 ‘고자세’라는 시장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와 카카오, 쿠팡 등 신기업이 M&A 시장의 주축으로 뛰어오를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카카오는 공식적으로 CFO 직함이 없다.최고투자전략책임자(CIO) 직함을 단 배재현 부사장이 투자를 주도한다. 배재현 CIO와 이성호 재무기획실장이 핵심 딜을 주로 검토하고 있다. 사업모델을 개발하는 계열사 대표 등에 힘이 실리는 편이다.. M&A에 있어서만큼은 '헤드쿼터 없는 조직'이란 평이 나오지만 각 계열사별 투자 자율성이 비교적 보장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기업을 인수한 후 성장시켜 독립시키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엔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 북미 웹툰 플랫폼 타파스미디어를 인수했다.

      네이버는 2017년 기업집단에 포함된 후 보폭을 넓히고 있다. 올해 대형 M&A를 주도하며 자본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간 소형 스타트업 인수 및 소규모 지분투자에 주력해온 네이버는 최근 대형 규모 바이아웃 거래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1월 북미 웹소설 1위 업체 왓패드 인수(약 6840억원)가 대표적이다. 네이버 M&A는 박상진 CFO와 산하 '전략 M&A실'이 밀접하게 관여한다. 해외 M&A는 김남선 재무리더, 소수지분 투자는 이정안 재무리더가 이끌고 있다. 네이버의 투자 전략은 국내보다는 주로 글로벌 시장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문화·콘텐츠·물류업의 CJ그룹, 엔터업의 하이브, 유통업의 신세계그룹 등과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제휴를 맺었다.

      M&A '잠룡'으로 평가받는 쿠팡도 주목된다. 쿠팡은 다른 기업과 비교해 M&A 행보가 눈에 띄는 곳은 아니다. 다만 최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으로 약 4조원에 이르는 실탄을 확보한 만큼 대형 거래에 참여할 가능성이 주시되고 있다. 쿠팡의 기업투자 및 M&A는 투자개발실(Corporate Development)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키맨은 상장 직전 CFO로 선임한 아마존 출신 고프라브 아난드(Gaurav Anand)다. CFO가 투자 총책으로 파악되나 실무진 선에선 주로 접촉되는 인물은 아니다. 주된 실무는 정상엽 투자개발실장이 맡는다. 네이버 광고플랫폼기획실과 캡스톤파트너스 출신으로, 2015년 12월 영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