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한온시스템 M&A, 해외 기업결합·지분 투자금 마련 등 변수
입력 2021.06.29 07:00|수정 2021.06.30 10:35
    발레오·말레 등 거론…글로벌 수위권 지각변동 가능성
    해외 매출 많은 한온, 유럽 등 경쟁제한성 심사 변수로
    매각 지분 시가 6조원대…”인수금융 규모는 거의 고정”
    지분 투자금만 수조원…인수후보간 연합 구도 이어질 듯
    • 한온시스템 매각이 막을 올랐다. 국내 기업들은 아직 잠잠한 가운데 동종 업계인 프랑스 발레오와 독일 말레의 행보에 시선이 모이고 있다. 이들 기업이 한온시스템을 인수한다면 글로벌 자동차 공조 시장의 경쟁 강도가 완화할 수 있다. 국내외 경쟁당국의 깐깐한 심사가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

      한온시스템 매각은 올해 하반기 최대 거래로 꼽히는데 회사의 현금창출력을 감안하면 시장에서 빌릴 수 있는 금액은 거의 정해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수 후보들의 지분 투자금 조달 역량에 따라 매각 성적표도 달라질 전망이다.

      지난 22일 한앤컴퍼니와 매각 주관사 모건스탠리, 에버코어는 한온시스템 매각 예비입찰을 진행했다. 해외 전략적투자자(SI)와 베인캐피탈과 칼라일 등 사모펀드(PEF)의 참여 가능성이 거론된다. LG와 SK, 한라 등 국내 기업은 일단 제안서를 내지 않았다. 매각자 측은 이달 말까지 제안서를 받을 계획이라 후보군의 면면이 달라질 수는 있다. 발레오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냈는데, 현재 인수전 참여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발레오와 말레는 각각 투자은행(IB)과 법률자문사를 선정하며 인수 의지를 보여왔다. 자동차 공조장치 등을 포함한 글로벌 열관리 시스템(Thermal management system) 시장은 일본 덴소(2019년 기준 점유율 28%), 한온시스템(13%), 발레오(12%), 말레(11%) 등이 주도한다. 만일 발레오나 말레가 한온시스템을 인수한다면 덴소와 1위 자리를 다툴 수 있다.

      현대차그룹향 매출이 많은 한온시스템은 아시아 매출 비중이 높은데 작년에 30%는 유럽에서, 23%는 아메리카 지역에서 올렸다. 발레오는 유럽 46%, 아메리카 20%고 말레는 유럽 46%, 아메리카 31%다. 유럽과 미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각 지역의 경쟁당국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전세계 경쟁당국들은 경쟁제한성을 따질 때 허핀달-허쉬만 지수(HHI, 시장참여자 점유율 제곱해 합산한 수치)를 공통적으로 활용한다. 동일 시장 기업간 M&A에선 ▲HHI가 1200 미만 ▲HHI가 1200이상 2500미만이면서 HHI 증가분이 250미만 ▲HHI가 2500이상이면서 증가분이 150미만 이면 시장 집중도가 크지 않다고 본다.

      덴소-한온시스템-발레오-말레 4사의 점유율을 제곱해 더한 수치는 1218이다. 만일 발레오가 한온시스템을 인수하면 1530, 말레가 인수하면 1504가 된다. 4사만 따져도 HHI가 1200 이상이고 증가분이 250을 넘는다. 시장을 어떻게 획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위권 업체로의 집중도가 높아진다고 볼 여지가 있다.

      경쟁사나 이해관계자들이 반대나 부정적 의견을 낼 수 있다. 해외 경쟁당국이 기업결합 심사에서 시정조치를 내릴 때는 원칙적으로 주식이나 자산을 매각하라는 등 ‘구조적 조치’를 택한다. 경쟁제한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판단하면 일부 해외 사업을 매물로 내놓아야 할 수 있다.

      물론 발레오와 말레가 승자가 된다고 이런 문제가 무조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결합 심사는 시장을 어떻게 나누느냐, 완제품으로 보느냐 혹은 부품별로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확실한 1위 사업자가 있는만큼 시장 집중도가 높아지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대체 가능성이 있느냐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한온시스템은 전기차 열관리 시스템에 공을 들이는데,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열관리 기술을 통합해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전기차 개발 초기부터 각 업체의 요구에 맞춰 열관리 시스템을 납품하는 구조라면 경쟁사들이 끼어들기 쉽지 않다.

      한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한온시스템의 해외 매출이 많아 각국 경쟁당국에서 경쟁제한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다만 동일한 제품군이라도 커스터마이징돼 있어 서로 대체하기 어렵다면 업계 상위권 기업들이 합쳐져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온시스템 인수 후보들은 막대한 자체 자금력도 필요하다. 한온시스템 매각 대상 지분 시가는 약 6조3000억원(23일 종가기준)이다.

      제조기업의 인수금융 규모는 보통 지분 인수 가격의 40~60% 수준이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의 5배 언저리에서 정해진다. 기존 차입금은 제하고 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시가에 주식 담보인정비율(LTV) 40~60%를 적용한다면 2조5000억원에서 3조8000억원 정도를 빌릴 수 있는 셈인데, 2조원가량의 차입금을 감안하면 실제 빌릴 수 있는 금액은 더 줄어들 수 있다. 한온시스템의 올해 예상 EBITDA는 약 1조200억원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고 5배까지 차입을 일으킨다 해도 최대 대출 규모는 3조원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한온시스템을 인수하려면 수조원의 지분투자금이 필요한 셈이다.

      한온시스템 거래 규모를 감안하면 중순위 투자자도 모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중순위 투자자 풀이 넓지 않아 거래 1건당 모을 수 있는 금액은 50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과거 국민연금은 홈플러스에 우선주로 6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는데, 홈플러스는 부동산 담보가치를 높게 평가 받았었다.

      사정이 이러니 거래 초기부터 한온시스템 인수금융 최대 한도 규모는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각 금융사들이 개별적으로 인수후보들과 손을 잡으면 그나마도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매각자 측에선 인수후보들에 비밀유지를 이유로 금융사들을 사전 접촉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사들은 물밑에서 후보들과 협의를 진행하는 분위기다. 지분투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SI와 PEF간 컨소시엄 구성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한온시스템의 현금창출력과 기존 차입금 등을 감안하면 인수금융 규모는 거의 정해져 있고 금융사마다 제시할 수 금리 조건만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며 “금융사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면 전체 대출 규모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후보자들에 금융사를 사전 접촉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